- 소설/수필,수기/시

아바나
- 작성일
- 2011.2.2
- 글쓴이
창피하지만 조지 오웰의 책을 처음 읽었다. 그 유명한 <동물농장>도 내용은 익히 알고 있으나 정작 아직도 읽어 보지 못했다. 하지만, <1984> 이 책을 통해서 그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을 더 없는 기쁨으로 생각한다. 마치, <공중그네>가 아닌 <남쪽으로 튀어>를 통해 오쿠다 히데오를 처음 만나게 된 것과 비슷한 감정이랄까?
책 속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우울함과 암울함으로 둘러싸여 있다. 물론, 내용 자체도 그러하지만 이 책을 쓰기 시작할 당시의 조지 오웰은 아내와의 사별에 대한 슬픔과 지병으로 고통받고 있던 때였기에 더더욱 암울함이 스며들어 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이 책을 완성(1948년)하고 2년 후에는 아쉽게도 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우울함에 둘러싸인 짙은 회색 톤의 분위기가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솔직히 말하면 더 좋았다. (역시 나는 변태인가?)
그가 1948년에 상상했던 1984년은 이미 지났지만, 역으로 그가 말한 1984년은 어쩌면 지금도 진행중일런지도 모른다. 아니, 조금 비관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생각해 보면 1984년은 더욱 발전된 형식으로써 지금 현재를 지배하며 치밀하게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지난 70~80년대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책 속에 묘사된 것 이상으로의 고문과 탄압, 심지어 '비전향 장기수'(다행히 10년전에 송환되었지만..), 혹은 반체제 운동의 학생, 인민을 대상으로 인간의 생각, 사고(思考) 자체를 바꾸려 하는 무모하고도 가당치 않은 작태를 실행한 부끄러운 경험을 지니고 있으며, 책 속의 텔레스크린과 같이 단순히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지금의 CCTV, 핸드폰 위치추적, 감청 등을 비교하지 않더라도 어쩌면 더더욱 세련되고 고도화된 모습으로 위장하여 우리에게 눈과 귀가 있어도, 그 눈과 귀를 막고 일방의 의견과 사유를 천편일률적인 방향으로 교묘하게 이끌어 가고 있다. 이 정권이 그렇고, 언론이 그러하며 현재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바둥거리는 자들 역시 그러함을 부추기며 헤게모니 장악에 힘쓰고 있다.
나는 이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의 글 속에서 조지 오웰의 냉철함과 치밀함을 함께 읽는다. 특히 주인공 윈스턴이 맡아 일하고 있는 '신어(新語)'의 제작과 모든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기준에서 유리한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설정에서는 무릎을 치게 만든다.
인간에게는 언어가 있기에 사유를 행할 수 있음은 주지된 사실이다. 그러한 사유를 정권에 불필요한 것이라면 사유 자체를 없애도록 유도하는 신어는 인간에게 인간성을 피폐하게 만들고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임을 거부하도록 강요하며, 더더욱 무서운 것은 그 비정상적 상태를 스스로 지극히 정상적으로 느끼게끔 만든다는 사실이다. 또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당의 슬로건에 맞추어 모든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 역시 우리 인간의 머리속을 정권의 편의에 의해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비록 비현실적인 일이라 생각되지만..역으로 어쩌면 모든 비현실적인 것이라 생각된 것들이 어느 시점에서는 현실로 투영되는 일이 많으니 그 또한 섬찟하지만..) 주도 면밀한 설정은 내게 미묘한 오싹함을 느끼게 만든다.
결국, 윈스턴은 모든 것을 저버리고 말았다. 끈질긴 육체적 고문과 사상 전환 작업을 이겨내지 못했다. 모든 주변인을 밀고 했고(물론, 죄없는 이들이며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짜여진 각본에 따라..), 그토록 사랑하고 배반치 않겠노라 장담했던 줄리아마저도 자신의 공포감과 육체적 고통을 덜어 내고자 결국 배반했으며, 그렇게 증오하던 당의 우두머리 빅브라더를 마음으로 따르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그렇게 윈스턴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죽음도 불사하겠다던 각오도, 절대로 배반치 않겠다던 사랑도..
그리고 아주 어렵게 모든 것이 평범(?)함으로 세뇌되어 평온(?)함을 되찾았을 때, 그는 당이 겨눈 총에 머리를 맞고 죽게 된다.(물론, 당은 처음부터 윈스턴의 사상개조 작업이 완료되면 총살하려고 했다. 그가 조금 길게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와 다르게 쉽게 사상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마지막 장면..조지 오웰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결코 윈스턴은 슈퍼맨이 되지 않았다. 육체적 고통과 극단의 공포감을 이겨내지 못해 줄리아를 배반하는 눈물겨운 장면은 오히려 더더욱 인간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으며, 부숴지지 않는 커다란 바위 앞에 홀로 선 나약한 윈스턴을 바라보며 가슴 조리며 불안하고 소심해 지지만 매우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전체주의의 공포감과 잔혹스러움에 저항하고 전복을 꿈꾸던 한 개인의 모습은 조작되고 정보화된 절대 권력 아래서 아무리 발버둥 치며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하는 정당한 이유에 있어서도 한낱 힘없는 실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극심한 전체주의의 통제와 감시 속에서 살아가는 보잘 것 없는 개인의 삶을 통해 조지 오웰은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조지 오웰, 그가 상상한 1984년은, 비록 27년이나 지나버린 오늘이지만 여전히 그 연장선상 속에서 모습을 달리하며 계속되고 있으며 이를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해 내지 못한다면 더 강력한 모습으로 우리의 인간성 말살과 인간만이 지닌 자유의지를 박탈하려 들 것이다.
이는 현재의 우리가 다시 한번 주먹을 불끈 쥐게 하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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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