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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안
- 작성일
- 2020.11.29
이문열 초한지 1
- 글쓴이
- 이문열 저
알에이치코리아(RHK)
항우와 유방, 초한지
책을 펼치는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역사 책을 펼치면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 그들과 교유하며 호흡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 속에서 배우는 게 참 많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경험이지만 책 속에서는 결코 외롭지 않다. 특히 삼국지나 수호지, 서유기 등의 읽다보면, 오히려 즐겁고 신난다.
이문열의 <초한지>는 <삼국지> 못지 않은 대작이다. 삼국지가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 세 나라의 역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초한지는 초나라와 한나라 두 나라의 이야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원래 이 작품은 2000년 대 초반 <동아일보>에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란 제목으로 연재된 작품이었다고 한다.
신문에 연재될 때 제목인 ‘큰 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는 한고조 유방이 쓴 시의 한 구절을 번역한 말인데, 책으로 펴내면서 작가가 마음 속으로 작정한 제목은 원래 <사기, 한초연의>였다고 한다. 하지만 출판사 편집자들의 충고를 받아 들여 낯선 제목 보다는 독자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제목인 <초한지>로 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이 제목 그대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삼국지(三國志)’를 다르게 ‘삼국연의(三國演義)’라 하듯이 어찌 보면 작가의 뜻대로 <초한지(楚漢志)>보다는 <한초연의(漢楚演義)>란 제목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두 나라 이야기란 뜻의 ‘<이국지(二國志)>’나 ‘<이국연의(二國演義)>’로 하고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란 암시를 주기 위해 부제로 ‘한초대전’ 또는 ‘초한대전’이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다시피 초한지는 중원 땅 전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야흐로 춘추전국 70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천하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며 죽고 죽이는 살육의 각축장이 된 아비규환의 드넓은 중원의 땅이 그 배경인데, 춘추시대가 가고 전국 7웅이 대치하던 시대 중국 천하는 여전히 전쟁과 살육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이 피폐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천하를 마침내 하나로 통일한 위대한 황제가 있었으니, 바로 진나라 시황제이다. 소설은 진시황의 순행행차에 암살을 도모하는 이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중국 최초로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자신이 정복한 중원의 땅을 순시하던 중에 길에서 객사를 하고 만다. 후사를 확실하게 정해 놓지 않은 상황에서 간신 조고의 농간으로 어진 맏이가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고 어리석은 차자인 호해가 왕위에 오르면서 진제국은 파탄의 길로 들어서고 되고, 천하를 통일한지 몇 해 되지 않아 천하는 다시 분열의 조짐을 보이면서 새로운 군웅들이 할거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대표적인 인물이 초한대전의 두 주역인 항우와 유방이다.
숙부 항량이 처음 항우에게 가르친 건은 글이었다.
“대장부에게 문자란 자기 이름만 쓸 줄 알면 넉넉한 것입니다.
문관으로 일생을 살고자 하지 않을 바에야 무엇 때문에 그 많은 문자를 다 익혀야 합니까?”
어느 날 항우는 그렇게 말하며 책을 덮더니 다시는 펴려 하지 않았다.
“그럼 칼 쓰기를 배워보겠느냐? 무란 대장부가 마땅히 본업으로 삼을 만한 것이니라”(153면)
<이문열의 초한지>는 출간이후부터 <삼국지> 못지 않게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 이번에 새롭게 내용이 보완되어 개정 신판으로 재출간되었다. 책의 장정이 대단히 인상적이고 고급져 보인다. 일찍이 사마천의 <사기, 항우본기>를 재밌게 읽었는데, 뒤에 평을 보니, <항우본기>는 130여 편의 사기 작품 중에서는 손에 꼽히는 수작이라고 한다.
초한대전은 바로 <사기>의 항우본기 이야기와 한고조, 회음후 한신 등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진나라 멸망 후 초한대전을 거치면서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힘이 천하장사인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와 제왕의 상을 타고난 유방과의 흥미진진한 대결과 한신과 범증의 지략 대결이 가히 볼만한 대작이다. 이문열의 초한지는 지금까지 출시된 여타의 초한지 보다 훨씬 더 작품성과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혼탁한 이 시대에 반드시 꼭 읽어야 할 인생 지혜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 자 한 자 책을 쓰는 저자와 한 줄 한 줄 책을 읽는 독자 사이에 미묘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문열 작가가 한 글자 한 글자 얼마나 공을 들여 썼는지 초한지를 읽으면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금년이 가기 전에 10권을 다 완독하기는 다소 무리일 것 같고, 올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초한지 전권을 완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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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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