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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6.9.17
봉신연의 1
- 글쓴이
- 허중림 저
솔
주나라의 건국 신화, 봉신연의
8월에서 9월로 달이 바뀌면서 기후 또한 확연히 달라진 것 같다. ‘시원하다!!’ 아, 이 얼마나 하고 싶었던 그리고 그리웠던 말인가? 아침저녁으로 창문을 열어 놓으면 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넘어 들어와 머리를 개운하게 해 준다. 무더위가 물러가고 시원한 바람이 부니 정말 살 것 같다.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 찾아온 것 같다. 그리고 때맞추어 <봉신연의(封神演義)>를 만났다.
(고산자, 보러간 날, 영화 시작 전 잠시 들린 교보문고에서 본 봉신연의 세트)
<봉신연의>, 처음 대면했을 땐, 한자어 제목이 몹시도 낯설어 다소 어려운 책인 듯 느껴졌다. 그 때문인지 처음부터 그다지 눈길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연이었을까? 책을 펼쳐서 읽어보니, 무왕, 강태공, 주왕, 달기 등 평소 잘 알고 있던 역사 속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 아닌가. 내용 또한 아주 흥미롭고 재밌는 이야기들로 가득 담겨져 있었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야기 내용의 구성 방식이 마치 <삼국지>와 <서유기>를 한데 합쳐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예컨대, 주왕, 달기, 주문왕 희창, 주무왕 희발, 비간, 미자, 기자, 강상(강태공, 강자아)은 역사 속 실존인물들로 이들의 이야기는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봉신연의>에는 이들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책 제목 속 ‘봉신’이란 단어에서도 짐작되듯이 이 작품 속에는 천교와 절교, 서역(서방)의 신들이 다수 등장한다. 주나라를 돕는 천교의 신들로는 태상노군, 원시천존, 광성자, 적성자 외 곤륜산 12대 신선과 그 제자들인 나타, 양전, 토행손 등이 있고, 은나라를 돕는 절교의 마신으로는 통천교주가 등장하는데, 통천교주 아래 캐릭터들은 신이라기보다는 거의 요마, 요괴에 가깝다. 즉 동물이나 사물의 정령들이 오랜 수련을 쌓아 인간으로 변신한 무리로 보면 되는데, <서유기>에서 원숭이 손오공이나 돼지 저팔계를 생각하면 금방 연상이 될 것이다. 사실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이나 저팔계도 동물의 요괴였다. 하지만 뒤에 엄청난 고난을 겪었기에 신선이 될 수 있었다. 신선과 요괴의 구별은 선악(善惡)의 기준에 따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천교를 돕지만, 서방과 인연이 있으면 천교, 절교를 가리지 않고 구제하는 중립적인 성격이 짙은 서역의 신들로 준제도인, 접인도인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강상은 역사 속 실존인물인데, 이 작품에서는 인간과 신의 능력 고루 가지고 있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달기 또한 진짜 달기는 천 년 묵은 여우 정령에게 혼백이 빨려서 죽고 여우 정령이 달기의 몸을 빌린 요괴(1권, 101면)로 묘사되고 있다.
즉 <봉신연의>의 큰 골격은 삼국지의 패권 다툼이나 초한지에서 항우와 유방의 싸움과 같이 무왕과 주왕의 대결을 기본 베이스로 하면서 천교와 절교 사이 신과 요괴들의 대결 구도로 전개된다. 이 신들과 요괴들의 싸움에서 아이러니 하게도 <서유기>의 장면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적 표현기법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 부분에 있어서도 두 작품과 유사한 점이 많은데, 예컨대, 회가 끝날 때마다 ‘다음 회를 보시라’는 표현은 삼국지연의(하회를 보라)와 서유기에서도 즐겨 사용되는 표현들이다. 또 글의 중간 중간 전체 내용을 압축해서 정리한 시나 내용의 이해를 돕는 삽화가 나오는 점도 이들 소설과 유사하다.
(봉신연의 속 삽화, 그림이 대단히 섬세하다. 삽화로 인해 글로 장황하게 풀어 설명한 내용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봉신연의>는 읽으면 읽을수록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점점 더 읽고 싶은 욕구가 강렬해 지는 작품이다. 쉽게 말해 책을 손에 한 번 붙들면, 좀처럼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는 모든 일을 잠시 접어두고, 몰입해서 읽어야 작품의 묘미를 제대로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신기한 점은 읽은 내용들이 삽화의 그림을 통해 머리 속에서 상상해 보면, 장면이 그려진다는 점이다. 아마도 기존의 무협드라마나 판타지물을 많이 본 경험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작품은 옛 시 한 수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전체의 내용을 개괄하면서 시작되는데,
혼돈이 처음 나뉘기 전에 반고가 있었고
우 임금이 강물 다스려 홍수의 물결 제거되었지
평화롭고 복된 나라 사백년을 이어지다가
무도한 걸왕 나오면서 천지가 뒤집어졌지.
날마다 말희와 주색에 빠져 황음무도하게 지내니
성탕이 박땅으로 가서 추한 비린 내 씻어 버렸지.
걸왕 추방하여 난폭한 학대에서 백성 구했더니,
31대를 거쳐 상나라 주왕에게 왕위 전해지니...
<봉신연의>의 시대 배경은 은나라 말기인데, 하나라의 폭군인 걸왕을 쫓아내고, 은나라를 세운 성탕임금, 하지만 은나라도 그 말기에 이르러서는 과거 하나라의 걸왕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전혀 뒤처지거나 모자라지 않는 암군이자 폭군인 주왕에게 왕위가 전해지게 되는데, 그는 천자라는 지위에 있으면서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는 어진 정치는 조금도 펼칠 생각은 안하고, 오직 여우의 정령이 변화한 달기라는 미녀에게 홀려 정사를 외면함은 물론 엄청난 규모의 각종 토목공사를 벌여 백성들의 원망과 원한을 사며, 행여라도 자신에게 간언하거나 반대하는 신하들이 있다면, 보도 듣도 못한 잔혹한 형벌로 고통스럽게 죽였다. 주왕은 천자의 권력을 악행을 일삼는데만 전적으로 사용하는 그야말로 무도한 임금이었다.
“폐하, 녹대를 짓는 일은 백성을 고생시키고 재물을 허비하는 일이오니 생각을 돌리시옵소서. 이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옵니다. 지금 사방에 전쟁이 일어나고 홍수와 가뭄이 빈번하여 관청의 창고가 텅텅 비어 백성의 삶이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나랏일에 관심을 기울이시지는 않고 매일 주색에 빠져 현명한 신하를 멀리하고 간신을 가까이하시면서 정치를 어지럽히며 충신을 죽이고 계시옵니다.”……“뭐라고? 이런 가소로운 놈! 어찌 감히 천자를 비방한단 말이냐? 여봐라. 당장 이 놈을 끌어내 해시형에 처하여 국법을 바로 세워라!” (2권 70~71면)
18회 초반부의 내용이다. 강상이 주왕에게 간언을 올리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주왕의 노여움을 사 포락형, 해시형 등의 형벌에 처해 질 위기에 놓이자 강상은 비범한 재주로 재빨리 몸을 피해 구룡교 아래로 뛰어 내려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형편이 이렇다 보면, 충신이 없고 간신들만 우글거리는 나라는 더욱더 혼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는데, 주왕의 폭정이 얼마나 심했냐 하면, 성품부터가 잔혹하기 그지없고 술과 여색에 미쳐 충신을 포락지형에 처하거나 애첩인 달기의 거짓 병을 고치기 위해 숙부이자 충신인 비간의 심장을 도려내서 약으로 쓰는 등 온갖 나쁜 행위들을 벌이는데 잔혹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주왕 자체가 왕재(王才)가 되기엔 자질이 턱없이 부족한 인물이었다. 주왕 못지 않게 주의 깊게 봐야 할 인물이 바로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요마 달기이다.
달기는 오문으로 들어가 구룡교를 지나 대전에 이르러 예법에 따라 절을 올리며 만세 삼창을 했다. 주왕이 유심히 살펴보니 달기는 삼단 같은 검은 머리를 틀어 올리고 살구처럼 발그레한 얼굴에 복숭아 같은 볼, 빗방울을 머금은 배꽃 같은 미인이었다. “죄인의 딸 갈기가 폐하를 뵈옵나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
이 몇 마디에 주왕은 혼백이 하늘로 빠져 나가는 듯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귓불이 달아오르고 눈이 붉어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일어나서 탁자 옆에서 분부했다.(1권, 106면)
<봉신연의>에서 서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주왕과 달기의 만남을 묘사한 대목이다. 뒤에 펼쳐질 엄청한 악행들이 이 두 사람의 만남으로 행해지게 된다. 달기의 미색과 자태가 어느 정도 였으며, 주왕이 달기에게 어떤 첫 인상을 느꼈는지 잘 묘사되어 있다. 주왕은 처음 본 달기에게 그야말로 첫 눈에 반해 버린다. 이 둘은 사랑일지 모르지만, 은나라로서는 악과 악의 만남으로 결국 망국으로 치닫게 되는 순간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앞서의 언급처럼 봉신연의에서 여우의 정령이 변한 달기는 천하 일등 미색에 음탕하고 교활하며 잔인하고 궤계가 많은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데 마치 우리나라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구미호를 연상케 한다. 달기의 행태를 보면,
“달기, 이 천한 년! 우리가 살아서 네 살을 씹어 먹지는 못하지만 죽어서는 네 음흉한 영혼을 갈마 마시고 말겠다.”
궁녀들이 구덩이에 떨어지자 주린 뱀들이 휘감고 물어뜯으며 배속으로 파고드니 비명이 온 궁중을 뒤흔들었다. 이를 구경하고 있던 주왕에게 달기가 말했다. “이런 형벌이 아니라면 어떻게 궁중의 큰 병폐를 없앨 수 있겠사옵니까?”
주왕은 손으로 그녀의 등을 쓸었다.
“그대가 이런 신묘한 방법을 생각해냈구려. 정말 훌륭하오!”
그런데 여러분, 달기는 왜 때려죽인 궁녀와 환관의 시신을 술지게미 안에 넣게 했을까요? 달기는 이삼경 무렵 깊은 밤이면 본색을 드러내 술지게미 안에 있는 시체를 먹고 요사한 기운을 보양하여 주왕을 미혹했기 때문인데, 이를 묘사한 시가 있지요.
고기 걸어 숲 만들고, 술로 연못 만드니, 懸肉爲林酒作池
주왕의 무도함이 괴팍함의 끝을 보는 듯 했지. 紂王無道類窮奇(2권, 62~65면)
(책 속에 한자가 많이 나오다 보니,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한자, 한문 공부를 할 수도 있다.)
달기의 잔인함과 무고한 신하와 백성들을 함부로 마구 살육한 죄는 읽는 이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요즘 아침에 방영되는 드라마 “내 마음의 꽃비”에 악인으로 등장하는 이수창, 천일란 못지않은 잔인하고 무서운 그야말로 악한 캐릭터들인데, 작품 속에서 달기의 잔인하고 잔혹한 악행은 끝이 없을 정도다. 달기의 잔인무도함과 음탕함의 끝이 어디일까 상상하며 보는 것도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참고로 ‘재벌들의 호화롭고 사치스런 술자리나 방탕한 생활’을 의미하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가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하지만, 망국의 혼란한 시대에도 훌륭한 인물은 등장하기 마련, 이즘 대륙의 서쪽에서 세력을 키우던 주나라 서백(문왕)은 인재를 찾아 떠돌던 중에 위수 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70여세의 현자인 강상(강자아, 태공망)의 비범함을 한 눈에 알아보고 주나라의 재상으로 등용하여 마침내 은나라를 멸하고 주나라를 건국하려는 역성혁명의 기치를 내걸게 되는데,
위수 강가에서 낚시 드리우고
오로지 풍운 시절의 인연 기다렸지
나는 곰의 어진 징조로 군주는 현인을 찾았지.
여든 살에야 밝고 성스러운 주군 만나
비로소 팔백년 역사의 주나라 왕조 세웠지(2권, 88면)
문왕이 나는 곰의 꿈을 꾸고, 위수에서 강상을 초빙하는 23회~24회부터 이야기는 스피드 있게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봉신연의>의 매력은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더하여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나간 점도 대단하지만, 역시 진정한 재미와 매력은 전쟁장면이다.
“네가 나타라는 놈이냐? 내 선봉장을 다치게 한 자가 너라고?”
“가소로운 놈! 듣자 하니 네놈이 상대의 이름을 불러서 낙마시키는 재주가 있다고 하기에 내가 특별히 잡으러 왔느니라!”
그러면서 나타가 창을 휘두르며 달려들자 장계방이 황급히 맞서며 엄청난 격전이 벌어졌다. 둘은 어느새 삼사십 판을 맞붙었다. 태을진인에게 창술을 전수 받은 나타이다 보니, 장계방이 아무리 창술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어서 결국 그 술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나타, 당장 떨어져라!”
나타는 그의 주문에 깜짝 놀랐지만 풍화륜을 단단히 딛고 서서 떨어지지 않았다.(3권, 136면)
수십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이 각자 색다른 무기를 휘두르며 하늘과 땅에서 기상천외한 전투를 벌이는데, 하늘과 땅을 오가며 벌어지는 전쟁은 현실, 비현실을 떠나서 작가의 상상과 환상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소설의 재미와 몰입도를 높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선으로 대비되는 주나라와 악으로 대비되는 은나라와의 선악의 대결구도 속에서 주나라가 계속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나라와 한 번씩 승패를 주고 받으면서 주나라 건국의 고난과 어려움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삼국지에서 유비의 고난을 보는 것과 같았으며, 서유기에서 손오공 일행이 고난을 겪는 것과도 유사한 면이 많다. 마치 명대 소설의 한 특징을 보는 것 같은데, 즉 이야기 속 인물과 주제, 내용이 전혀 다르지만, 그 소설 특유의 장치는 비슷하다는 점이 그것이다. 서유기를 지은 오승은도 명대 인물로 알고 있다. 명나라 때 서유기, 봉신연의와 같은 판타지 성격이 짙은 작품이 쓰여 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나아가 중국 명나라 시대의 문학과 소설의 수준이 어느 정도 였는지 이들 작품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봉신연의>는 <서유기>와 함께 중국 신마(神魔)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건, 책 제목 중 ‘봉신연의’의 ‘연의’와 ‘삼국지연의’의 ‘연의’가 같다는 점이다. 봉신연의(封神演義)에서 봉신(封神)은 ‘어떤 인물을 신으로 봉한다’는 뜻이고, 연의(演義)는 ‘사실을 부연하여 재미있고 알기 쉽게 설명하거나 역사적인 사실을 부연하여 재미있고 알기 쉽게 쓴 책’이란 뜻이다. ‘연의’는 다르게 ‘연의소설’이란 표현으로 쓰기도 하는데, ‘연의소설’이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허구적인 내용을 덧붙여 흥미 위주로 쓴 중국의 소설을 의미한다. ‘봉신연의’ 또한 ‘초한연의’, ‘삼국지연의’ 등의 다른 연의소설처럼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에 <서유기>와 함께 신마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봉신연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널리 읽힌 작품이라고 한다. <봉신연의>의 다른 제목이 바로 ‘서주연의’인데, 지금으로부터 대략 300년 전 조선시대 처음 유입되어 널리 읽혔다고 한다. 봉신연의의 기본 뼈대에 해당되는 무왕벌주(武王伐紂)에 관해 조선시대 임진왜란 발발 전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던 율곡 이이의 견해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데, 율곡 이이는 ‘무왕벌주’도 옳다고 했고, 백이숙제의 ‘고마이간’도 옳다고 했다. 아마 <봉신연의> 후반부 무왕의 본격적인 은나라 정벌이 시작되면, 고마이간(叩馬而諫)의 고사로 널리 알려진 만고의 충신이자, 충신의 대명사 백이숙제가 등장하게 되는데, 강태공, ‘무왕벌주’의 역사기록은 조선의 학자들도 대단히 주목을 하고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생각이 된다. ‘무왕벌주’는 역성혁명으로 신하인 무왕이 천자인 주임금을 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이이는 폭군을 정벌하는 무왕과 강태공도 옳지만,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려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신하가 천자를 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간한 백이숙제도 옳다고 하였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 이것이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딜레마였다. 무왕벌주와 관련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소재였고, 이들의 이야기는 사기, 서경, 열국지 등 곳곳의 사서에서 언급되고 있다.
<봉신연의>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사실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서 속에는 머리와 꼬리에 해당되는 이야기만 있을 뿐, 몸통에 해당되는 중간 내용이 없다. 무왕벌주의 온전한 이야기는 오직 <봉신연의>를 통해서만 알 수가 있다. 이것이 명대 이후로 이 작품이 꾸준히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읽혀져 온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1회부터 45회까지는 은나라 주왕의 잔인무도한 폭정과, 역성혁명의 주역인 강자아의 등장, 서백 문왕이 주왕으로부터의 재앙을 피하는 내용, 은나라 주왕의 무장이였던 황비호가 주왕을 배반하고 주나라 강상에게 귀의하는 내용, 은나라와 주나라가 교전 상태에 접어든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봉신연의>의 진짜 재미는 4~7권 중․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46~97화에 걸쳐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정벌을 위해 군사를 일으키고 여러 제후들과 연합하여 벌이는 전투는 상상만으로도 설레인다. 백이숙제의 이야기도 이 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봉신연의>의 다음, 그 다음, 또 그 다음 이야기가 계속해서 궁금하고 기대된다.
그리고 이참에 상해고적출판사(2000)에서 출판된 한문으로 된 <봉신연의>를 구해서 원본 읽기에 도전해 보고 싶다. 물론 한문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솔출판사에 완역된 <봉신연의>의 번역을 참조하면 한문으로 된 원전 <봉신연의>를 독파할 수 있을 것 같다. 틈 나는데로 한문으로 쓰여 진 봉신연의를 백방으로 구해볼 작정이다. 이 정도면, 나 스스로가 이미 봉신연의에 푹 빠졌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이 벌이는 동양판 신들의 전쟁과 삼국지, 서유기가 한데 버무려 진 듯 한 무왕벌주(武王伐紂)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지금 <봉신연의>를 펼쳐보기 바란다. 선선한 가을을 맞아 함께 하기 더없이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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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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