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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eee
  1. 나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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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둘과 이 책을 같이 읽었다. 여성이라고 해서 다 페미니스트가 아니듯 그들의 반응도 각기 달랐지만, ''과격하다'' ''일반화가 지나치다''는 데는 둘 모두 의견을 같이 하는 듯했다.



남자인 내게 이 책은 그리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많은 경우 그렇듯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지나치게 단정적이거나 남성에게 적대적인(사실은 남성 중심적으로 짜여 있는 ''구조''에 대한 적대감이겠지만) 대목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발끈하게 되는 것이,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나 역시 "여성을 타자화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남성인 모양이다.



타자, 억압, 해체, 재구성, 차이, 권력, 보편과 특수…. 이런 표현들이 쉴새없이 난무하는 걸로 보아 저자의 이론적 토대는 아마도 좌파 후기구조주의인 모양이다. 푸코의 저서 중 끝까지라도 읽어 본 건 <광기의 역사> 하나뿐이지만(그나마도 뭔 소린지 1/100도 이해를 못 했지만), 일상적인 언어사용방식에 권력관계가 내재돼 있다는 논리는 아마도 <말과 사물>쯤에 나오면 딱 어울리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그게 이 책의 중심어이자 궁극적인 문제제기 대상이다. ''남성 중심적 언어''.



뭐 나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특별한 거부감도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X대 개페미'' 운운하는 마초들과는 좀 다르지 않겠나, 평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저자의 방식대로 얘기하자면 나 역시 남자와 여자의 성 역할을 이분화하려는 성향이 강한 ''전통적인 남성''이다. 남녀관계를 유지하는 ''감정노동''이 지금까지 여자에게만 지워진 의무라는 말에, 이성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실제 연애관계에서는 나도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경상도 출신 남자라는 사실이 면죄부가 되지 않을 것임은 나도 잘 안다).



그래서 뜨끔했다. 종종. 뜨끔했다는 것은 나 역시 그게 옳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일상에서 이를 개선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실천 없는 이념''의 반증일 터이다. 그러므로 폭력적인 가부장제의 폐단을 개선하는 출발점이 ''일상''이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또한 페미니즘의 존재 이유가 바로 그 ''일상''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면 거기에 내가 반감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저자가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의 목표가, 남성중심주의를 여성주의로 ''대체''하는 것, 즉 중심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교체하는 데 있지 않다는 데 있다면 그 역시 매우 공감할 만하다. 뭔가를 새로운 중심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또 다른 지배 이데올로기를 세우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페미니즘의 이념이 ''여성 우위''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닌, ''또 다른 목소리''를 되찾는 데 있다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해 남성들이 갖고 있는 기존의 관념이 잘못됐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난 뒤 ''명쾌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아마 저자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담론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주의''라는 말이 숱하게 나온다. 그야말로 수많은 이데올로기의 향연이다. 읽는 동안은 ''와, 정말 그렇네''라며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어도, 책을 덮은 뒤 ''그래 뭘 어쩌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게 담론적 글쓰기의 폐단이다. 문제제기야 담론적으로 할 수 있다 쳐도, 대안 제시까지 담론적이어서는 안 된다. 대안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막연히 ''이건 이래서 틀렸다. 그러니 저렇게 변해야 한다''만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긴 이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점하고 있는 위치를 볼 때 대안 제시가 과연 쉽겠는가 하는 안쓰러움은 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페미니즘이 ''저항이론''이 아닌 ''공존을 위한 이론''이 되려면 비판적 담론으로 일관할 게 아니라, 남성의 지배권력과 협상할 수 있는 그 뭔가를 내놔야 한다. 이 협상은 결코 쉽지 않다. 기득권을 쉽게 내놓으려는 집단은 없다.



전선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적절한 전술을 고안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일 것 같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여성들조차 젠더 문제가 정치성을 띤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우니, 남성들이야 오죽할까. 뭔가를 바꾸려면, 그것을 바꿔야 한다는 절박함부터 느끼는 게 순서다. 남성들이 과연 그 같은 절박함을 어느 세월에 느낄까. 남성 지배의 역사는 1000년이 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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