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땃지
- 작성일
- 2021.10.25
내가 늙어버린 여름
- 글쓴이
-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저
김영사
“나는 갑작스럽게, 그 여름에 늙음을 보았다.
제일 먼저 나 자신의 늙음을, 그리고 주변 곳곳에 널려 있는
다른 사람들의 늙음을.” -본문 75페이지 중
"늙음에 대한 깊고 명료한 접근"이라는 띠지 문구가 정말 잘 어울리는 책이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고,문장도 길지 않고 짧게 짧게 끊어지는 편이다. 죽음과 늙음에 대해 다루고 있으나 저자의 솔직하고 재미있는 표현 덕분에 내용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간접 경험을 위해서는 독서가 최고라는 말을 믿는편이어서, 내가 많이 생각해보지 않은 늙음과 죽음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한 이 책을 골라 읽었다.
“그 아이들은 나와 같은 세대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세상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유유자적 활보한다. 나는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기가 몹시 힘든데 말이다. … 요즈음 그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알지 못한다. 아니 나를 보긴 하는지조차도 모른다. 나는 그 아이들이 자기들 방식으로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만큼은 전혀 의심하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본문 51페이지 중
우리 집은 할머니와의 교류가 잦은 편이어서,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책에서 이 문구를 보니까 할머니가 며칠 전 내게 물어오셨던 일이 생각이 났다. 휴대폰을 가져오시며, 카카오 톡을 어떻게 여시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그 때 알려드리면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던게 떠올랐다. 어렸을 때는 할머니가 정말 커보였고, 꼬꼬마를 벗어난 후에도 내게 할머니는 지혜롭고 침착하신 분이었다. 지금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너무나도 쉽게 다루는 메신저를 다루시는 방법을 몰라 가져오시는 모습을 보니 뭔가 마음이 찡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게임을 하실 때 캐릭터가 잘 보이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거나, 손이 게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농담처럼 말씀하시는 걸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적해진다. 할머니의 세월이 점점 흘러가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기분이 자꾸 싱숭생숭하다. 우리 할머니도 저런 생각을 하고 계실까. 시간과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 변해가고 당신께서는 따라가지 못한다고, 우리 손자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모르는 상태로 외로움을 느끼고 계실까? 나는 할머니가 당신을 ‘별 볼일 없는 여자’로 느끼는 것이 싫다. 다른 건 못해드리더라도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옛날 이야기를 더 귀기울여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렇지만 내가 확신하는 한 가지는, 우리 앞엔 아직도 순수한 웃음,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 아무도 쓰러뜨릴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연대의식, 늘 함께한다는 암묵적인 동조 의식이 굳건히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운명이 우리를 영원히 떼어놓기 전까지는.”
-본문 160페이지 중
아직 나이가 어린편에 가까워서 그런가, 내가 나이가 든다면 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은 있으나 정말 나이가 7~80세가 된 노인이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늙었을 때”를 상상해보았는데,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디가 많이 아플지, 얼마나 건강할지 등이다. 내게 늙음이란 신체적 변화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데, 특히 건강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젊었을 때처럼 몸이 빠르게 낫는것도 아니고, 조심을 해도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병들이 있다.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몸에 무언가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자는 그런 것들 또한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과 나누는 일상의 주제로 받아들인다. 나도 이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같이 늙어가고 몸이 아픈 친구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병원을 추천하고 약간은 슬퍼하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며 안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지금은 너무 먼 미래같아서 상상이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이런 마음 상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내가 지금 아무리 이런 다짐을 하고 생각을 해도 내가 ‘늙는다’라는 자각을 했을때는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한동안은 우울해 할지도 모른다. 결국은 모든 변화들을 받아들이면서 그 흐름에 맞추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당연한 것에 적응해가면서.
“지난 70년 세월 동안 나는 그럭저럭 살 생각만 해왔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 여정의 끝을 상상하려니, 그냥 상상이 안된다. 모든 것의 뒤에 공백만 이어질 거라니. 침묵. 그러면서도 약간의 호기심이 가미된 불안한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게 어떻게 올까?”
-본문 187 페이지 중
이 책에서 가장 도드라지게 눈을 끄는 것은 솔직함이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너무나도 철학적인 성인들의 의견만 접해봐서 그런가, 나이가 들면 나도 자연스럽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어느 순간에는 초연한 감정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다가 깨달았다. 저자가 어느 순간 자신의 늙음을 발견한 것처럼, 늙음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그렇다면 죽음 또한 마찬가지다. 20세 젊은이든, 40세 직장인이든, 70세 노인이든 죽음에 있어서는 당혹스럽다. 갑작스럽고 불안하다. 초연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작가는 늙는다는 것을 자각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조금은 불안해하고, 궁금해하며 많은 고민을 한다. 너무나도 솔직한 작가의 심정을 보면서 나도 잠시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를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을 앞둔 나는 전혀 초연하지 못할 것이다. 담담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며 나를 달래지 못할것만 같다. 시간의 흐름은 벗어날 수 없으니 나도 언젠가 직면해야 할 일일텐데, 지금은 두려움만 앞선다. 한편으로는 내 주위에 계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대부분 이런 두려움을 안고 사실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문장 몇개와 책 몇장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의 세상 전부는 절대 아니겠지만, 조금이라도 그분들의 입장에 다가가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제목이 ‘내가 늙어버린 여름’이지만, 단지 늙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작가는 자신이 늙는다는 것을 자각하고 매일의 생활에서 느끼는 것들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서술한다. 분량이 길지 않고, 문장도 짧고 유쾌하지만 작가의 삶이 담겨져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뀌었던 것들, 주위의 환경 또는 자신의 생각, 가치관의 변화들을 따라가 보며 작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면서 잠시 내가 노인이 되는 상상을 하고, 세월이 지난 후 내 모습을 생각해보며 저자처럼 ‘늙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 좋아요
- 6
- 댓글
- 13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