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142)

세상의중심예란
- 작성일
- 2012.5.14
7년의 밤
- 글쓴이
- 정유정 저
은행나무
에필로그, 작가의 말까지 모두 읽고나서도 급격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책이 과연 몇 권이나 될까? 『7년의 밤』은, 책을 읽기 시작한 이래 보기 드문 핵펀치감이다. 결코 과거라 할 수 없는 가족 전부의 인생을 송두리째 파멸의 구덩이로 몰아간 현재진행형의 서슬 퍼런 잔혹극이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 놓인 팽팽한 외줄타기다. 살아 숨쉬는 동안 구석구석 헛점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다. 매년 매일 매순간 꼿꼿이 선 칼날 위를 맨발로 밟아가며 피를 흘리면서도 그 출혈을 멈추게 할 수도 없는 시치프스의 신화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미치광이 살인마' 최현수의 아들 서원이 진행하는 서술 방식 속에, 7년 전 한 소녀의 죽음이 가져다준 '세령호의 재앙'을 기록해 온 룸메이트 승환의 원고를 액자화 시키는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열두 살짜리 소녀를 세령댐에 빠뜨린 것을 시작으로 소녀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기 아내마저 죽이고, 댐 수문을 열어 마을주민 절반을 수장시켜버린 '살인마 최현수'의 아들 서원. 살인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실린 '선데이매거진'은 열두 살 소년에게 친척집을 전전하고 전학을 여러 차례 반복하게 하지만 끝내 고등학교 중퇴로 세상을 등지게 한 채, 지도에도 없는 외딴 등대마을에 머무는 것 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함께 했던 룸메이트 승환은 돌연 사라지고, 뜬금없이 배달된 승환의 원고를 통해 7년 동안의 끔찍한 여행은 다시 시작된다.
세령마을의 유지로서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오영제는, 악마라 불릴 수 있는 다양한 모든 이름을 떠올리게 하고, 새까맣고 텅빈 동공은 심리적 공포심을 극도로 자극하는 인물이다. 전직 야구선수였던 최현수는, 우물에 빠져죽은 아버지의 망령이 자신에게까지 덮쳐와 소녀를 죽였다는 자각과 불안감이, 멈출 수 없는 절망과 자기혐오를 통해 최악의 선택을 하게 만든다. 주변인인 것 같으나 사건의 가장 큰 열쇠를 쥐고 있는 승환은 어쩌면 서원의 바람막이인 동시에 가장 큰 손실을 준 인물일 수 있다. 그리고 열두 살의 소녀 세령은, 소설 도입부에 죽음을 맞이하지만 소설의 전체를 움켜쥔 채 신비롭고 오소소한 소름을 돋게 하는 존재다. 오영제에게 가족은, 병적인 집착과 자기 것에 대한 자기세계의 핵심이었다. 자신의 권위와 영향력과 통제력을 확인하는 대상, 자신이 주는 것만 받고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주는 존재, 자신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로봇이었다. 정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은 자기세계가 침범당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폭력의 또다른 이름 교정을 통해 팬티바람으로 뛰쳐나간 열두 살 딸 세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것이 자신이라는 죄책감 따위는 없다. 오로지 재수없게 안개낀 빗길을 운전한 최현수가 죽일 놈이고 그 죽일놈의 아들 또한 그 이상의 고통으로 제거 당할 대상인게다.
삶이란 무엇인가? 살아지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란 이름으로 이렇게도 살아지는 것이다. 정말이지, 최현수의 죽음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한 것이었을까? 그의 죽음이 삶으로부터 자유를 선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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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