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에서 배우는 인생

djqtdma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5.2.2
주말 동안 만들어본 버터롤빵입니다. 빵을 좋아하긴 하지만 왠지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해서 그 동안은 시도할 생각을 해보지 않았는데 몇 번 만들어보니 다른 요리와 다를 바 없고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네요. 아직도 레시피 없이 빵을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어렵게만 보이던 빵 만들기도 어느 정도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역시 무엇이든 도전해보고 실패도 해 봐야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도 늘어가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모든 요리가 그렇긴 합니다만 빵을 만들려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쫄깃한 식감을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 육체적인 노동을 동반하여 반죽을 해 주어야 하고 충분히 발효가 될 수 있도록 오랜 시간 동안 휴지기를 가져야 합니다. 밀가루로부터 완성된 빵이 만들어져 나오기까지 적어도 2시간 이상은 걸리는 듯 합니다. 그래서 성격이 급한 사람은 빵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느긋하게 시간의 흐름을 즐기며 기다릴 줄 알아야만 하는 것이 빵 만들기가 아닌가 싶네요.
요리를 할 때 조급함은 최대의 적이요 실패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재료에 따라서는 쎈 불에서 짧은 시간에 화르륵 만들어내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요리들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성껏 프로세스를 밟아가야만 맛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리를 할 때 간혹 시간이 없어서 서두르다 보면 예상했던 맛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좋은 재료를 준비하고, 그것들을 정성껏 손질하고, 숙성이 필요한 재료들은 충분히 숙성을 시키고, 필요한 시간만큼 재료 본연의 맛이 우러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있어야 깊은 맛이 담긴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리는 인내심을 기르기에 좋은 수단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내심은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웅 중 한 명을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겠지요.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많이 활용한 전략 중 하나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조정의 명이 있더라도 전세가 불리할 때는 출전하지 않고 유리한 때가 오기를 기다렸었죠. 그리고 비로서 때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전투에 임함으로써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불리한 전세에도 불리하고 참지 못하고 전장으로 뛰쳐 나갔다면 분명 큰 성공을 거둘 수 없었고 우리나라 역사도 많이 바뀌었을 겁니다.
인내의 반대 개념을 조바심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살면서 조바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조바심은 서둘러 결과를 얻고 싶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알묘조장(揠苗助長)'이라는 중국의 고사성어를 알고 계시죠? 송나라의 한 농부가 자신의 논에 심은 벼가 이웃의 벼보다 늦게 자라는 것 같자 조바심에 싹을 잡아 당겼다가 모두 말라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놔두었더라면 별 일이 없었을 것을 지나친 조바심이 일을 그르친 것이죠.
인생을 살면서 조바심을 버리고 적당히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단적으로 말해 성공하고 싶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그만큼 성공의 가능성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투자의 귀재라고 하는 워렌버핏의 성공 비결은 숨겨진 투자대상을 찾아내는 그의 혜안도 있지만 그렇게 찾아낸 투자대상을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참고 바라보며 보석이 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 때문이었습니다. 호아킴이 쓴 '마시멜로 이야기'에도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사례가 등장합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나누어주고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는 아이들과 유혹을 참고 기다리는 아이들을 추적해본 결과 인내심을 가지고 유혹을 뿌리친 아이들이 더욱 큰 성공을 이루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인생에서 조바심 때문에 그르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직장에서, 사업에서, 인간 관계에서, 운동에서, 다이어트에서, 투자에서, 자녀관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결혼생활에서 우리는 얼마나 빨리 결과를 얻고 싶은 욕심에 시달리며 그것들이 어떻게 일을 그르치는지 말입니다.
저 역시 조바심 때문에 최근까지도 일을 그르친 경우가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책을 내기 위해서 원고를 쓴 후 몇 군데 출판사에 투고를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개의 출판사에서 제 원고를 책으로 내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는 신생 출판사인데 최근에 초대형 베스트 셀러를 출판한 회사였고 다른 하나의 회사는 대형 베스트셀러는 없지만 전문성을 갖춘 안정된 중견 출판사였습니다. 그런데 두 출판사간에 책을 내겠다는 시기가 한 달 정도 차이가 났습니다. 저는 하루라도 빨리 책을 내고 싶은 욕심에 다른 요인들을 모두 무시하고 책을 빨리 출간하겠다고 한 업체와 계약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와 달랐습니다. 계약 이후 그 출판사는 다른 원고의 출판 때문에 시간이 없다며 원고검토를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했고 그 깊이마저 부족해 보였습니다. 결국 참다 못해 계약을 파기했고 저는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 출판사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좋은 출판사를 만나 새로 출간계약을 하긴 했지만 겨우 한 달이라는 극히 짧은 시간의 차이를 기다리지 못했던 조바심이 오히려 반 년 가까이 출간이 늦어지는 우를 범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기다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기다리는 것이 열정을 갖지 말라는 것도 아닙니다. 열정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 열정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때가 와야만 합니다. 한 번 끓기 시작한 물은 매서운 속도로 끓어 오르지만 그 임계점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100도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맛있는 간장이나 된장은 적합한 환경에서 충분히 기다릴 때만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급하다고 해서 숙성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는 법이죠.
톨스토이가 쓴 '전쟁과 평화'는 5년의 시간이 걸렸고 박경리 선생이 쓴 '토지'는 무려 2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려 완성되었습니다. 조정래 선생이 쓴 태백산맥도 기획부터 자료수집, 그리고 집필과 탈고까지 1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주의 두모악에 가면 '김영갑 갤러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영갑씨가 담아낸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끽할 수 있는데 멋진 풍광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서 김영갑씨는 사시사철을 한 장소에 머물며 마음에 드는 풍광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는군요.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보면 이성적으로 풀어낼 수 없는 감동이 전해지는 듯 합니다.
다혈질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기다림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조바심을 버리고 그 자리에 인내심을 심으면 삶이 더욱 만족스러워지지 않을까 합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