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낙지볶음을 만들어 봤는데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다행히 맛이 괜찮네요.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낙지볶음 한 그릇이면 밥 한 그릇 뚝딱 감추는 건 우스운 일이겠죠? 그런데 낙지볶음이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은근 까다롭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시간조절입니다. 낙지는 오래 볶으면 질겨지기 때문에 아주 센 불에서 짧은 시간 동안 화르륵 볶아내야 살이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오통통한 식감을 즐길 수 있습니다.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이런 요령이 초보들에게는 실천하기 쉽지 않습니다. 센 불에서 빠른 시간 조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숙달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요리법이거든요. 요리에 재미를 느끼고 틈날 때마다 요리를 한지가 벌써 7년이 다 되어가지만 취미로 하는 것이라 그런지 여전히 요리는 쉽지 않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제가 만든 요리에 감탄을 하며 놀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절로 얼굴이 찡그려지는 맛에 깊은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닌데 그 정도면 잘한 것이라고 애써 속으로 위안을 하지만 힘들게 만든 음식이 제 맛을 내지 못할 때는 심히 속이 상합니다.

그래도 요리하는 일은 가장 재미있는 일 중 하나입니다. 예전에는 요리라고 하면 여자들만 하는 것처럼 여겼고 남자가 요리를 한다고 하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요리를 하는 남자분들이 상당히 많아진 느낌입니다. 요리 경연 프로를 봐도 여자들 못지 않게 남자분들이 많이 등장하더군요. 이제 요리는 더 이상 특정 성(性)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리를 하면 무엇이 좋을까요? 우선 믿을 수 있는 좋을 재료를 써서 맛있는 음식을 위생적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겠죠.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안심할 수 있겠고요. 건강과 위생 뿐 아니라 비용면에서도 큰 이득이 됩니다. 예를 들어 4인 가족이 음식점에서 감자탕을 시켜 먹는다면 3~4만원의 비용이 들겠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면 1~2만원 정도로도 푸짐하게 즐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요리의 장점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요리를 하게 되면 두뇌가 건강해져서 인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의 뇌는 '가소성'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소성이란 물리학에서 유래된 개념인데, 어떤 물체를 외부에서 일정한 힘을 가하면 그 물체의 형태가 변하고 주어진 힘을 제거하더라도 변형된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찰흙으로 무언가 물체를 만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뇌는 외부로부터 지속적인 정보자극을 받음으로해서 미시적으로는 신경세포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을뿐 아니라 뇌의 역할과 기능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데 이를 뇌의 가소성이라고 합니다. 조금 어려우시죠? 쉽게 말하자면 뇌는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지속적으로 그 구조를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번 만들어진 뇌가 영원히 굳어져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죽을 때까지 계속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뇌의 이러한 특성을 잘 활용하면 나이 들어서도 뇌를 건강하게 잘 활용할 수 있고 알츠하이머와 같은 질병의 위험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요리는 뇌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요리는 손과 각종 지각활동, 그리고 사고와 인지과정 등을 통해 두뇌를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만듦으로써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우선 요리는 오감을 총 동원하는 지각활동입니다. 눈을 통해 각종 재료를 구분하고 조리과정을 지켜보게 됩니다. 후각을 통해서 냄새를 맡게 되고 미각을 통해 맛을 보게 됩니다. 재료들을 다듬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그것들을 만져야 하므로 촉각을 활용하게 되고 재료를 썰거나 보글보글 음식이 끓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청각을 자극하게 됩니다. 이렇게 신체의 모든 감각계를 통해 받아들인 감각정보는 고유의 신경신호로 변환되어 뇌로 전달되고 두정엽이나 후두엽, 측두엽 등 각각의 감각에 적합한 두뇌영역이 활성화되게 됩니다. 또한 그와 관련된 영역이 활성화되어 엽합활동이 일어나게 되고 모든 활동을 총괄하는 전두엽의 기능도 활발해지게 됩니다. 비록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신경쓰지 않는 사이에 우리 두뇌는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죠.

요리는 또한 손을 쓰는 활동입니다. 두뇌의 가장 윗부분을 두정엽이라고 하는데 그곳에는 헤어밴드처럼 얇은 띠 형태로 인체의 감각을 나타내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이 부분에는 신체에서 느끼는 감각의 크기에 따라 가상의 신체지도가 생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이 손입니다. 다시 말해서 손을 많이 쓰면 두뇌의 감각을 나타내는 영역 중 가장 많은 부분이 활성화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명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이 크게 발달한 이유도 바로 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니 손을 많이 쓰면 쓸수록 유리하겠죠. 요리 과정에서 손을 쓰는 것은 그만큼 두뇌에 좋은 자극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리를 하려면 근육활동도 필요합니다. 재료를 다듬고, 씻고, 썰고, 반죽을 하고, 두드리고, 늘리며, 그릇에 담고, 볶고 끓이는 모든 행위는 모두 근육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뇌는 몸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는 머리를 좋게 하려면 두뇌활동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여겼지만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몸을 많이 쓰면 쓸수록 두뇌활동도 왕성해지고 머리가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요리를 하는 동안 다양한 근육을 움직이고 몸을 쓰는 것은 두뇌를 끊임 없이 마사지 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자주 씹는 활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이를 썰다가도 한 입, 당근을 썰다가도 한입, 사과를 썰어 넣으면서도 한 입, 고기가 잘 익었나 맛을 본다고 한 입...이렇게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씹는 활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음식물을 씹는 일은 단순히 턱관절을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집중력을 길러주며 뇌세포를 자극하여 뇌 활동을 활발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세로토닌 신경세포를 자극함으로써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시켜주어 감정을 밝게 조절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껌만 씹어도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는데 요리를 하면서 계속 씹는 활동을 한다면 두뇌는 지속적인 자극을 받게 되겠죠?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주의를 기울이는 등 고도의 인지활동이 필요합니다. 의도적인 사고와 주의가 필요한 것이죠. 요리의 재료들을 순서에 맞게 투입해야 하고, 적절한 불의 세기를 조절해주어야 하며 맛을 내기 위해 원하는 양념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설탕을 넣을 순간에 소금을 넣는다면 맛이 크게 달라질 테니까요. 집중력도 필요하고 사고력과 판단력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순서적으로 행동을 계획하고 판단하여 실행하는 사고활동은 주로 앞 이마쪽에 위치한 전두엽에서 이루어지는데 요리를 하는 동안 전두엽은 지속적인 자극을 받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종합해 보자면 요리는 신체의 모든 감각기관을 활용함으로써 지각활동을 풍부하게 만들고 손을 비롯한 신체근육을 움직임으로써 뇌를 자극하는 활동입니다. 또한 의도적인 주의와 사고활동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두뇌의 전 영역이 고르게 활성화되고 자연스럽게 뇌는 발달하게 됩니다. 뇌가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뇌의 기능을 충분히 활용한다는 것이며 노화를 방지한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나이들어갈수록 뇌의 노화는 어쩔 수 없지만 노화속도를 늦추고 보다 건강하게 활용할 수는 있습니다. 뇌가 건강해지면 뇌의 노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질환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삶 자체도 행복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그 동안 요리를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그 혜택에 대해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요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네요. 귀찮다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주방에 서야겠습니다. 좀 더 젊게, 그리고 좀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요리를 배워보세요. 성취감과 만족감은 물론 두뇌를 젊게 만드는데도 효과 만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