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리뷰

테일러수입푸드
- 작성일
- 2024.4.30
일인칭 가난
- 글쓴이
- 안온 저
마티
가난.
가난조차 도둑맞는 시대에서 가난이란 도대체 뭘까. 사전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애매하게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삶에서 가난을 주관적으로, 특히 물질적 관점에서 인식한다. 평균적인 수준보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다면 가난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욱 '못 살아야'할까.가난은 흔적을 남긴다. 진하게. 아물더라도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긴다.
가난한 이들은 안다. 가난을 숨기는 것부터 일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주공아파트에 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없었다. 행복한 가정인 척, 집안에 문제가 없는 척을 했다. 학교에서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멸균우유도 다른 아이들에게 해명의 대상이 됐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곤 하지만, 당시에는 차상위 계층의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가난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에게 가난은 간단하다. 부족한 것. 돈이 없는 것. 숨겨야 하는 것. 놀림거리가 되는 것. 저자는 고학력이 살 길인 것 같아 열심히 공부했다. 어머니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딸의 학원비를 벌었다. 저자의 유년 시절인 00년대도 가난의 탈출구는 교육이었다.
나의 연기는 끝날 줄 몰랐다. 무엇에 눌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주눅 들지 않으려고 이런 말, 저런 제스처를 꾸며냈다. 만사에 무관심하게 굴면 차라리 가난한 티가 덜 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세상 쿨한 연기자가 되었다. 나는 가난도 부끄러웠지만, 그렇게 애쓰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66p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받는 저자의 가정의 유일한 잉여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무릎이 아작난 어머니로부터만 나왔다. 저자는 국가 복지의 허점을 말하는데, 수급비 조건 선에서만 수익활동을 하는 어머니의 고민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돈을 더 벌고 싶었지만 몸이 불편한 경단녀를 써줄 곳은 드물었고, 수급비를 훨씬 뛰어넘을 만큼의 돈을 벌기도 어려웠다. 애매한 상황에서 더욱 아껴 쓸 수밖에 없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가정의 문제였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었고 눈도 안 보이며 돈도 못 벌었다. 심지어 만취했을 땐 폭력을 행사했다. 콩쿠르에서 3등까지 했던 저자에게 할아버지가 사준 피아노를 팔아버릴 정도였다. 어머니는 합의이혼을 통해 독립하려 애썼지만, 쉽게 이뤄질 수 없었고, 결국 모든 걸 잃고 자존심마저 상한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번개탄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빚을 남겼다.
저자는 어린 시절 가난을 나눈 이웃 동생 열음과 탈출을 이야기했다. 집안과 형편이 편안한 것이 아니라 탈출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게다가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대체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는 모습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가난은 수많은 갈래로 퍼져나간다. 중학교 친구 담이의 부모는 자고 있는 담이 앞에서 식칼을 들고 서있었다. 열음은 말한다. "언니, 우리를 아는 건 우리뿐이야."
저자는 작가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국어국문과에 진학한다. 형편상 기숙사에 들어갔지만 바퀴벌레와 쥐가 나오는 열악한 환경을 경험하고, LH 대학생 셰어하우스 전형을 통해 비교적 괜찮은 집에서 룸메이트와 살게 된다. 아르바이트를 두 개, 네 개로 늘려가며 학점조차 챙길 수 없었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학점이 높아야 했는데, 겨우 과락을 면한 정도였다. 그렇게 종합학원 강사로도 일했지만 특수고용 상태로 6년을 일해 제대로 보호받지도 못했다.
저자는 학석사 연계과정을 신청하며 가난한 여자 대학원생의 삶을 걸었다. 교수는 박사과정까지 수료하지 않는 저자를 못마땅해했는데, 돈을 벌어야 하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세상'에 대한 인식은 연애 상대와도 갈라졌다. 애인들과의 다툼은 사랑으로 위장한 계층 갈등이었다. 일을 하며 잠을 자지 못해 건강이 나빠졌다. 그녀의 끼니는 삼각김밥이었고 소화불량을 달고 살았다. 누군가에겐 가끔씩 먹는 특식일 수 있지만, 항상 먹는 끼니였다. 그것도 꽤 괜찮은 끼니. 가난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시간에도 있다. 가난한 사람도 시간도 부족하다.
한번 맛보면 가난의 맛은 잊히지 않는다 (...) 가난은 헤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 인력에서 벗어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그것은 헤어날 길 없이 우리를 집어삼킨다.
137p
가난은 자존심을 파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은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드러내야 했다. 가난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는 일은 가진 자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자는 학원 강사일을 하며 자소서 대필 문의를 많이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아무리 궁할지언정 자존심을 팔 수 없었다"라는 이유였다. 있는 자들은 가벼이 보는 가난의 자존심이다. 가난한 이들이 괜찮게 살려면 열심히 능력을 팔아야 한다.
저자는 유기묘 단이를 입양하며 돈을 아낌없이 쓴다. 그는 단이와 가난을 나눌 생각이 없었다고 말한다. 수술비로 450만원도 여기저기 모아서 썼다. 누군가는 가난하다면서 고양이에게 돈을 그렇게 많이 쓰느냐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은 그 상처를 타인을 돌보거나 돕는 방식으로, 다른 대상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그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한다. 나는 고양이 단이와 저자의 관계 속에서 얻은 믿음과 행복이 사회와 인간에게 상처받은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이런 글은 경험한 이들만이 공감하는 호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작 그 현실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들은 외면하고, 상처받은 이들이 모여 공감하는 그런 상태. 누군가는 가난한 개인을 탓한다. 왜 극복하지 않냐고, 더 노력해 가난을 탈출하려 하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저자와 같은 가난의 수렁에 빠진 이들을 구출해 공평한 출발선에 둘 때 타당한 이야기다. 저자의 해외여행 이야기에서 가난에 대한 호혜적인 시선이 잘 나타났다. 차상위 계층 중 영어성적이 좋은 학생에게 미국 여행을 보내줬던 재단을 통해 저자는 미국 여행을 가게 되는데, 저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해외여행 같은 것이 아니라 일상의 문제 해결이 되는 사회, 서로가 어느 정도의 부담을 나누는 사회 아니었을까.
나는 이 책을 가난에 대한 호소, 혹은 가난의 흉터를 드러낸 에세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난에 대한 한 작품이라고 하기엔 다소 아쉬운 면이 있었다. 수치나 통계 같은 사회과학적 요소도 부족했고, 여백을 늘려 장수를 늘린 듯한 기분도 들었다.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에는 대놓고 드러내기보다는 특징이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서술이 효과적일 때가 있다. 중간중간 드러나는 가난에 대한 저자의 직설적 주장과 묘사는 안타까움을 자아냈지만 특정 모습이 가난으로 명명될 때 가난의 의미가 한정되거나 고착화되지 않나 생각해 본다. 한편으론 이런 글에서 부르주아적인, 그럴싸한 문학적 표현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기생충>과 같은 작품들이 찬사를 받으면서 가난과 불평등이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아직도 이 사회는 가난을 하나의 대상으로, 그저 영화관에서 즐기는 유희로 보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가난은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아물더라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모든 인격을 '괜찮게' 키워내고 있는 사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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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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