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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길
- 작성일
- 2022.4.1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 글쓴이
- 무경 저
부크크오리지널
-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

1929년, 미국에서 터진 대공황으로 세계가 흔들리던 그 해! 나라를 빼앗긴 조선의 경성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쇠창살 너머로 어수선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렸다. _첫 문장
일제는 삼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독립의지를 불태우자 힘으로 굴복시키려던 태도를 버리고 문화통치로 전환한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발행을 허가하고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하고 산미증식계획을 시행하는 행보를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조선의 물적, 인적 자원을 쉽게 수탈하려는 일제의 기만이었을 뿐이다. 이런 시대적 아픔이 존재하는 시기,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는 모던보이 '오덕문'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모던'이 삶의 기조인 오덕문은 서양 주택인 은일당을 하숙집으로 소개받고 무척이나 기뻐한다. 우여곡절 끝에 은일당에서 하숙을 하며, 그 집 여식 선화의 과외를 맡게 된다.
어느 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던 덕문은 아끼는 페도라가 사라진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친구 집을 방문한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끔찍하게 살해된 친구였다. 최초 발견자인 덕문은 잔혹한 도끼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꼼짝없이 범인으로 몰리고 있는데 유치장에 갇혀있을 당시 또 다른 도끼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풀려나게 된다. 오덕문은 지인이 잔인하게 살해되고 자신 또한 유치장에 갇혀 수난을 겪은 이 사건을 해결하여 자신을 몰아붙이고 모욕한 미나미 순사부장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리라 결심한다.
그는 '모던'을 중히 여겨 서양의 문물, 사상을 배우고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근대 지식인으로서 조선의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신분제도를 비판하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려는 자세를 갖추려고 노력하는이다. 아직 형식에 치중하는 면이 강하나, 변화의 물결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와 친구들인 박동주와 권삼호는 근대에 존재하는 부류들을 각각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지식인인 모던보이 오덕문, 이상을 위해 나아가는 사회주의자 박동주, 핏줄을 중시하는 우생학 지지자 권삼호.
유교와 신분제도를 근간으로 하던 조선을 잃고 자신이 실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가치와 이상을 찾아가는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을 잘 대변하고 있다. 그들이 가진 술자리 대화를 통해 그들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사상과 가치를 잘 세워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특히 나라 잃은 민족의 미래는 오늘이 제대로 서야 빛날 수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들이 투전에 빠져 빚을 지고, 일본의 덕을 보기 위해 창씨개명을 하고, 백정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갖은 멸시와 모욕을 당하는 현실에서 조선의 등불을 어떻게 밝힐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매력적이다. 스스로 '에드가 알란 오'로 불리길 원하는 '오덕문' 주변의 여성들이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이 한계로 볼 수는 있겠지만, 신식 교육을 받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1929년을 살아가고 있다. '신여성'으로 불리는 이 여인들의 모습은 모던보이 오덕문에게조차 생소하거나 의뭉스럽게 느껴졌으니 그 시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얼마나 힘겨웠을지 가늠할 수 있다.
양복과 페도라에 집착하고,
탐정이 되기 위해 셜록처럼 행동하고,
대책 없이 무작정 살인 현장으로 탐문 나가는
허당 오덕문, 에드가 알란 포가
하숙집 은일당 선화와
다방 흑조 C양 연주와
홍옥관 계월을
만나 한층 더 성숙해졌다.
도끼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추리하는 여정을 따라가면서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우리 선조들이 느꼈을 혼란과 좌절, 분노 그리고 의지를 마주하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끝내 밝히지 않은 선화와 연주의 사연은 그런 비극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역사적 배경의 추리소설 『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은 이렇게 색다른 맛으로 기억될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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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