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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수양제
글쓴이
미야자키 이치사다 저/전혜선 역
역사비평사
평균
별점9.3 (9)
dldudcks62

수 대운하



; 인권, 나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수나라의 정책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제는 훌쩍 뛰어 넘어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 인공지능, 빅 데이터(Big Data) 기술로 이제 인류는 새로운 시대에 도달하려
한다
.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이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지고, 이를
융합한 정보 역시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생겨나고 있다
. -예측의
혼란기 속에 우리는 나와 다른 이들의 생각
, 행동들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어진 상태에 있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무질서한 혼란 상태를 개개인의 도덕성을 함양하는 방법보다는 외적인 강제력을 동원하는 식으로
그러한 불균형을 해소시키려는 국가
, 집단, 사회들 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 점점 더 많은 제도들, 법규들이 우리들의
이러한 도덕적인 능력들을 저해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에서 구속받지 않으려면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은
역사를 배우는 데에 있다고 생각을 한다. 이 땅의 지구의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간, 피와 땀과 눈물, 엄청난 고난과 투쟁의 연속, 다양한 사람들의 각각의 사유(思惟)와 사상, 감정들이
공존해 있던 시간과 공간의 집합이다
.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배우고 탐구함으로써 우리가 오늘날 지녀야
할 태도 및 자세를 배우게 될 것이다
. 이제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 머무르면 안 될 것이다. 과거를 통해 어떤 정보를 배우는 데 있어 자신만의 사유와 감정을 가지고 가치 있는 내용들을 만들어 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따라서 본 보고서가 단순히 수행평가를 위해서 창작된
결과물일지라도 수나라의 정책을 통해 오늘날 국가와 국민
, 현세대와 미래세대 간의 관계를 고찰하는데 조금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을 한다
.





. 서론



주제 선정 이유



오늘날 한 국가의 정책은 국민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을 정도로 현대의 국가는 복지 국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 국가의 정책이 국민들 개개인의 삶을 편리하게 할 수도,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긋난 정책들, 공권력의 옳지 못한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이 많았다.
연구자는 이를 생각하며 최근에 읽은
내 곁의 세계사라는
책에서 본
세계 여성의 날을 떠올렸다. 우리가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는 않은 이날은 3 8일은 1911년 뉴욕 맨해튼의 트라이앵글 블라우스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대대적인 인명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 이 사고로 인해 1912년 미국 로렌스 시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고, 그때
그들이 외친
우리는 빵을 원한다. 또한 장미도 원한다,” 라고 외친 구호는 노동자들의 생존뿐 아니라 존엄성도 회복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엄연히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인간 존엄성 침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몇 백
년 전에는 백성들이 국가에 예속되어 어떻게 보면 국가의 소유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국민을 위하는 일보다는 왕실과 국가를 위하는 일이 우선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 본인은 먼 과거에서 일어난 일들 중 오늘날의 시선에서 백성들의 인권을 소홀히
, 침해한, 그들을 괴롭힌 국가적인 정책을 조사하여 이를
반성적 사고에서 비판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그러한 생각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역사적 사건이 바로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 작업이었던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유념해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인, 생존권적인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또한 현대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대운하 건설 작업을 토대로 전문가들이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귀감이 되기를
바라며 본 주제를 선정하였다.





② 자료 수집 과정



본 연구는 수나라의 정책들 중 대운하 건설 작업과 그 이후의 개통식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는 수나라를 떠올릴 때 많이들 떠올릴 고구려 등의 대외 원정에 관한 자료에는 중점을 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따라서 관련 도서를 참고하고, 블로그 및 웹사이트를
살펴보며 대운하에 건설작업에 관한 전반적인 자료조사를 하였음을 알린다
.





③ 연구 방법



;보고서를 읽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만 한 참고적인 사항



이 보고서는 국민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한 개인의 일생에 있어
기본권
(넓게는 인권)보장과 관련이 밀접한 국가의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사고를 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 이에 대한 사고는 본 연구자가 최근에 읽은 도서에서 본 1911년 미국 트라이앵글 블라우스 공장 화재를 떠올리게 했고,
나아가 왕실과 국가가 우선이었던 전근대 시대에는 과연 국가의 정책으로 인해 국민의 인권이 침해 받은 역사적 사건이 무엇이 있는지에 관한 물음에
대한 보고서라고 생각을 하면 좋을 것 같다
. 연구자가 이렇게 평화와 인권, 나눔, 타자의 측면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소설가가 TV프로그램에서 말했듯이, 이야기의 힘이 크다고 생각을 한다. 이야기,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게 만들고, 감동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개미 같은 곤충에게도 관심을 갖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역사가 축적되면서 더욱 더 발전을 한 것이니, 전근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으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더 심도
있는 반성적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 지금부터는 수나라 대운하 건설 작업에 초점을
맞춰서 그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로 귀결될 것이다
.





. 본론



① 수 왕조 이전의 혼란기



수 왕조 이전의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나라가 분열되고 위··오의 삼국 시대가 흘러가다 진()
의해 잠시 동안 통일되었던 중국은
5(흉노, 선비, , , )의 북방 민족에 의해 16국으로
다시 분열이 되고
, 이는 유목 민족과 한족에 의해 각각 북조와 남조로 나뉘어 있는 형국이었다. 이러한 위··남북조
시대의 혼란기를 끝내고 다시 통일 왕조를 일궈낸 수나라에게 있어 행해야 할 조치는 북부와 남부 간에 생긴 균열을 메우는 것이었다
. 그 특단의 조치가 바로 황하와 양자강을 운하로 이어 남과 북을 하나로 연결시키려 한 것이다. 남북조라는 명명 자체에서 중국 남부와 북부가 서로에게 가진 이질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수 왕조의 구상은 꼭 필요한 정책이었다. 사실 대운하 건설은
초대 황제 문제 때부터 나온 아이디어였다
. 다만 재정문제 등으로 인해 그 다음 황제인 양제 대에 이르러
첫 삽을 뜰 수 있었던 것이다
. 양제는 즉위 이듬해부터 약 6
동안
, 500만 명 이상의 인원을 동원하여 공사를 벌였다. 그렇게
수 왕조 이전의 혼란기를 해결하기 위해 수나라의 대운하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





② 대운하의 건설 과정



대운하 건설 현장은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고 한다. 양제가 하루 빨리 신속하게
운하가 건설되기를 원했기에
, 수나라의 관리들은 건설 인부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작업을 강행해 나갔다. 이 때문에 물속에서 작업하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몸을 말릴 시간도 없다보니,
하반신에 구더기가 들끓는 상태에 빠져 연일 죽어나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일을 쉬엄쉬엄 할
수도 없었는데
, 작업이 순탄치 않을 경우에는 과중한 처벌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수로가 얕게 나와 작업에 차질이 생기자, 수양제는
5만에 달하는 인부와 관리들을 생매장 시킬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6년에 걸쳐 대운하는 황하에서 화하를 잇는 통제거, 화하에서 양자강을 잇는 산양독, 양자강에서 항주를 잇는 강남하, 탁군에서 황하를 잇는 영제거, 그리고 황하에서 대흥성을 잇는 광통거로
구성이 되었으며
, 폭은 약 30에서 60미터, 깊이는 약 3미터, 총 길이는 2,000킬로미터에 달했다. 그렇게 가혹한 토목 공사 속에서 가끔씩 땀방울을 닦으며 먼 산을 바라봤을 사람들에게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③ 문제(問題)는 대운하의 개통식이었다.



실제로 수양제의 대운하 사업이 백성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 것은 공사 자체가 아니라 완공 이후 시작된 어마어마한 개통식
때문이었다
. 대공사가 끝나자 수양제는 운하 전 구간에 걸쳐 화려하고 매우 찬란한 개통식을 거행했다. 황제가 된 이후, 수양제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토목공사를 통해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천하 만민에게 과시하고자 했다
. 이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집권한 정통성 문제와 함께 그의
개인적인 성향과도 관계가 있었다
. 엄격한 어머니였던 독고가라 황후의 교육아래 성격과 맞지 않는 근검절약
생활을 수십 년이나 해야 했던 수양제는 권력을 얻자마자 곧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  「수양제(미야자키 이치사다
. 전혜선 역. 역사비평사)」 참고



 그래서 황제가 되자마자 규모가 큰 사업을 연이어 벌이기 시작했다. 대운하 개통식을 위해 먼저 대운하 구간에만 40여개의 행궁을 지었고
운하 옆에는 대로를 건설해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심었다. 행궁 주변에는 궁녀들이 비단으로 꽃잎을 오려
나무에 가득 뿌리게 했고 중국 전역에서 유명한 악단, 광대 등을 모두 모아 3만 명 규모의 행사 단을 꾸민 후에 대규모 공연을 거행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상당한 재정을 낭비한 셈인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개통식은 대용주(大龍舟)라 불리는 궁궐만한 배를 만들어 낙양에서 강남으로 순행을 떠난 이후부터 시작됐다. 이 용주란 배는 상하 4, 높이가 45, 너비 50, 길이 200척의 초호화 요트로 배 안에 전각을 꾸몄으며 황후, 비빈, 대신, 승려, 도사들도 모두 배를 타고 용주를 수행, 수행선이 1000척을 넘었다. 용주는 얼마나 무거운지 사람들이 강 양편에서
끌어서 움직여야했는데 이를 위해 운하 전 구간에 8만 명의 장정을 세워두고 배를 끌게 했다. 또한 운하 주변에 보안을 위해 병사들을 파견, 호송시켜 대운하를
500리 이내의 지역들은 도로를 정비하고 꽃과 나무를 심어야했으며 지방관이 나와 온갖 진귀한 물품과
산해진미를 갖다 바치도록 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수양제의 개통식 선단이 지나가는 곳마다 경제가 초토화됐다고
한다. 이렇게 수탈한 재물들은 다시 경성으로 실어 냈고, 남은
음식들 중 못 먹은 것은 그냥 구덩이에 묻어버리고 떠나니 민심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양제의
용주가 지나간 곳은 해골이 바닥에 널린다는 소문이 퍼졌으며 당시 백성들은 홍수, 가뭄, 메뚜기보다 양제의 배가 더 무섭다고 할 지경이었다. 개통식 이후에도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뱃놀이를 수시로 행해 대운하는 중국 역대 공사 중 가장 많은 인력이 동원됐음에도 가장 쓸데없는 사업으로 변질됐다. 이후 수양제가 고구려 원정에 나서면서 대운하로 인한 백성들의 피해는 줄어들었으나 곧바로 고구려 원정에 장정들이
동원되면서 고통은 가중됐다. 결국 수나라가 붕괴된 후, 대운하는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구간 곳곳이 토사로 막혀 쓰지 못할 지경이 됐다. 그래서 원나라와 명나라 때 걸쳐
경항 대운하가 다시 지어지게 됐다.





④ 대운하 건설 작업의 이점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 작업이 그토록 가혹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왕실이
생각 없이 대운하 건설 작업을 추진한 것은 아닐 것이다
. 대운하 건설 작업은 그 자체로 많은 이점을
갖고 있었다
. 예를 들어 우선, 황허 강와 양쯔 강을 연결함으로써
북부와 남부 간 물류를 원활히 할 수 있었다
. 수로는 육로보다 많은 물량을 움직이기가 훨씬 더 수월한
만큼
, 운하의 활용은 운송비를 절감하여 장거리 대량 교역이 가능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 장거리 대량 교역이 가능해지니  특정 품목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지역들이 나왔다. 과거에는 지역마다 필요한 물건을 자체적으로 공급해야 하므로 어떤 경우는 생필품 생산으로 돌려야했는데, 교역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필요한 물건들은 다른 지역에서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각 지역은 자기네가 가장 잘 재배할 수 있는 작물에 집중하여 수출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그로 인해 전국적으로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또한 교통로 개설은 남부 지역에 대한 수도의 정치적 장악력도 높여
주었다. 수의 황성은 서북 지방에 있는 대흥에 있었다. 양쯔강
이남의 사람들은 왕실 근처의 황허 강 등의 북쪽 지역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따라서 이 지역까지 제대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이질감을 줄이고 황제가 직접 관리들과 지역 주민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했다.
운하는 이렇게 지역 간 이동 시간과 통치 거리를 줄임으로서 중앙의 대 지방 통제력을 강화시켜 주었다.
수의 바로 후대 왕조인 당의 경우를 보면 안녹산의 난 이후부터는 번진들이 지배한 황하 유역으로부터의 물자 보급이 사실상 끊겼는데, 그럼에도 왕조가 그로부터 15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남쪽에서 생산된 물자가 운하를 타고 황성까지 보급된 데 있다고 한다. 송 이후부터는 아예 강남의 경제력이
북쪽 지방을 능가했으며, 강남에서 생산된 곡물과 물자가 정치수도인 개봉(카이펑)이나 북경을 부양했다.
강남에서 올라오는 물자 없이는 정권 유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대운하와 중국 상인(조영헌
. 민음사. 2011)」참고





 지금까지 수나라, 정확히는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 작업 정책을 살펴보고 그 과정들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이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작업을
다시 살펴보면서 인권과 나눔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공권력 행사를 위한 국가적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로
돌아올 것이다.





. 결론



  수나라의 대운하는 위··남북조 시대의 혼란기를 끝낸 수 왕조가 북부와 남부 지방의 이질감을
없애고, 사회·경제·정치적인
통합을 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토목 공사는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공사가 끝난 뒤에 행해진 개통식은 수양제의 막강한 권력 과시욕의 분출이었을 뿐 오히려 봉건적인
수탈의 전형이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수많은 관리들, 궁녀들, 백성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행태였음을 확인하였다.



  우선 대운하 건설 작업은 예로 보나 지금으로 보나 명백한 인권
침해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당대 가치관에 비추어 봤을 때, 아무래도왕실과 국가를 위하는 것국민을
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현대의 가치관은
바뀌고 있다. 물론 국가적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경제적 성장을 이뤄내는 것이 고려 사항 중 하나일 수
있고, 실제로 수나라 대운하 건설 작업은 2. 본론 4)에서 살펴봤듯이 생각보다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 개개인의 생존권, 행복추구권 등을 국가로부터 보장받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침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작업은 시작은 좋았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 있어서,
이후에 이루어진 관리 측면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 분명하다.



 물론 위의 문단에서 언급한 내용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역사를 살펴봄에 있어 앞으로라도 고려를 해야 할 것은 역사는 승자의 역사로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지탱해 온 것은 이 땅을 살다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었다.
수나라가 대운하를 건설하고 나서, 후대 왕조들이 많은 이점을 본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은
승리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일 테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낮춰서, 대운하 건설작업을 관리한 관료들, 궁녀들, 그리고 백성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들의 정책이 마냥 지향해야 할 것은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



  인권의 측면에서 살펴 본 대운하 건설작업은 이렇다. 한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나라 대운하 건설작업을 다른 측면에서
살펴봐야 하는데, 바로나눔의 측면에서이다.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은 당시 민중들을 대상으로 한
봉건적 수탈인 동시에 중국의 통합과 국민경제에 기초를 놓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이외의 생명에
대한 별다른 고려 없이 환경을 파괴한 일이 된다. 대운하 건설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었고, 동식물 등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음과 더불어 후대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터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역사학자들이
과거 군주들의 대 토목 사업을 평가함에 있어서 이러한 현대적 가치관을 반영한다면, 국가가 인간만을 위한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범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정책을 펼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 이외의 모든 생명도 정치공동체의 주권자이며 수혜자라는 사고가 현대적인
가치관으로 대두되면서, 인권뿐만 아니라 타자의 측면에서 나눔까지 고려한 정책을 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너무 과하게 나간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인권의
측면에서만 수나라 대운하 정책을 비판한다면, 이는 과연 그렇다면 건설 인부들의 인권을 충분히 고려를
하였다면, 위와 같은 건설을 무분별하게 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윤리관을 바탕으로 수나라의 정책을 이와 같이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작업은 인권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오늘날의 관점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비판받아야 할 사안이며
, 타자의
나눔 측면에서 현대적인 가치관을 대입하여 바라보면 오로지 인간만을 생각한
,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사안이라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이다
. 자기 인간만을 생각하지 않고, 나를
둘러싼 타자를 함께 고려하여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
. 수나라 대운하 건설 작업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를 하면 오늘날 정책을 세울 때 귀감이 되어 기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 그리고 이는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오늘날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 가장 중요한 점은 다시는 이렇게 가혹한
방법으로 정책이 흘러가지 않도록 반성적인 사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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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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