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해밀
- 작성일
- 2019.4.30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 글쓴이
- 도대체 저
예담
나는 누구일까?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인삼이다. 나는 인삼이구나…! 생각하는, 인삼 밭에 낀 고구마가 있다.
나는 인삼이다. 다른 인삼들과 함께 살고 있다. 저…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고구마만 빼고, 싶은 인삼도 있다.
인삼이 이야기를 계속한다. 고구마는 행복해 보인다. 자기가 인삼이 아니라 고구마란 사실을 알게 돼도 그대로 행복할까? 인삼도 아니면서 행복해도 되는 건가? 인삼도 아니면서?
인삼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태어나보니 인삼이었다. 그래, 내가 인삼인 것도 그저 운이다. 노력해서 얻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인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 고구마처럼. 그러면 내 좋은 운은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고구마로 태어났으면서 쉽게 행복하면 안 되지. 그건 고구마의 몫이 아니다. 그건 반칙이라 내가 이러는 거다. 내가 나쁜 인삼이라서가 아니다. 고구마가 너무 신경 쓰인다. 인삼도 아니면서 행복한 저 고구마 때문에 인삼인 내가 불행해졌다. 그러다 결심한다. 고구마에게 진실을 알려주겠다고.
인삼에게서 진실을 듣게 된 고구마가 답한다. 내가… 고구마라고? 으아아아아아아아 나는 고구마다! 고구마~ 나는 고구마~
이 책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의 프롤로그 ‘행복한 고구마’를 활자화해보았다.
어디선가 행복한 고구마 만화를 읽고, 이 책을 읽어봐야지 마음먹었다. 인삼이라고 생각했을 때도 행복하고, 인삼이 아닌 고구마라는 걸 알게 되었어도 변함없이 행복한 고구마. 짧지만 강렬한 이 만화를 볼 때마다 나는 인삼일까 고구마일까 생각하지만 늘 같은 결말에 도달한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인삼 밭에 낀 고구마를 바라보는 감자가 아닐까. 이 만화를 좋아하는 건 행복한 고구마의 태도 때문이지만, 이 만화가 애틋한 건 인삼에게 마음이 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태어나보니 인삼은 아닌 것 같고, 강철 멘탈인 고구마도 아닌 것 같아서 감자가 되기로 한다. 행복한 고구마처럼 누가 뭐래도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고구마가 되고 싶은 감자.
일을 미루는 이유
'이 일은 생각할 게 많으니 머리가 맑을 때 하자'는 생각으로 미루고 있는 일이 있다.
그런데 머리가 맑아지는 순간이 오지 않아 계속 미루고 있다.
'컨디션 좋을 때 해야지'하는 일들도 있는데, 컨디션 좋은 때가 잘 오지 않는다.
예전엔 컨디션의 기본 상태가 0이고 그 위아래 점수들인 날들이 있었다면,
현재는 -50정도가 기본 점수인 것 같다.
한편 '덜 피곤할 때 하자'고 생각한 일들도 있다.
그것들은 피곤이 가시지 않아 못하고 있다. (p.66)
위 구절처럼 일을 미루는 못된 습관이나 정리 정돈에 약한 것, 소심하고 꼼꼼한 성격 등 내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풀어낸 것 같아 재밌게 읽었다. 단순히 '재밌게 읽었다'로 끝났다면 이렇게 리뷰를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반짝이는 순간
사업을 하며 이리저리 물건을 팔러 다니던 때였다. 어느 쇼핑몰 지하에서 며칠간 진행된 판매 행사가 끝난 날이었다. 팔다 남은 짐을 챙겨 파김치가 된 몸으로 택시를 탔다. 택시는 강변도로를 타고 달렸다. 그 덕에 한강 주위의 근사한 야경을 내내 감상할 수 있었다.
야경은 보는 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말랑거리게 하는 면이 있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그 불빛 하나하나 속에 어떤 우울한 사연들이 있을지 상상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다. 계속되는 야근으로 피곤하기 짝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방금 애인과 헤어지고 돌아와 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빚쟁이의 독촉 전화를 받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상습 폭행을 당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서 보기엔 그저 반짝이는 불빛일 뿐이다. 연달아 행사하느라 고된 내가 타고 있는 택시의 불빛도 강 건너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야경의 일부일 것이었다.
멀리서 봐야 빛나는 달과 별처럼, 우리는 멀리서 서로를 아름답다고 느끼며 위로받는다. 저마다 다른 슬픔을 가진 채, 단지 밤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빛나는 존재가 된다. 어느 밤 내가 서러운 일로 목 놓아 울고 있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내 방의 불빛을 보며 위로받았을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서로에게 반짝이는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p.233
2D인 도대체씨가 3D로 구현되어 택시를 타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리빙 포인트] 오늘따라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진다면- 평소에도 그랬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안심하세요. 라며 웃겼다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서로에게 반짝이는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다며 훅, 치고 들어와 울컥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도대체씨.
어쨌든 출근은 해야하는 1부, 장점은 있는 2부, 이러려고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는 3부, 망한 걸까 싶은 4부, 이 와중에 즐거운 5부,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은 6부까지 촌철살인의 글과 그림 앞에서 진정으로 행복했다. 이 책을 읽은 것으로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다시 행복한 고구마를 떠올린다. 그러다 마음을 주게 된 감자를 생각한다. 고구마가 인삼이 아니라 고구마임을 알게 되었어도 행복하듯, 감자는 행복한 고구마가 되고 싶어할 것이 아니라 행복한 감자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고구마에게 진실을 알려준 인삼도 점차 행복해질 거라 상상한다. 쉽게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이렇게 중얼거려본다.
"뭐, 어쩔 수 없지."
이상하게도 이렇게 말하는 순간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기 때문이라고, 도대체씨가 알려주었다.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고!"
어쩐지 의기양양해진다.
"어쩔 수 없는 걸 어쩌겠어!"
'어쩐지 의기양양 도대체 씨의 띄엄띄엄 인생 기술'이라는 부제 때문에 이런저런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 책 읽기를 망설였거나, 과하지 않으면서 유쾌한 위로가 필요한 당신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이미 읽은 사람이 차고 넘치는데... 이제서야 리뷰를 올린다니... 한다면
"뭐, 어쩔 수 없지." 정말로 의기양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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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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