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년도 서평

해밀
- 작성일
- 2013.1.31
곰곰묘묘 이야기
- 글쓴이
- 고아라 글,그림
북폴리오
여기, 까칠한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고양이의 이름은 묘묘. 묘묘의 집에 곰곰이라는 곰이 찾아오면서 곰곰묘묘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세히 말하자면, 까칠한 고양이 같은 여자와 우직한 곰 같은 남자의 이야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둘의 관계가 정확히 어떠한 관계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 사진이라는 단체 사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찍힌 사진을 보며, 곰곰과 묘묘 둘의 대화에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이런 사이일까 하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둘의 관계가 많이 궁금해 했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둘의 관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 사이가 으레 그러하듯 곰곰묘묘 이야기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니까. 어떠한 관계였는지를 궁금해 하기보다는 어떠한 관계가 될지 궁금해 하며 읽는게 독자의 몫이 아닐까하며 읽었다.
곰곰의 말마따나 요리도 참 잘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퍼펙트 인생을 살고 있는 묘묘의 일상에 어느 날 찾아온 곰곰. 집도, 연락할 친구도, 갈 곳도 없었던 곰곰은 묘묘의 집에서 지내면서 묘묘의 일상의 틈을 부지런히 채운다. 한 집에서 같이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청소를 하고, 때때로 외출해서 장을 보고, 도서관에서 가서 책을 읽고, 산책을 한다. 이달의 다독왕에 선정될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 묘묘. 곰곰은 그런 묘묘 옆에서 같이 책을 읽거나, 묘묘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하고, 때로는 집중있게 책을 읽는 묘묘를 바라본다. 묘묘가 책 읽는 시간까지 곰곰이 함께 한다는 것. 나는 여기서 둘의 사이가 무척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묘묘에게 독서란 일상 중의 일상이었고, 그 시간을 곰곰이 함께한다는 건 곰곰이 묘묘의 일상이 되었다는 것이니까.
4월에 내리는 눈처럼 생각치 못하게 찾아온 손님, 곰곰.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다가 문득 자신이 어떻냐고 묻는 곰곰, 곰과 고양이의 우정이 유지될 수 있는 건 한 짐승의 지독한 짝사랑 때문이라고 말하는 곰곰, 짭짭 소리를 내며 밥을 먹는 곰곰, 산책하다 말고 네잎클로버를 찾는 곰곰, 걸려 넘어졌던 돌부리를 잊지 않고 찾아가 뽑아내는 곰곰, 어느 가을 날 춥다며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입혀주는 곰곰. 묘묘는 그런 곰곰이 점점 신경 쓰인다. 혼자 지내는 게 익숙했던 묘묘는, 곰곰이 겨울잠에 들어간 사이에 곰곰의 존재감을 깨닫는다. 자신만 그런 줄 알았으나 곰곰 역시 늘 혼자였음을. 겨울에 내리는 첫눈을 보며 묘묘는 생각한다. 사진을 찍어줄 걸, 밥 먹을 때 눈치주지 말 걸, 좀 더 다정하게 대할 걸. 그리고, 꿈에서 2년 전 가을 곰곰과 함께했던 때를 꿈꾸고 일어난다. 그 때, 묘묘의 방문을 열고 일어났냐며 아침 먹으러 나오라 말하는 곰곰. "봄이묘."라는 묘묘의 말로 곰곰묘묘 이야기는 끝이난다. 대사들이 짧고, 쉽게 읽히지만 그 틈 속에서 머물러서 한참을 생각하게 하는 책. 곰곰묘묘 이야기는 그런 책이다.
곰곰이 생각하는 '사랑'과 묘묘가 생각하는 '사랑'을 보며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인지 열심히 떠올리며, 나는 곰곰묘묘 이야기를 쉽게, 그러나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 인상 깊었던 구절 *
곰곰 : 사랑이 뭐곰?
묘묘 : ……
곰곰 : 난 언제나 곁에 있다곰. 그게 사랑이라곰 생각한다곰. 묘묘, 넌 어떻곰?
묘묘는 생각했다. 얼마전 곰곰이 요리를 해 준 일이 있었다.
묘묘 : 씨묘 개나 주라묘!
그것은 매우 거북한 맛의 요리였다.
그 후 며칠 뒤 길을 걷던 묘묘는 익숙한 냄새를 맡게 되었다.
묘묘 : 킁킁. 이것은 곰곰의 요리 냄새다요!
순간 역한 냄새에 울화가 치밀어 올라오는 듯 했지만
두근 두근.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묘묘는 요리하는 곰곰이 떠올랐다.
크고 자상한 뒷모습, 흥겹게 휘파람을 불던 옆모습.
묘묘는 이 역한 냄새에도 곰곰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묘묘는 이 놀라운 순간을 곰곰에게 설명하고 싶었다.
묘묘는 생각을 정지하며 곰곰을 곰곰히 바라보았다.
멍청하고 둔한 히말라야 태생, 다시 묘묘는 집중하며 곰곰에게 해 줄 말을 생각했다.
가만보면 귀여운 120kg의 곰곰. ……
묘묘 : 아… 배고프묘! 가서 밥 좀 해묘!
곰곰 : 묘묘! 나 이젠 스파게티 겁나 잘하곰.
묘묘 : 하? 그렇묘? 어디 함 보겠묘!
곰곰 : 기다리곰♪
묘묘 : 땅 꺼진다묘!
곰곰은 그렇게 요리를 시작하고, 묘묘는 그런 곰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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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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