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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머니공부』 초고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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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딸 보려면 장모 보아라.’


어머니와 외할머니의 관계를 드러내주는 속담이다. 어머니는 5녀 중에서 외할머니를 가장 닮았다. 외할머니는 착하고 똑똑한 어머니가 어렵게 사는 것을 잔잔한 정으로만 표출했다. 희로애락의 표정이 풍부했던 친할머니와 비교된다. 맏며느리로서 수많은 식구를 챙겼으면서도 평생 소리 내어 화를 내어본 적이 없다. 외할아버지는 아내를 ‘부처님 가운데 다리’ 같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큰 스님인 청화스님처럼 만년의 외할머니는 온화한 위엄을 풍기는 나무부처였다. 어머니는 큰 스님을 시봉하듯 외할머니를 섬겼다.


외할머니는 친정 규방에서 한글소설을 읽고 자랐다. 손때 묻은 한글소설책과 함께 시집갔다. 동네아녀자의 편지를 읽어주고 써주는 일은 외할머니 몫이었다. 숫자는 우리 집에서 와서야 배웠다. 어머니는 달력종이를 오려 숫자를 가르쳤다. 전화숫자판을 돌릴 줄 알게 된 외할머니는 자력으로 딸들과 통화하며 기뻐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행했던 커리큘럼은 이제 체계적이고 창조적으로 변용돼 어머니 간병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유독 입이 무거웠다. 두 사람은 아녀자들의 입방아질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외할머니보다 한 수 위였던 측면도 있다. 어머니는 허물이 있는 사람조차 진심으로 칭찬했기 때문이다. 곁에 앉아 있는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말을 꾸밀 줄 모르는 사람임을 아는 까닭이었다. 외할머니에게 부재했던 어머니의 다정다감은 외할아버지가 물려주었다.


외할아버지는 많이 배우지 못했다. 소싯적 서당공부가 전부였을 것이다. 시골에 역병이 들었을 때 장손을 살리기 위해 절간에 보내지기도 했다. 친화력이 뛰어났고 근면했다. 어린 어머니가 아프면 이마에 손을 얹고 절에서 익힌 천수경을 독송했다. 아픈 사람에게 소화제를 건네며 병이 나을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술은 하지 못했다. 술을 기대하고 찾아온 친지를 빵집으로 안내해 번번이 서운케 했다. 헌칠한 호남자였던 외할아버지는 인텔리처럼 보였다. 6.25 전쟁 중에 북의 검속대상이 됐을 때 외할아버지를 구해준 것은 노동으로 부르튼 두 손의 수완이었다.


“이 손으로 자식을 먹여 살렸소.”


웬만해서 친지 인물평을 하지 않은 아버지도 생전의 외할아버지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 양반은 일이 고되 골병이 드셨어.”


어머니는 외조부모를 빼어 닮았다. 선대의 미덕은 어머니를 이해하는 밑그림이다.




사진 1


젊은 시절 외할머니


사진 2


외할머니를 모시고 다니시기 시작할 때의 어머니(1992년)


사진 3


청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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