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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inia
- 작성일
- 2020.3.4
세습 중산층 사회
- 글쓴이
- 조귀동 저
생각의힘
지난 해 가을 한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중 하나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임명과 사퇴까지의 과정은 한국 사회의 갈등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1호 공약이었던 검찰개혁을 위해 초대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서울대 교수를 법무부 장관에 내정하자 검찰과 언론들을 통해 쏟아진 각종 의혹들로 진보세력 내에서의 분열, 극우?보수세력의 거센 반발과 의혹 부풀리기 등이 몇 달간 계속되었다. 그 중에서도 청년계층의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가 주목을 받았는데 주 원인은 조 장관의 자녀들의 특혜 문제였다. 교수인 부모의 영향력 덕분에 다른 이들보다 쉽게 인턴 등의 자리를 얻었고 그를 바탕으로 입시에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조국 장관도 그런 점을 헤아리지 못했다면서 사과를 하긴 했지만 그 분노의 불길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세대와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86세대와 청년층 특히 90년대생과의 갈등이 부각되고 관련 논란이 시작된 것은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였다. 서강대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의 세대간 갈등의 원인을 다룬 논문이 주목을 받으면서 많은 언론사들이 세대간 갈등을 다루기 시작했고 비슷한 내용의 책들도 서점가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움직임에 대해 일부 학자나 전문가들은 세대간 갈등이 부각되면서 그 갈등의 핵심인 불평등 문제가 희석되고 있으며 세대내의 다양한 층위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1달 남짓 앞둔 지금은 청년층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정당간 경쟁까지 가열되면서 진지한 문제 해결 모색보다는 여야간 정쟁의 대상으로, 지지층 확장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세대간 갈등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그 양상을 새롭게 정의한 책이 <세습 중산층 사회>다.
그렇다면 지금의 90년대생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긴 하지만 전 세계적인 경제 성장 둔화, 기술 고도화 등과 같은 구조적인 문제 등과 결부되어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에 있어 특히 좋은 일자리의 부족과 경쟁의 심화가 그들에게 냉혹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대기업 사무직 중심의 중숙련 일자리 및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연구개발 직군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정체로 인해 번듯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인원이 불과 구직자의 10% 정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중노동시장이라는 특징을 갖는 한국 노동시장의 성격상 진입 과정에서 명문대라 불리는 상위권대 학벌과 양질의 첫 일자리가 사실상 신분을 결정하고 있으므로 내부자가 되기 위한 경쟁을 그 어느 세대보다 치열하게 벌여야 하는 것이다. 지방대생과 고졸자는 구직의 어려움은 물론 지금의 청년 담론에서 거의 배제되는 차별을 겪고 있다.
비난과 논란의 대상이 되는 86세대는 80년대 한국 경제규모의 확대로 채용이 활성화되고 80년대말~90년대초 소위 3저 호황으로 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했을 뿐 아니라 1997년 향후의 한국 사회를 바꿔놓은 IMF 구제 금융 시기에도 30대라는 연령과 조직 내의 위치 덕분에 그 파고를 넘을 수 있었다. 2000년대 초에는 팽창한 주식시장, 개인투자 열풍과 더불어 IT산업의 발전을 토대로 한 벤처창업 등의 분야에서 핵심세력으로 자리잡아 경제적 토대를 더욱 견고히 할 수 있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화가 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시기에 이르러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집단을 대규모로 창출하는 가운데 두터운 중간층을 형성했다. 86세대 역시 불평등을 경험한 세대다. 어버지 세대의 경제력이나 학력이 상속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녀 세대인 86세대의 격차는 현재보다 크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충분히 메울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이들 특히 중산층이 2008년 이후 한국 경제의 질적 발전이 지체되고 급격한 성장 여건 악화에 직면하자 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계층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분투하고 여기에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부동산 자산 상속 등으로 자녀들에게 선발의 이익을 만들어 주므로써 후발 세대간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경제 고도성장이 끝나고 86세대의 중산층을 중심으로 인적 자본 투자와 부동산 상속을 통해 만들어진 젊은 층의 경제적 고통에 대해 앞서 언급한 이철승 교수는 86세대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기업 화이트칼라와 대공장 블루칼라 50대가 고임금을 향유하는 바탕인 연공서열제를 완화하면서 직무급제와 연봉제를 함께 실시하고 연봉피크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노동시장의 개혁이 지난하다는 점과 현행 제도가 가지는 나름의 합리성을 들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세습 중산층의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세습중산층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관철되고 있는 지금의 체계에서는 86세대의 양보가 있더라도 그 기회를 세습 중산층의 자녀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 지적하면서 영유아기부터의 공공보육 및 공공교육 강화, 사회보장 최소 수준의 합의와 적극적 세원 확보와 같은 시작단계에서의 공평과 그것을 위한 세습 중산층의 경제적?사회적 의무 부담을 주장한다. 그리고 세습 중산층의 계층 지위 상속 노력이 어떻게 불평등을 발생시키고 사회적 계층이동을 가로막는지 정확한 인식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끝을 맺는다.
세대간 갈등이나 불평등을 다룬 일부 책들은 86세대의 초점을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운동권 출신 지도층에 맞춰 현재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지위와 획득과정을 공격하므로써 현재의 거대야권과 그 지지층에 소구하려는 목적이 엿보여 저자들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한다. 하지만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는 풍부한 통계와 자료에 근거해서 주장을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겉으로 보이는 현상보다는 그 안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해서 세대론과 세대 갈등의 논쟁 속에 가려져 있는 중산층의 세습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내세우는 대안이 구체적이지는 못해서 다소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세대간 불평등 문제의 원인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봤다는 점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 리뷰어클럽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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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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