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리뷰
양사나이
- 작성일
- 2015.6.16
나오미와 가나코
- 글쓴이
- 오쿠다 히데오 저
예담
'아무튼 인생에 딱 한 번뿐인 일이었잖아. 반성해봤자 다음은 없어.'
역시 술술 잘 읽히는 책이 최고다. 496페이지를 몇 시간만에 읽어버렸다. 마지막 페이지를 위해, 495페이지가 필요했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그런 책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흥미로운 작가다. 특정 사건, 인물에 집중시키기 보다 스토리 전체를 아우르는 흐름을 통해 소설을 움직인다. 강이 흘러가는 듯한 흐름이 좋다. 덕분에 마지막까지 막힘없이 읽었다.
<나오미와 가나코>를 처음 본 순간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생각났다. 막상 읽어보니 느낌도 비슷했다. 줄거리만 다를 뿐이다. 오쿠다 히데오판 <델마와 루이스>랄까? 그래도 오쿠다 히데오가 아닌가?! 읽는 맛이 살아있었다.
백화점 판매사원 나오미는 매일매일이 전쟁이다. 매출을 위해 고객과 씨름 한 판, 출세를 위해 백화점 조직 내 윗사람들에게 충성. 나이는 먹어가고 애인은 없다. 딱히 결혼할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 어릴 적 어머니에게 폭력을 일삼은 아버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권위적이며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는 집을 벗어나고자 나오미는 도시로 독립해 살고 있다. 좀처럼 집에 내려가는 법은 없었다. 다행히 언니가 부모님 집 근처에 살고 있는 터라 나오미는 부모님을 돌보지 않았다. 부모님과 집, 그리고 직장까지. 나오미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자신만의 집, 그리고 친구 가나코뿐이었다.
나오미의 가장 친한 친구 가정주부 가나코. 그녀의 일상은 평범한 주부와 다름없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남편 밥을 차리고 배웅을 하고 집안일을 한다. 다른 집 가정주부와 똑같은 일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남편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타부타 말도 없이 아내에게 주먹이 날아든다. 밥 대신 빵을 주면 고맙다고 주먹이 날아오고 자기 전 잠자리를 거부하면 답례로 날라차기가 들어온다. 나중에 미안하다며 사과하지만 그뿐이다. 고쳐지지 않는 폭력적인 행동과 화를 내는 모습에 가나코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이 사실을 친구 나오미에게 털어놓게 되고 이 둘은 남편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가나코, 어릴 적부터 폭력적인 아버지와 살아서 가나코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나오미는 가나코의 남편을 죽이고 뒤처리하는 방안까지 알려준다. 그 둘은 예행연습을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실천에 들어가는데.....
한 마디로 극악무도한 남자를 심판하는 여자들 이야기다. 물론 부인에게 폭력을 쓴 남자는 죽어 마땅하다. 하지만 나오미는 왜 친구 남편을 죽여야 했을까? 어릴 적 아버지를 생각한 게 아닐까? 불쌍한 어머니가 생각났을 것이다. 나 같으면 그렇게 참고 살지 않을 텐데,라고 말이다. 어쨌든 계획은 좋았지만 예상 못한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 변수들로 중간중간에 긴장타게 만들어 더 재밌긴 했지만 말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다. 복수가 생각보다 상쾌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다. '카타르시스'가 없었다. 그 짜릿 찌릿함. 큭.....오쿠다 히데오라면 통쾌한 한방을 남겼어야 했는데 말이다. 남편의 돈을 다 털어먹었거나 남편의 폭력적인 행위들이 언론을 통해 다 까발려졌거나 그녀들의 이야기가 언론에 공개돼 화제가 됐거나 말이다. 그래도 결말이 비극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래도, 역시 오쿠다 히데오 소설은 시원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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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