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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좋아
- 작성일
- 2012.3.9
기억이 나를 본다
- 글쓴이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저
들녘
기억이 나를 본다
먼저 고백하자면 나는 모국어로 쓰인 시가 아니면 죽은 시라는 이상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다 보니 번안 시는 어지간해서는 잘 읽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엔 오랜만에 번안 시집을 꺼내 들었다. 사실 이 책은 나를 언니로 부르는 올케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생일이라든지 특별한 기념일에 책 선물을 가끔 해주던 올케가 파주 출판단지에 가족 나들이 갔다가 내 생각이 나서 샀다고 한다. 그때가 마침 2011년 노벨 문학상 발표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라 수상자로 선정된 트란스트뢰메르의 시집을 샀던 모양이다. 책 속에 이런 사랑스러운 메모까지 적어두었다가 우리 집에 다니러 왔다가 선물이라며 주고 갔다.
내가 좋아하는 올케의 고마운 선물을
감히(?) 읽지 않고 책장 속에 모셔다 둘 수만은 없는 법!
그래서 이번 주엔 머리도 식힐 겸 시집을 읽어보았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집은
우리나라엔 이미 2004년 들녘에서
<기억이 나를 본다>라는 제목으로 첫 출판이 된 모양이다.
그런데
트란스트뢰메르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 후에도
이 시집 외에는 아직 출판된 것은 없다.
이 시집이 나올 때 책임 편집을 시인 고은씨가 했는데
노벨 문학상 후보로 매번 거론되시곤 하던 고은 시인이 그의
수상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집은 특이하게도
전반부는 한국어 번역 시로
후반부는 시인이 스웨덴어로 시를 써왔음에도
영역 시로 채워져 있다.

낯설었던 시인 트란스트뢰메르
2011년 노벨 수상자로 트란스트뢰메르가 선정되었을 때
고백하자면 나는 그가 누군지 전혀 몰랐다.
스웨덴에서는 국민시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릴 정도라고 하니
그곳에서는 꽤 유명하신 분이었던 모양이다.
내 맘대로 시 읽어보기
기억이 나를 본다.
시집의 제목과 같은 시를 올려본다.
그리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해석도 해보았다.
기억이 나를 본다 Memories Look at Me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Tomas Transtromer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A June morning, too soon to wake,
too late to fall asleep again.
유월의 아침?
시인의 나라에서
6월 아침은 어떤 느낌일까?
먼저
스웨덴의 기후를 검색해 보았다.
북 유럽에 있는 나라답게.
우리나라보다
봄이 늦게 오고 겨울이 빨리 오는 나라였다
그렇다면
시 속의 6월은 우리의 4월과 비슷한 듯한데,,,
해가 점점 빨리 떠오르면서
아침도 덩달아 우리에게 빨리 다가오기 시작하는 시기다.
아마도 시인은 유월의 어느 아침
성큼 성큼 봄이 오는 소리를 듣다가
다른 때보다 일찍 잠에서 깬 모양이다.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l must go out ㅡ the greenery is dense
with memories, they follow me with their gaze.
시인은 왜
밖으로 나가자가 let' go out 아니라
밖으로 나가야만 한다고 했을까? must go out
시인을 must 하게 한 어떤 것 때문에
시인은 밖으로 나왔다.
나가보니 주위는 녹음으로 우거져 있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관심 있게 보아야 할 것은
memories 다
한국어 번안으로는 기억!
나는 이 기억을
내가 기억해야만 하는 어떤 것으로
의미를 확장해서 이 시를 이해해 보기로 했다.
계절이 이제 막 바뀌고 주위는 푸름으로 덮였다.
그럼 뭐하냐?
봄은 왔지만 내 머릿속 기억(과거)은
여전히 나를 놓아주지 않고 계속 따라다니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
memories가
시간과 상관없이 내 곁에 그대로 있다.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They can't be seen, they merge completely with
the background, true chameleons.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과거(추억이든,,기억이든)를
나는 볼 수는 없어.
왜냐구?
memories는
마치 처음부터 자신이 배경이 background
이었던 것처럼 구니까.
마치 카멜레온처럼,,,,
그렇다.
memories는
배경이되어 background 나를 따라다닌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진짜 자신의 모습은 숨기면서 말이다.
새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They are so close that l can hear them breathe
although the bird song here is deafening.
그러나,,,,
카멜레온처럼 몸을 숨기면 뭐하냐?
나는 이미 그것이 내 곁에 있는 것을 느낄 수 가 있다.
이른 아침 새가 이렇게 큰 소리로 울어대는 데도
숨 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memories가 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해봤자 소용없다.
memories는 가까이 있다.
기억은 내 가까이 있고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6월의 아침이 왔는데도
녹음의 배경이 되어서까지 나를 지켜본다.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서
나를 지켜본다!
나는 피할 수가 없다!
아!
이렇게
기억이 나를 본다!!
시를 해석하다가 답답함이 밀려왔다.
모국어로 쓰인 시가 아닌 번안 시를 읽으면
시인의 섬세한 감성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모국어로 된 시중에서 하나를 올려둔다.
조그만 사랑 노래-황동규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이번에도 내 마음대로 해석을 해본다.
예전에 내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것이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어제라,,여기서 어제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기억과 관련된 과거,추억, 회상?
아니면
편지의 존재 자체가 지닌 본성 중의 하나를 시인이 끄집어 낸 것일까?
어떤 것이면 어떠랴..
어제를 동여맨 편지
아! 동여맨이 주는 시적 어휘의 쾌감이란,,,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편지엔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던 걸까?
길은 왜 사라졌을까?
뒤를 따르던 길은 어제와 무슨 사연을 함께하고 있을까?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늘 뒤 따르던 길이 사라지고 나니
길만이 아닌 그대와 관련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만다,,
사라지고,, 사라지고,, 미련과, 그리움이 함께 묻어난다,,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아!,,
돌들은 그대로 박혀 있다고?
길은 사라졌는데,,
놀아주던 돌들은 그대로라네...(과거는 아직도 현재로 머문다.)
그런데,, 돌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있다?
얼굴은 왜 가리고 있을까?
시적 표현도 아름답지만
얼굴을 가린 채 아직 박혀 있는 돌에서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갑자기 사랑한단다,, 그것도 이 짧은 시에 두 번이나 연속해서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경험하며 큰 소리로 시를 읽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이미 여러 차례 이 시를 읽고 난 후였는데,, 갑자기)
그런데 다음 구절이 행조차 바뀌지 않은 채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로 바로 이어진다.
날은 추운데,, 이미 저녁인데,,
그런데 시인은 아직도 환하단다.
박혀 있던 돌들이 만들어낸 깨어진 금들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환한 저녁,,,
추위 환한 저녁-잃어버린 사랑을 붙잡고 싶다-마주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을 인식-마주한 현실,,,
성긴 눈 날린다.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몇 송이 눈.
눈이 눈 뜬다.
눈 뜬 눈이 떨고 있다.
떠는 눈이 떠다닌다.
시의 제목이 조그만 사랑의 노래다.
조그만 사랑은 그냥 보통의 사랑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땅 어디에도 앉을 곳을 찾지 못한
작은 사랑!
그 작은 사랑이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닌다.
내 마음대로 해석한 시를 읽다가 다시 생각한다.
역시 나는 모국어로 된 시가 좋다.
저 시적 단어들이 주는
쾌감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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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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