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사회/심리

청현밍구
- 작성일
- 2020.4.10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 글쓴이
- 김누리 저
해냄
바야흐로 다시 선거철이 다가왔다. 모두 다 대한민국이 위기인 줄 알고 있다. 모두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지만, 글쎄올시다.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즐겨 찾아보고, 책도 3권이나 다 사서 읽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김누리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왜 당연한 인간의 권리를 누리지 못할까?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에 한동안 맴돌았다.
대한민국은 밖에서 보면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고도성장과 민주화를 비교적 빠른 시기에 이뤄낸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국가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보면 유례없는 불평등과 빈부격차, 사회적 분열로 남녀노소, 지역, 학연, 세대 등 분열이 극심하다. 심지어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고 있는 나라로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람도 늘어간다.
'헬조선'이라는 자조어에 N포세대의 청년층의 좌절, 자고 일어나면 부동산 폭등으로 점점 노동의 가치를 잃어가는 나라.
예전에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 님의 강연을 들었는데 상위 1%만을 위한 S클래스 00노블아파트 등을 TV에서 버젓이 광고하는 나라, 그리고 그 문제점을 모른채 그 속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는 OECD 국가 중에는 거의 우리가 유일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인간을 인간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닌 물질, 돈으로 평가하는 황금 만능주의, 천민 자본주의의 표본이라고 평가했다.

촛불혁명으로 정부도 교체하고 우리 국민은 늘 국가의 누란 위기에서 제 역할을 다 해줬지만 위정자들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은 그렇지 못하다.
이 책은 기만적인 정치지형부터 경제, 교육, 분단체제까지 거대한 늪에 빠진 '한국형 불행'과 '한국인의 오늘'을 진단하고 있다.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입니다. 저자는 이것이 꼭 지억의 구성 목록처럼 느껴져 섬뜩했다고 합니다. ---p.5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저자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독일이란 나라에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방식으로 답을 구하고 있다.
독일은 우리에게 여러 면에서 비교할 가치가 있는 나라다. 우선 현대사의 궤적이 가장 유사합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과 분단의 운명을 공유했다. 국가의 규모도 비슷하다. 통일 독일은 인구 약 8,400만명, 통일 한반도는 약 7,800만명이다.
독일이 미국 모델에 대한 '대안 모델'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 대한민국을 개혁하려면 미국에 대한 '인티테제(antithese)로 평가받는 독일로부터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물론 독일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독일은 이러한 문제를 '상식적'인 수준에서 해결하고 달리 표현하면 무엇보다 인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 근대 사회의 상식을 헌법 제 1조로 가진 나라가 독일이다.
저자는 우리가 '헬조선'을 벗어나 유토피아로 가자는 말이 아니라 적어도 인간이 인간을 서로 존중하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문제점을 해결하는 나라로 나아가길 바라고 있다.
책은 JTBC의 강연에서 실제 1/3밖에 방송되지 않았던 나머지 2/3가 들어가 있다.
방송에서는 부적절했거나 누군가에게는 덜 핵심적이지만 꼭 해야만 했던 이야기가 녹아 있다.
책은 제 1장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고, 2장에서는 민주화를 이룬 86세대의 위기와 경쟁의 덫에 걸린 한국 교육을 이야기한다.
제 3장은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보고 있다.
제 4장은 통일이다. 독일 통일을 거울삼아 그 문제점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 유학전까지 한국사회에서 체제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하고, 등수를 매기는 사회에서(물론 항상 상위였겠지만) 대학입시에 죽도록 매달려서 학비도 내고 서열사회도 경험했다.
하지만 독일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경쟁시키지 않고, 대학을 줄 세우지 않지만 노벨상 수상자를 엄청나게 배출했고, 기초과학 분야, 산업분야에서 앞서 있다.
살인적인 경쟁과 승자독식의 정글 대한민국에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한다.
저자는 왜 한국에서만 68혁명이 없었는지 그 68혁명의 부재로 인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잘못됐고, 특히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마지막은 통일이다. 통일 문제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고 절실하다. 통일 한반도야 말로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 할 수도 있는 마지막 돌파구일 수 있다.
저자는 특히 분단체제에서 한국사회가 아주 병든 사회가 됐고, 권위주의적인 국가가 됐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각 장마다 감명깊은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부족한 서평을 마친다.
대한민국은 30-50클럽에 가입한 세계 7번째 대국이다. 우리 앞에는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있다. 캐나다는 인구가 안되고, 중국,러시아는 소득이 안된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소위 '강대국'이라 부를 수 있다.
우리는 스웨덴 연구소에서 조사한 세계 1위의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라고 반문할 수 있다. 독일이 2위였다.
하지만 그 속을 보면 이말은 어느정도 맞다. 프랑스는 마린 루펜이라는 극우주의자가 대통령 결선투표까지 갔다는 것,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등으로 봤을 때 민주주의가 성숙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일본같이 자민당 독재국가는 말할 것도 없다.
당시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촛불혁명으로 민주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우리나라가 충분히 1위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우리의 촛불혁명은 지난해 홍콩에서 벤치마킹했고, 전세계가 주목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야기 한다.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의 차이가 극심하다고.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서도 후배 학생들을 군대식으로 군기를 잡고, 운동선수들, 직장인들까지 정기적으로 해병대캠프를 다녀오면서 단결을 강요받고, 연예인들의 병영체험을 보며 낄낄걸고 있는데 이는 정말 야만적 행태이고, 계몽된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독일은 68혁명을 통해 교수가 지배하던 대학을 학교의 3주체인 교수, 조교(강사), 학생이 1/3씩 권력을 분점하게 됐다고 한다. 대학의 많은 일을 이들이 공통적으로 논의하고 심지어 총장도 조교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독일 기업의 아디다스, 메르세데스 벤츠, BMW, 보쉬, 루프트한자 등 글로벌 기업들의 이사회는 50퍼센트가 노동자로 되어 있다. 우리는 기업의 임원진, 화려한 경력의 대학교수들(사실 그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다) 중심의 사외이사가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독일과 서구 유럽이 오늘날과 같은 체제와 인간 중심의 사회를 가져 온데는 68혁명의 산물이다. 좁게는 1968년 5월 프랑스에서 학생과 근로자들이 일으킨 사회변혁운동을 말하는데 이는 서유럽 전역, 심지어 동유럽까지 번진다. 프라하의 봄이 바로 이 68혁명 이후 유사하게 일어난 운동이다.
이 운동 이후 독일의 학계, 사회 등은 매우 민주적으로 변경되고, 학비 문제 등에서 자유로워지며 적어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공부할 수 있게 되는 사회로 변했다.
다음은 한국에서만 왜 68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그 자유로운 흐름속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이 우리에게 남긴 사회적 억압과 파시즘, 군대문화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한국 사회는 결국 박정희를 넘어 전두환 정권까지 군사문화를 경험하다가 86세대에 의해서 1987년 민주화를 쟁취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86세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다.
86세대가 자신들의 도덕적 결단에 의해서, 또 수많은 희생을 통해서 한국 민주주의를 이만큼 진전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상대와 싸워본 적이 없다. 그들보다 왼쪽에 있는 사람들과 경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자유롭고 정의롭고 평등한 세계를 주장하는 진보주의자들과 대결해 본 적이 없다.
그들의 상대는 언제나 외세에 기대어 기회주의적으로 사적인 이익만을 탐하는 수구 보수들이었고, 도덕적 하자가 너무나도 분명한 수구 보수 세력하고만 경쟁해 왔기 때문에 항상 도덕적으로 우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자신들이 그렇다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의식을 다룬 이 책은 가슴을 찌르는 아픈 말이 있지만 뼈와 살이 되는 말들이 너무나 많다.
독일의 교육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라고 했다.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민주주의가 취약할까 고민하던 시기에 아도르노의 에세이에서 본 이 말은 저자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고 한다.
이 말이 옳다면 약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는 얘기이고, 민주주의를 하려면 구성원 하나하나가 강한 자아를 가진 성숙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말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가 왜 취약한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한국인들은 과연 얼마나 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지 반문했다고 한다. ---p.113
다음으로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유례없는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이야기한다. 상위 1퍼센트가 전국토의 55%를 차지하고, 상위 10퍼센트가 전국토의 97.6%를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세상이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전체 2퍼센트 남짓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학벌사회 한국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바야흐로 다시 선거철이 왔다. 우리 사고의 경직성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예전부터 그랬다. 충(忠)과 정통의 가치에 위배되면 가차없이 공격받는다.
숙종대 양명학에 호의를 보인 윤휴,박세당 등에게 사문난적을 씌운 노론 주자학자들이나, 조선후기 천주교 탄압, 정부수립 시기 좌우분열에서 상대방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다 궤를 같이한다.
우리 국회 300명가량의 국회의원 중에서 290명 정도는 자유시장경제(Free market ecocomy)를 지지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국회를 구성하고 있는 정당들 중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반대하는 정당은 정의당 정도입니다. 다른 정당들은 모두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거나, 최소한 반대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극단적인 의회 구성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의원이 우리처럼 98퍼센트에 달하는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심지어 자유시장경제의 낙원이라는 미국도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자유시장경제가 정확히 무엇이고, 그것이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p.164
그렇다 무슨일이든 치우침과 지나침은 아니함만 못하다. 우리는 스스로 사고의 경직성에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야수적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지금 중용의 미덕이 필요하고 다시금 우리나라 전반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담론이 필요한 시기이다.
또한 나와 다른 사람을 절대적으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는 '관용'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은 통일이다.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바로잡고, 그 속에서 교훈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는 앞에서도 말한 그 극단성 때문에 남과 북이 세계에서 가장 극단적인 나라가 되어 있었다. 불과 70여년만에.
한반도의 통일이란 다양한 사회 이론의 실험 중에서 가장 권위주의적이면서 왕정에 가까운 사회주의 국가와, 70년만에 수많은 자본주의 사례 중에서 가장 약탈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합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통일은 고질적인 병을 앓고 있는 두 국가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아픈 두 나라는 결혼식장이 아니라 병원으로 먼저 가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맞는말이다.
결혼한다고 병이 낫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이 자신의 고질병을 먼저 치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북한은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를 민주화하고, 남한은 오늘날의 야수적, 약탈적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것이 통일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느 분명 7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바꾼 나라다. 폐허의 나라에서 세계 7번째 강대국으로 일어섰다. 하지만 한국사회 전반은 현재 극심한 양극화와 분열, 격차로 인해 위기다. 사람은 인간보다 물질을 먼저 말한다.
한국사회의 다양한 부조리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진단해서 대안을 제시하는 저자의 이 책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쓰디쓴 보약 한 첩과 같다고 할 것이다.
책에서는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볼 수 없었던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의 말들이 조금은 아플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책이다.
이 책에 이어 이런 주제에 더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더 읽어볼만한 책은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홍세화 님의 책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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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