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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7.11.15
성실함과 진지함을 갖춘 진정성 가득한 배우
모 대학 연극영화과 입시장. 면접을 진행하고 있는 교수가 한 응시생에게 질문을 던진다.
“ 왜, 배우가 되려하는가? ”
응시생이 답한다.
“ 우연히 ‘안녕 모스크바’라는 연극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작품에 출연하신 최홍일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보고 감명을 받아 이 길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
위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다. 실제 있었던 일화다.
배우에게 있어 어떤 누군가가 자신의 연기를 보고 인생의 진로를 선택하려 하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배우 최홍일은 위 응시생의 경우처럼 자신 또한 우연한 기회에 연극 한편을 보고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20년 넘게 무대 지켜온 그... 현재 [윤이상, 나비 이마주]에서 열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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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2때였다. 미대를 가고 싶었지만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중 우연히 연극 한편을 보게 됐다. 기분이 묘했다. 고 3때 교회 성극에 출연하게 됐는데 그때부터 무대의 마력에 빠져들어 연극영화과로 진학했고 그 길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됐다”
최홍일은 1986년 현대예술극장에서 공연 된 ‘스크루지’에서 조카 역으로 데뷔를 하였다. 그 후, ‘왕은 죽어가다’ ‘안녕 모스크바’ ‘꼽추 리처드 3세’ ‘오셀로’ ‘딸의 침묵’ 등에 출연하며 20년 넘게 연극무대를 지켜왔다. 간간히 영화와 방송매체에도 얼굴을 알렸다.
그의 삶은 어찌 보면 상투적이다. 대개의 배우들이 걸어온 길처럼 그도 비슷한 행로를 걸어왔다고 해야 할까. 경제적 어려움과 싸워가며 다양한 돈벌이에 나서야했고 배우로서 갖는 자기 번민과 딜레마에 빠져 가면서 고집스럽게 무대를 지켜왔으니 말이다. 그 동안 한눈을 팔거나 후회해 본 적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눈을 팔아본 적은 없다. 난 무대에 서는 게 좋다. 내 꿈은 그저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고 나의 연기를 보고 그 누구든 인생에 변화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에겐 최고의 선이다. 배우가 된 것에 후회해 본 적은 없지만 내 연기에 대해선 후회해 본적이 많다.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좀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자책한다.”
그는 지금 출연하고 있는 연극 “윤이상, 나비 이마주”란 작품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은 듯했다.
“쉽지 않다. 실존했던 인물을 표현한다는 게... 처음엔 작품 속에 그려진 윤이상이라는 인물을 해석하면서 좌냐, 우냐 하는 이념적 관점으로 접근했더니 너무 어려웠다. 그러다 좌, 우의 문제에서 벗어나 민족을 사랑했던 사람, 어머니와 아내와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으로 단순히 접근했더니 그때부턴 좀 쉬웠다. 예술가니까 정신세계가 좀 자유로울 듯 해 보이는데 의외로 정돈되고 까다로운 구석이 많은, 마치 윤리선생 같다고나 할까. 그는 세상과 소통을 하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는 진정성으로 대하는데 세상은 계산적으로 대하니까...”
삼백 억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 있어 “든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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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최홍일을 보며 그가 진짜 윤이상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집과 신념과 예술을 대하는 진정성.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까지.
그에겐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있다. 결혼생활 15년 동안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지내오고 있는 그의 아내는 배우 최홍일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지원군이다.
“작년 초 무렵,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깊은 슬럼프에 빠져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었다.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걸 바깥으로 내색할 수는 없었다. 내가 힘든 모습을 보이면 가족 또한 같이 힘들어할 테니까. 그런데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나. 결국 아내가 알게 됐고... 아내가 그러더라. 미안하다고.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줄 몰랐다고. 그러면서 아내가 물었다. 만약 어떤 이가 삼 백억을 줄 테니 나와 딸을 달라고 하면 줄 수 있겠냐고. 당연히 그건 말도 안되는 거지. 아내가 거 보라면서 그러더라. 당신은 이미 삼 백억을 가진 부자이니 든든하게 맘 편히 갖고 살라고. 당신 곁엔 우리가 있지 않느냐고”
격려와 용기를 준 아내 덕분에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그.
잘해봐야 일 년에 두 세편 정도밖에 무대에 설 수 없는 그 또래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그는 잘 팔리는(?) 배우에 속한다. 그건 그가 성실함과 진지함을 갖추고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작품을 대할 때 항상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임한다고 했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엔 기회가 없다는 식의. 그건 다른 한편으로 지금의 대학로 실정과 무관하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 같다. 40대 이후의 배우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작금의 연극계 현실을 비춰볼 때 그의 그런 마음가짐은 왠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관객과 배우에게 “정극에 대한 관심”, “진정성” 당부
그는 지금의 대학로 현실을 이렇게 바라봤다.
“정극의 위기라고 본다. 뮤지컬이 블랙홀처럼 모든 걸 다 빨아들이고 있다. 무대도 배우도 관객도. 새로운 질서로의 변화를 거부하는 건 아니지만 관객들이 정극에도 관심을 좀 더 가져줬으면 좋겠다. 균형의 무너짐은 언젠간 필시 부작용이 일어날 테니. 그리고 젊은 배우들 가운데 무대에 서는 목적이 방송이나 영화계 쪽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고 하는 이들이 많은 거 같은데 그 점에 대해선 어느 정도 이해한다. 다만 어떤 목적에서건 무대에 서는 그 순간만큼은 진지했으면 좋겠다. 진지하지 못하고 진정성 없이 무대에 선다는 건 관객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그는 더불어 점점 더 심해져가고 있는 선후배간 소통의 단절을 안타까워했다. 선후배간 질서의 무너짐은 곧 그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터전의 무너짐이 올 수도 있으니까.
우리는 흔히 끼가 많은 배우를 두고 하늘이 정했다는 의미의 ‘천상 배우’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배우 최홍일은 결코 끼가 많은 배우가 아니다. 하지만 최홍일이야말로 진짜 ‘천상 배우’다. 오로지 연기밖에 모르고 무대에서 설 때 가장 행복하고 가장 진지해지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천상 배우’ 최홍일. 300억 가진 부자배우 최홍일. 무대 위 진정성 가득한 그의 모습을 오래오래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프로필]
*최홍일
출생 : 1963년 1월생
직업 : 연극 배우
학력 : 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졸업
출연작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장수 역) 왕은 죽어가다(베랑제1세 왕 역) 안녕 모스크바(물리학자 역) 꼽추 리챠드 3세(버킹검 공작 역) 오셀로(브라반시오 역) 파행(숫막 아비 역) 19그리고80(1인 다역) 나는 누구냐(김구역) 세종32년(정인지 역) 퇴계 이황(이해 역) 딸의 침묵(변호사 역) 치마(김의한 역)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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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