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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x1122
- 작성일
- 2022.11.2
진지하면 반칙이다
- 글쓴이
- 류근 저
해냄
이건 무슨 책이지?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생각해낸 내 첫 감상이다. 그의 시는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으나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알게 된 시인 류근. 프로그램 말미에 출연자들이 돌아가면서 짧게 남긴 소회에, 무릇 마음에 와닿는 글귀에 시인은 이래서 시인이구나. 싶었던 사람이다. 그런 감상을 지닌 사람이었음에도 그 시인의 책은 한 번도 들춰보지 않았다가 이 에세이를 읽으려 하니, 어려운 건 당연한 일인가.
아무튼 첫 질문의 답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운문을 뛰어넘고 산문을 뛰어넘은 류근의 문장은 하나의 새로운 장르다. 류근이라는 장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소설가 이외수의 평이다. 비록 카테고리는 에세이지만, 이것을 에세이로 읽으면 안 될 것 같다. 이 글의 집합체는 그냥, 류근이라는 장르다.
*
시인이라 그런 걸까.
류근의 에세이 묶음집은 수많은 글들이 짧게 묶여진 글들이 주는 울림은 확연하게 다르다. 그만큼 우리나라 문학 교육, 시 교육이 잘못돼 있습니다. 감상은 없고 분석과 평가만 있습니다. 시계를 해체해놓고 시간을 묻는 경우입니다(p24)라는 문장은 한동안 나를 멍 때리게 만들었다.
맞는 말이다. 학창 시절 문학 시간에 시에 대해 배운 것은 시에 대한 해석이지, 시를 어떻게 읽는가- 어떻게 느껴야 제대로 감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 그저 수능에 집착한 수업만 남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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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 그저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한두 가지 주제를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으로 논하는 비허구적 산문(네이버 백과사전)에 그치지 않고, 류근이라는 장르 빗대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
*'
그래서 작정하고 읽으면 하루도 안되어서 읽었을 책의 두께를, 두고두고 곱씹으며 천천히 읽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소비하는 게 아까워서-라고 표현해도 될까. 너무나도 친숙한 그의 환경과 심연을 파고드는 표현에 나는 읽는 내내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것도 너무 좋은 문장인데, 두 줄 뒤 다음 문장도 너무너무 좋은 문장이야.
그래서 술과 함께한 책이기도 했다.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그와 동화되는 느낌에는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제격일 것 같아서 말이다. 술은 감성을 폭발시킨다고 했던가. 여느 글들은 술과 함께 해야 그 진정한 의미를 알 것도 같아서 말이다.
술과 함께 전하는 나보다 더 외로운 나에게 전하는 위로. 어느새 나는 그 누구보다 깊이 그의 글을 체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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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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