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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희망을
- 작성일
- 2012.8.29
장화홍련전
- 글쓴이
- 김별아 저/권문희 그림
창비
어..작가가 김별아네. 장화홍련이라는 비극으로 점철된 이야기, 그것도 너무나도 익숙한 내용이라 별 기대 없는 책이었는데, 작가이름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바투 잡았다. 이 뻔하디뻔한, 너무나도 잘 알려져 한톨의 신선함도 없는 이야기를 김별아는 어떻게 풀어갔을까.
어렸을 적에는 시공간의 배경이나 아버지의 신분에 대해선 그리 상세하게 알지 못했다. 아니면 기억을 못한건지..아무튼 이본이 많으니, 판본마다 사는 동네나 아버지 신분이나 성이 달라지겠지만, 여기에선 세종시절 함경도 철산 지방에, 아버지가 좌수라는 향반으로 설정돼 있다. 성은 배씨고 그러니까 배장화, 배홍련.
아는 대로 계모(이 책에는 허씨로 돼 있다) 의 음모로 장화홍련 자매가 죽음을 당하고 귀신이 돼 나타나자 부임해오는 철산 부사들마다 송장이 돼 나갔다. 그러다 보니, 철산은 부사들이 아무도 오려하지 않는 기피 임지가 돼 버렸고 그때 흑기사처럼 자청해서 부임한 사람이 정동호란 인물이었다. 정부사는 장화가 남몰래 통정해서 잉태했다는 누명을 벗겨주었고, 두 자매의 시신을 수습해서 장례를 치뤄 주었고,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고, 그리고 장화홍련의 불망비(不忘碑)까지 세워주었다.
이렇게 장화홍련은 이승에 맺힌 한을 풀고 저승으로 돌아갔고, 그 뒤 아버지는 다시 재혼을 해, 딸 둘을 얻었다. 그 두 딸은 장화와 홍련의 환생이었으니..
'장화홍련전' 에는 이렇게 유불선 사상이 적당히 혼합돼 있는데, 어렸을 때는 분명 재미있게 읽었고, 그래 죄지은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해, 하며 그 통쾌한 권선징악적 결말에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성인이 돼서는 그렇게 편하게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문제다.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찌나 심한지, 조선시대라는 걸 감안해도 비인간적인 윤리에 잘못된 고정관념을 주입할 우려가 있는 대목은 아이들에게도 설명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도 자정능력이 있고, 어느 정도 걸러서 받아들이겠지만 비판적인 책 읽기가 괜히 필요한 게 아니다.
혈연관계에 의한 핏줄만 강조하는 경직되기 이를데 없는 순혈주의도 그렇고, 계모를 악으로 도식화하는 건 약과다. 계모 허씨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가히 폭력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볼은 한 자가 넘고, 눈은 퉁방울같고, 코는 진흙으로 만든 병 같고, 입은 메기 같고,머리털은 돼지 같고,키는 장승만 하고,목소리는 이리 같고, 허리는 두 아름이나 되는데다 곰배팔이에 쌍언청이를 겸하였고,주둥이를 썰어내면 열 사발은 되겠고, 얼굴 얽기는 콩멍석 같으니 그 생김새가 차마 바로 보기가 어려웠다."(22쪽)
이렇게 짐승같은 몰골로 묘사해 미= 선, 추=악 이란 이분법적이고,도식적인 것도 고리타분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아버지의 태도이다. 계모 허씨가 장화가 잉태를 하고 유산했다고 배좌수를 속이고 장화를 죽이자고 하는데, 아버지가 그걸 받아들이다니. 설령 장화가 잉태했다 유산했다고 해도, 세상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 할 때에도 끝까지 자식을 믿어주고 지켜주는 것이 부모가 아닌가.
내가 어렸을 때 읽은 책에서는 아버지가 딸을 죽이는데 동조한 것이 아니라, 계모가 아버지 몰래 죽였는데, 세상에 아버지도 알았고, 거기에 동의하다니,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딸을 죽이는 명예살인이나 무엇이 다른건지.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계모 허씨와 아들들은 죄를 받는데, 이 아버지는 풀려나 18세 처녀한테 새 장가까지 들고 장화 홍련이 환생한 두 딸을 얻게 된다니..처녀귀신보다 이 대목이 더 충격적이었다. 딸을 죽이는데 동조한 아버지만은 벌에서 면책되고, 꽃까지 어여쁜 새각시까지 안기다니.
아무리 아버지가 왕이고, 삼종지도 운운한 시대라지만, 귀신보다도 더 소름이 돋았던 것이 이렇게 천륜을 부정하는 패륜적 발상이었다.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렇지, 자기 핏줄, 자기 자식을 죽이는데 동의한 아버지는 계모만큼 나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계모보다 더 나빴다.
한참 흥분하다, 워워워..흥분을 가라 앉히고 나자 의문이 생겼다. 왜 하필 이런 내용으로 풀어간 것일까? 세가지 정도의 국한문, 한글 판본을 참고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편이 더 완성도가 높아서?아니면 흥미로워서?
책을 읽기 전 가졌던 김별아 작가의 대한 내 기대감은 무너졌고, 오히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장화홍련전' 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진 고전 중 하나이다. 특히 2003년에 개봉됐던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은 그 포스터부터해서 작품에서도 호평 받았던 기억이 났다. 그 영화는 가족이란 테두리 안으로 시선을 파고 들어간 작품이었고.
그만큼 '장화홍련전'은 시대의 변화를 좇아가면, 처녀귀신만 보이는 작품이 아니라, 충분히 다른 각도에서 다른 가치를 발견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다층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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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