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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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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06
글쓴이
박시백 저
휴머니스트
평균
별점8.7 (9)
꽃들에게희망을

조선시대에는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삼권이라는 개념도, 권력 분립이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던 봉건체제였다. 그렇기에 이미 기득권 세력으로 굳어져버린 공신세력처럼 비대해진 권력을 제어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세력을 통제하는 것이야 말로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한 난제였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예종, 성종 편에서는 이 커질대로 커져버린 공신들의 힘, 즉 대신 권력을 통제하려는 성종의 정치에 가장 눈길이 쏠렸다.




 성종시기는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경국대전'이 완성, 반포되면서 법에 근거해서 나라를 운영하게 됨으로써, 국가 운영의 원칙과 안정을 확립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조선의 통치체계가 제도적으로 완비된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생산력이 발전했고, 국가 이념인 유학이 지역적으로는 지방, 계급적으로는 상민 그 이하에까지 파고들어 제사, 효녀, 열녀 등을 추앙하는 등 백성들의 정신과 생활을 지배하고, 관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거기에 성종은 유교적 덕목에 충실한 왕이라, 자신의 뜻에 반한다 할지라도 신하들을 다치게 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이유로 신하들을 박해하는 일은 없었던, 그래서 호학의 군주였다거나, 인재를 발탁하고, 기용하는 점에서나 여러 모로 세종에 견줄만한 업적과 자질을 발휘한 임금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통해 왕권을 세운 임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한 성종이라 할지라도 비대해질대로 비대해진 공신권력을 더이상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흔히 권력을 제어하는 방식으로는 권력을 쪼개 분점하게 만들거나, 혹은 다른 세력에 권력을 쥐어 줌으로써 상호 견제하게 만드는 방법을 많이 사용한다. 또는 권력 행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법 또한 있지만 이것은 언론의 발달이 선행돼야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식이라, 조선시대에는 시기상조인 감이 있다.


 


성종은 다른 세력을 등용함으로써 공신들의 전횡에 제동을 걸었다. 그 중심에는 홍문관이 존재했는데, 성종은 공신과는 성장 기반이 다른 젊은 신진 세력들을 홍문관에 등용한 것이다. 김종직을 위시한 사림세력들의 중앙진출이 본격화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성종의 필요와 사림들의 의욕이 잘 맞아 떨어진 것이다.


중앙에 진출한 신진 세력들이 거침없이 공신들을 비판하게 되자, 공신들을 비롯한 전 관료 조직에 긴장감이 흘렀다. 이렇듯 언간들의 활동은 공신들의 권력 행사에 제동을 거는 정치적 효과를 거두었지만 한편으로는  왕 또한 이 언간들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어떤 면에서는 신하들의 권한 특히 언론 삼사의 권한은  더욱 막강해지는 효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이것은 결국 사림에게 날개를 달아 준 셈이 됐고, 신권의 중심에 사림들이 차지하는, 세력교체와 함께 사림시대를 여는 서막이 됐다. 하지만 그것은 거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다.



 

성종시대는 태평성대였고, 그 어느시대보다 유교적 원칙에 충실하게 정치를 펼친 시대였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종은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가 보위에 오를 수 있었던 운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도 그렇지만, 성종을 둘러싼 가장 가까운 여인들의 존재감은 그 어느 왕보다도 강렬했다는 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세조의 정비, 즉 성종에게는 할머니였던 정희왕후, 모후였던 인수대비, 아들 연산군을 낳은 뒤 폐비된 윤비, 그러니까 할머니, 어머니, 아내 이 한명 한명 모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고, 왕실 여인들이 음으로 양으로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인들의 파워게임이라고 할까. 가족사에서는 이야기거리가 많은 임금, 스토리 텔링이 풍부한 군주로 보였다.


 


하지만 성종의 이 가족사는 후대에 피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비극을 잉태하고 말았다. 성종이 문에 치우져 조선의 군사력과 방위력이 저하되는 결과, 즉 조선의 문약화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것과 함께 세자의 모후를 사사한 것 또한 정치적 오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자의 모후를 죽인 뒤 올 혼란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을텐데, 신하들에게는 너그러운 성종이었건만, 한 때 아내였던  폐비 윤씨의 사사를 감행한 것에 대해서는 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군주로서의 성종과 남편으로서의 성종 사이의 괴리였던 것일까. 성종은 애정이 식은 여인에게는 냉정하고 단호한 남자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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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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