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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에게희망을
- 작성일
- 2017.11.16
경성의 건축가들
- 글쓴이
- 김소연 저
루아크
종로 네거리, 지금은 국세청 건물이 있는 그 자리에 일제 시대에는 화신백화점이 있었는데, 이곳은 한국인이 세운 현대식 백화점으로 유명했다. 뿐만 아니라 건물도 꽤 유명했다. 10층도 안되지만 당시로선 보기드문 고층건물이었고, 지방사람들이 일부러 구경올만큼 명소였다.
이 화신백화점은 철거된 지 이십년도 더 됐을텐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화신 백화점 외관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아주 튼튼하고, 묵직해 보이는 건물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제시대다 보니 화신백화점을 만든 건축가는 일본인이 아닐까 싶었는데, '경성의 건축가들'에서 보니 조선인이었다. 박길룡. 조선이 배출한 1세대 건축가로 당시 조선인 최고의 건축가로 평가받는 인물이었다.
조선건축가들의 활동이 활발해 진 것은 일본에 의해 서구문명이 이식되면서였다. 경성이 개발되면서 또 징용,징병에 끌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또 조선총독부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는 매력에 건축에 발을 딛는 사람들이 늘어났던 것이다.
조선에 건축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데에는 1916년 일제가 설립한 경성고등공업학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학교를 통해 건축실무을 담당할 수 있는 인력이 안정적으로 배출이 됐다.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조선 건축가들은 일본 건축가들과 비교해 차별을 겪어가며 실무경험을 쌓았고 그 뒤 조선 건축주들을 만나 백화점, 공장, 학교, 주택, 극장 등 건물을 독자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해서 화신백화점 건설에 참여했던 이가 박길룡이었던 것이다. '경성의 건축가들'에는 박길룡을 비롯 모두 열두 명의 건축가들이 소개돼 있다. 여기에는 일본인 두명과 미국인 한명이 포함돼 있는데 소개된 인물 중 한 명만 빼놓고는 전혀 모르는 건축인이었다.
이 책에 소개된 건축인 중 내가 알고 있었던 단 한 사람, 가장 눈길을 끌었던 인물은 소설가 이상이었다. 그는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 출신으로 조선총독부 건축기수로 근무한 이력의 소유자라는 거. '조감도'나 '건축무한육면각체'같이 그의 작품에서 건축의 색채가 물씬 풍겼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에게 숫자나 건축적 감각이 상상력의 젖줄이 되었던 것이다.
이외에도 직접 건물짓는 과정에 참여한 인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해방후 장관을 5번이나 역임할 정도로, 건축 행정가쪽으로 더 활동했던 김윤기나 '우리말 건축사전'을 펴낸 장기인 등의 건축인들도 인상적이었다.
20년대 이후 경성에서는 백화점, 학교 등 근대적 문명시설이 본격적으로 건설된 시기인만큼 건축물에 근대사조를 반영된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주도되는만큼 건축물에서나 건축가나 모두 혼란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일제가 주도하는 건설에 참여하는 과정에 겪어야 했던 갈등, 정서적으로는 반일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으니. 결국 한옥개량작업을 하거나, 개인 사무소를 열고 조선인 건축가들에게 일감을 주고 규합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선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려했고, 스스로 위안삼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하지만 갈등과 혼란은 건축물에 드러날 수 밖에 없었다. 자유, 평등 등 서구의 근대적 가치가 담겨있는 근대적 시설이었음에도 일제에 의해 유도된 근대적 시설이었다는 점에서. 아무리 조선인의 손으로 세워졌다해도 건축물에도 일본 제국주의 색채가 묻어나는 그 균열이 투영될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정신적으로 그 혼란을 감당해야 했던 조선인이 건축했기에 더더욱 그 불협화음이 도드라져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보면 경성의 랜드마크 구실을 했던 화신백화점 건물이나 또 식민지통치의 상징처럼 군림하다 90년대에 해체됐던 조선총독부 건물, 이렇게 지금은 사라진 경성시절 건물도 있지만 여전히 건재하게 존재하고 있는, 서울 시민에게는 눈에 익은 건축물이 상당수다.
이왕가 미술관 (현 덕수궁 현대미술관)이나 조선은행 본점( 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보성전문학교 본관(현 고려대학교 본관) 등..
특히 서울역. 기차를 타고 자주 서울역에 내렸던 어린 내 눈에도 본관의 둥근 지붕은 독특했고 멋져보였다. 이국적이기까지 했고 지금도 가끔 들르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는 경성제국 대학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이렇듯 건축물은 오랜 시간 특정 공간을 점유하며, 그 시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하게 된다. 그리고 건축물에는 트렌드를 넘어서는 시대의 가치와 사조, 설계한 건축인의 정신이 담겨있다.그렇기에 일부 경성시절 건축물은 일제 유물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해체한 것 조선 총독부 건물이고.
그렇다면 경성시대에 건축물을 지었던 건축가들은 어땠을까? 식민지백성 대부분이 그랬듯이 그들 역시나 현실과 지향점 사이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어야 했다. 현실 안주와 반일. 그 혼란스러움 속에서 그들은 건축물에서나 삶에서나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또 내 나이를 실감하게 됐다. 지금은 사라진 화신백화점, 조선총독부 건물이 내 어린시절 추억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한해가 저무는 무렵이라 그런지 오래도 살았구나하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도 요즘 경성시절 건물들이 일제시대의 영욕을 겪어내고 근대 유적으로 지정되고 있는 것에서 다수의 추억 속에 자리잡고, 역사로 존재하게 되는 건축물이 갖는 시공간의 힘 또한 인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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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