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_책 2018

파랑뉨
- 작성일
- 2018.8.3
곰탕 1
- 글쓴이
- 김영탁 저
arte(아르테)
보통 SF 소설이라고 하면 그저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한 미래의 얘기를 생각하지만 최근에는 적당히 가미된(?) 그런 SF도 있음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뭐 예를 들면 이 책 ‘곰탕’처럼
말이다. 제목만 봐서는 절대로 SF를 예상할 수 없음에도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의 제목이 주는 ‘곰탕’이 얼마나 적당한지
이해할 수 있다.
몇 번의 쓰나미 이후 2063년의 부산은 안전한 윗동네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랫동네로 나뉜다. 어릴 때 기억이라곤 고아원 생활이 전부이며,
자라서는 식당 주방 보조로 살아가고 있는 우환에게 큰 금액을 보장하는 제안이 들어온다. ‘곰탕
맛을 배워와라.’ 시간 여행 상품이 개발되었지만, 살아서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에, 죽을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환은 목숨을 건 생애 첫 여행을 감행한다. 돈이 욕심나서가 아니었다.
“이렇게 사나, 그렇게 죽으나” 다를 게 없는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에서 우환은 타인들의 현재에 도달하게 된다. 우환의
도착 이후 2019년의 부산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Yes24 책소개>
이 소설은 읽기 쉽게 되어
있고, 구성도 편하고, 책 두께와 크기도 만만하지만 결코
쉽게 읽을 책은 아니다. 잉여인간인듯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이 우연찮은 기회를 통해 과거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이 태어나기 전 자신의 부모와 할아버지를 보면서 잠시 행복을 느끼지만 자신이
가질 수 있는 행복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다. 게다가 미래에서 온
나이든 아들의 철부지 같은 생각과 심술이 귀여우면서도 애틋하고 그의 생각과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게 또 그렇게 가슴이
아프다. 때문에 ‘그럼 그럴 수 있지. 너는 그래도 돼. 너는 자격 있어’
이렇게 계속 응원 아닌 응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래에 이렇게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과거가 바뀌고 그로 인해 미래도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과연 질서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뭐 내가 생각할 때는 다차원이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되는데 먼 듯, 멀지 않은 듯한 미래는 내게는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사람에겐 컵라면 하나가, 어떤 사람에겐 예전의 곰탕맛이 사무치도록 그리울 수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그렇게 대가를 받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사람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은 현재의 이 가능성 있는
세계를 버리고 미래의 그 암울한 세계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자신이 있던
미래야말로 과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처음엔 오로지 소설의 비현실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 읽었었다. 그러다가 이우환의 그리움과 애증과 이순희의 현실에 마음이 아팠고, 이제 우환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나 하면서 마음을 조금은 놓았었다. “그래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지…” 때문에 아직 남아 있는 다른 한 권의 책이 불길함을 주었지만 1권의 마지막에 희망에 차오르는 우환을 보면서 ‘그래 너도 한 번
제대로 살아봐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권을 통해 모든 이야기의 흐름을 다 알게 되었고, 많은 감정을 받아
들이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푹 빠져들어서 읽었던 것 같다. 숨은
얘기는 모두 2권에 있었다.
결국은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어떻게 계속 살아갈지에 대한 이야기였고, 살고 싶은 모습이 있었지만 결국은 살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도 있었다. 살고
있던 미래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기에 돌아갈 이유가 없는 박종대.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 머리를 써야 했던 박종대. 그리고 그와 같은 이유로,
혹은 자신이 왔던 미래가 암울해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기에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질러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위기가 오면서는 ‘불쌍해지면 안되는데… 슬퍼지면 안되는데…를 마음속에서 연호하며 읽었다. 가진게 없어서, 행복이라는 감정을, 충만이라는 감정을, 서로 보듬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이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우환이 웃으며 제자리로 돌아가길 바랬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찮다. 작가를 잘 모르지만 나의 기쁨과
안도에 협조할 것 같지 않은 불안감도 들었다. 하긴 우리가 언제 봤다고 서로 협조를 논하겠는가?
미래에서 온 이우환과 그런
이우환을 미래로 다시 돌려보내야 미래로 돌아갈 수 있는 김화영. 사건에 휘말리는 이순희와 그의 여자친구
강희. 곰탕집을 하고 이우환에게 곰탕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이순희의 아버지. 레이저 건에 의한 살인사건과 순간이동을 파헤치는 형사들. 그리고
사건에 다가갈수록 알게 되는 알 수 없는 얘기들… 이우환이 이우환일 수밖에 없었던 이 상황들. 웃프다고도 절대 말할 수 없는 이 상황들.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냐. ‘역시 소설은 소설이네’ 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이우환이 과거로 돌아와 한 행동들로 인해서 여러 사람의 인생이 바뀌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우환이 왜 그 식당에 있게 되었고, 또 과거의 부산으로 돌아왔으며, 왜 다시 미래의 부산으로 돌아갔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에서 좀 아쉽다
싶은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이것 소설이니까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박종대는 자신의 현재 어린 시절을 보고 싶지 않았을까?;, ‘얼굴만
바꾼다고 죽은 사람이 될까? 키는? 체구는? 말투와 목소리는?’, ‘과학자들이 순간이동을 하는 이순희를 그냥
두었을까?’, ‘탁성진이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화영에게
총과 금괴를 넘긴 것은 박종대?’
어쩌면 너무 허무맹랑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야기의 구성이 기가 막히게 맞아 들어간다.
46층 건물을 무너뜨리고 정보를 삭제해버리는 부분에서는 ‘히야~’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레이저 건, 순간 이동 등. 하지만 분명 재미가 있기는 하다. 미국드라마에서도 보면 이런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온다. 닥터 스트레인저나, 히어로즈만 보더라도 그렇다. 어벤져스에서도 보면 순간이동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나오기도 하니까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지만 한국적인 배경으로 익숙한 것은 아니니까.
결국은 울어버렸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 울어버렸다. 작가는 짧은 문장과 간결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결국 감정은 다 전달받아 버렸다. 그래서 울었다. 그들의 인생이 아프고 슬퍼서 울었다. 스터디 카페에서 책을 읽었는데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펑펑 솟는 눈물 때문에 애를 먹었다. 사람들 몰래 눈물을 닦느라고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짧은 부분으로 사람의 감정이 이렇게도 흔들린다니 정말 불편한 일이다.
작가가 왜 이 글을 쓰려고
했는지에 대해서 알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는 미래적이고 슬퍼서 당황스럽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앞뒤가 잘 맞물려 그에 따른 불편함은 없으니 신기하고, 작가가
정말 글을 잘 쓰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P17 우환은 그냥, 죽는 게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사는 게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처음부터 어른이었다. 처음부터 형편없고 돌이킬 수 없는 어른이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언제 죽어도 그만이었다. “이렇게 사나, 그렇게 죽으나.”
P112 어쩌면 우환도 한 번쯤은 부모를 만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린 시절에 한 번쯤은 우환도 아이들을 찾아오는, 혹은 데리고 가는
어른들 중에, 저런 사람들이 부모였으면 좋겠다. 바라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애들은 아니었다. 넓지도 않은
길거리에서 길지도 않은 다리 하나로 힘들게 지탱하며, 금방 출발할 것도 아닌데 왜 시동은 끄지 않아서
탕탕부르르르탕 온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며, 저 빨갛게 뱅글뱅글뱅뱅 돌아가는 불빛은 왜 필요한지, 도대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망할 어린 남녀가 부모일 수는 없었다. 아니, 부모와 같은 이름을 쓰는 것조차 용납이 안됐다. 너희들은 동명이인이고
뭐고, 누구 부모고 뭐고, 그냥 오늘 나랑 죽자는 심정이
되었다. 우환은 괜히 억울했다..
P207 멀미가 났다. 어지러웠다. 몰려오는 바람과 풍경들이 벅찼다. 하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눈을 뜨고 울었다. 슬프지 않았지만 눈물이 자꾸 났다. 바람이 사람을 울린다는 걸 우환은 마흔이 넘고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알았다.
바람에는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우환은 강희 뒷자리가 금방 익숙해졌다. 오토바이는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편안했다. 우환은 순희 뒤에 탄 강희 뒤에서 편안했다.
셋이 부산의 밤을 달렸다. 달릴수록 달릴 곳을 내주는 도시였다.
P302 우환은 달렸다. 바다를
벗어나면서부터 계속 달렸다. 온통 젖은 몸으로 달렸다. 그러다
웃었다. 우환은 살아있는 게 좋아서 웃었다. 우환은 여기서
살 생각에 웃었다. 살아 있는 게,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없다. 새 인생이라도 얻은 듯 좋았다. 감사했다. 즐거웠다. 미친 사람 같다. 우환은
웃으며 달리고 있다. 한달음에 부산곰탕까지 가려고.
P8 우환은 파도에 쓸려와 해변에 버려진 죽은 몸뚱이들을 봤다. 우환은, 자신이 죽인 사람들을 봤다. 열둘이었다. 우환은 미처, 그들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배에서 나와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어떻게든
문을 열고 나와야 했다. 우환이 그 문을 연 순간 배는 가라앉기 시작한 거다. 하지만, 다른 시간으로 가기 위해 내려가던 그 배야말로 우환에게는
침몰 중인 것이었다. 그래서 문을 열었던 거다. 살기 위해. 바로 이곳에서 살기 위해 문을 열었던 것이다. 어쩌면, 아주 짧은 순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환은 그 문을 열었다. 그럼에도 우환은 이곳에서 살고 싶었다. 죽음을 예상하는 것과 목도하는
것은 달랐다. 죽은 자들의 몸은 비로소 서두르는 게 없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곳에 그들의 삶이 있었다. 저렇게
누운 채로 파도가 밀어내는 대로 들썩거릴 한가로운 사람들이 못 되었다. 우환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돌아가야 할 사람들을 머물게 했고, 부지런히
살아야 할 사람들을 영원히 게으르게 만들었다.
P197 우환은 욕심 낸 모든 것들에 대해서 후회했다. 가족이 떠올랐다. 순희와 강희, 그리고
자신, 그렇게 가족이 될 셋을 생각했다. 하지만 순희와 강희와
종인, 그 셋은 이미 가족이었다. 우환은 한 번도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가져보지 못한 것이어서 그렇게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아도 절로 주어지는 유일한 것이 가족인지도 몰랐다.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선택하지 않아도 되지만, 선택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절로 주어지지 않으면 달리 수가
없었다. 바란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우환은 김화영이 왜 자신을 죽이려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욕심을
냈기 때문이었다. 그 욕심이 열두 명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중에 김화영이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더욱이 그 소년은 우환을 죽일 만하였다. 우환이 아닌 누구라도 그런 선택을 한다면, 죽을 만하였다. 우환은 죽을 만하였다
P255 마지막으로 남자는 신원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는 2009년 3월 23일생입니다. 저는 미래에서 왔습니다”
P337 “우환으로 하죠” 순희는
한참 만에 답했다. 순희와 강희가 가장 즐거웠던 여름, 둘이
함께 좋아했던 유일한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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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