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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작별하지 않는다
글쓴이
한강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9.2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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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소설의 중반부 까지는 이야기의 전개가 느리고, 서술의 흐름이 왔다 갔다 해서 다소 지루하고 읽기 어려웠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제주 희생자들의 아픔이 마치 내 가족의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와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었다. 만약 처음 기대했던 대로 4·3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 전개되었다면, 흥미롭기는 했겠지만 어딘가 뻔한 역사소설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독특한 서술 방식과 문체 덕분에,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서사를 넘어 진정한 문학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중첩된 세계 속에서의 존재들

이 책은 독특한 서사 구조와 감각적 묘사를 통해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이 중첩된 복잡한 상태로 전체 소설이 구성되어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고, 서로 다른 장소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듯한 모호한 경계에 머물러 있다. 양자역학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처럼, 관찰되기 전까지는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관찰하는 순간 고양이의 생존 혹은 죽음 중 하나로 결정되는 것과 같다.

  • 인선은 손가락 절단 수술을 위해 서울의 한 병원에 있지만, 동시에 경하와 함께 제주의 집에서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나누고 있다. 어쩌면 인선은 계속 제주에서 목공 일을 하고 있고, 경하가 서울에서 받은 문자로 제주까지 내려간 일이 환상이었을 수도 있다. "인선이 혼으로 찾아왔다면 나는 살아 있고, 인선이 살아 있다면 내가 혼으로 찾아온 것일 텐데. 이 뜨거움이 동시에 우리 몸속에 번질 수 있나"


  • 인선의 새 아마는 분명 경하가 제주 집에 도착한 후 나무 아래 묻어주었는데, 다음날 죽은 아마가 경하에게 다시 나타나 손바닥 위에 앉는다.  

  • 인선의 아버지는 제주에서 잡혀 대구형무소에 있다가 부산형무소로 이감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다. 아버지는 제주를 떠나있던 세월 동안 가족들과 살던 건천 건너편을 지켜봤다고 한다. "이제는 그게 이상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아. 아버지가 십오 년 동안 형무소에도 있고 저 건너에도 있었던 것이"(인선)

소설 마지막 부분에 경하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누가 여기 함께 있나.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하는, 관측하려 하는 찰나에 한곳에 고정되는 빛처럼."   경하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인선이도, 인선이 가족도, 제주의 희생자들도, 보도 연맹의 희생자들도...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도 생각해서 어떤 날엔 꼭 같이 있는 것 같았어" 라는 인선의 말처럼, 그들은 경하의 마음 속 깊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고통의 기억을 내피로 한 꿈과 환상
 
이 소설은 경하의 꿈 이야기로 시작된다. 수천 그루의 묘비 같은 검은 통나무들이 밀물에 갑자기 잠겨 버리자 위쪽에 남은 무덤들이라도 어떻게 옮겨야 할 것 같은데 혼자 어찌할 줄 몰라하는 무서운 꿈.
마지막 장면 역시 눈부신 환상 속 에 있는 듯 하다. 경하와 인선은 눈 속에 누워 눈벽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촛불이 점차 사그러들며 인선도 사라지고, 경하는 "네 손이 잡히지 않는다면, 넌 지금 너의 병상에서 눈을 뜬 거야. 다시 환부에 바늘이 꽂히는 곳에서. 피와 전류가 함께 흐르는 곳에서." 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장면이 마침내 꿈의 실체와 의미를 이해한 경하가 현실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새와 눈, 생사의 경계

이 책에서는 '새'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새들은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공룡"이라는 표현에서, 이미 멸종된 존재인 공룡의 후손인 새는 죽었으나 살아있는 존재, 즉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 있는 존재로 소설 전반에 흐르는 ‘중첩’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새는 억울한 희생자를 상징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분명히 죽은 아마를 흰 무명실과 천으로 덮고, 상자에 꽁꽁 싸매어 묻었었는데 다음날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눈 앞에 나타난다.  "죽은 다음에도 배고픈 게 있어?" "죽은 다음에도 추운 게 있나" 라는 대사에서는 죽은 이들에 대한 애잔한 연민이 보였고, "새의 뼈들에는 타원형의 구멍들이 파리처럼 뚫려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가벼웠던 거야"라는 구절에서  '뼈들의 구멍'은 아마도 총알이 뼈에 박혀 주검이 된 억울한 희생자들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없이 무력하고 나약했기에 '가볍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인선의 어머니와 손을 맞잡았을 때는 "내 두 손에 쥐여진 그의 손이 죽은 새처럼 작고 싸늘하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떠올릴 때는 "퍼덕이는 새가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는 통증"으로 표현한다.
"새가 있어. 손 끝을 건드리는 감각이 있다. 가느다란 맥박처럼 두드리는 게 있다. 끊어질 듯 말 듯 손가락 끝으로 흘러드는 전류가 있다" 작가의 감수성으로는 잊혀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 여린 생명들이 느껴지는 것이다.

새는 죽음과 고통, 억울한 희생자들의 상징으로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인선의 회고가 시작되는 순간 새가 살아 돌아온 것은, 잊혀져서도 안 되고 잊혀지지도 않는 이들이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고"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눈'도 소설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선이 엄마를 떠올릴 때 눈이 흩날렸고, 인선이 서울로 가출해서 다쳤을 때, 제주의 엄마는 다섯 살 모습의 인선의 뺨에 눈송이가 내렸는데 눈이 녹지 않더라는 꿈을 꾼다.  엄마가 어렸을 때 이모와 둘만 운좋게 살아 남아, 학살 현장에서 외조부모와 남은 형제들의 시신을 찾아다녔을 때, "사람이 죽으면 몸이 차가워지고,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선에게 안 좋은 일이 닥쳤음을 예감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눈은 "하늘에서 어떻게 이런 게 떨어지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인데, 한편 '폭설'과 '눈보라'는 '험난한 여정' '장애' '고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눈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결정도 사실은 지상에서 올라온 먼지와 재의 입자로 가득한 것"이라는 구절처럼, 눈은 깨끗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상처와 고통이 내재되어 있다.
"바람과 해류도 순환하지 않나.오래 전 먼 곳에서 내렸던 눈송이들도 저 구름 속에서 다시 응결할 수 있지 않나. 다섯 살의 내가 K시에서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고 서른 살의 내가 서울의 천변을 자전거로 달리며 소낙비에 젖었을 때,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법이, 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라고 경하가 말하듯, 또한 처럼 생과 사의 경계, 죽음과 삶의 혼재, 고통의 순환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작별하지 않는다. "-기억과 연대의 서사

인선이 경하의 꿈을 영상으로 구현하기로 한 둘의 프로젝트 제목을 물었을 때, 경하는 "작별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인선은 작별이 완성되지 않는 것인지, 기한 없이 미루는 것인지 궁금해 한다.
제주 4.3 사건으로 약 3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6.25 전쟁 기점으로 학살되어 암매장 당한 사람들이 전국에 2-30만명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 규명이나 피해자들과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그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진실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완료되어야 진정으로 과거와 화해하고 그들을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절대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을 완성할 수 없다로 들린다.

마무리 - 고통과 마주함으로써 치유되는 역사

인선은 손가락이 절단되어 통증을 느낄 때 갑자기 경하의 책(아마도 실제로는 광주 5.18을 담은 <소년이 온다>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을 떠올린다 :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인선이 입원해 있던 병원 로비에서 마주친 손과 발이 절단된 사진들. 실제보다 무섭게 기억하지 않기 위해 경하는 제대로 보는데, 제대로 볼수록 고통스러운 사진이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고통은 피하기 보다 마주해야 그 고통이 거기에서 끝난다. 인선의 의사는 "3분에 한 번씩 손가락이 봉합된 자리를 찔리는 통증이 당장에는 더 강할 수 있으나, 손가락을 포기할 경우 통증은 평생 계속될 거라고" 말했다.
경하는 제주 4.3의 고통의 심연으로 들어가기 위해 눈보라를 견디고, 생존자와 유족들의 증언과 역사적 기록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때로는 인간이 저지른 폭력과 악이 너무나 끔찍하여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가 되기도 하지만, 이 고통을 직면하고 견뎌 내야만, 비로소 고통이 극복되고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채, 주인공 경하의 내면과 기억, 그리고 꿈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아픈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희생자들과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반추하는 것을 넘어, 그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강한 다짐으로 이어진다.
또한, 혼과 죽음, 그리고 산자의 현실이 몽환적으로 혼재된 문체 속에서 느껴지는 문학적 아름다움은 마치 한 편의 예술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 특히 소설 속에서 묘사된 제주의 집, 폭설과 강풍, 숲, 그리고 꿈 속 이야기들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남긴다. 이를 나중에 영화로 본다면, 내가 상상한 형상과 어떻게 비교될지 기대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작품이었다. "채식주의자"는 오래 전에 읽었을 때 뭔가 기괴했었다라는 느낌이 남아있고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소년이 온다"는 읽는 내내 같이 아팠고, 감동적으로 읽었었는데,  "작별하지 않는다"는 책장을 덮었을 때 뭔가 반짝이고 눈부신 아름다움이 부드럽게 내 앞에 흩뿌려지는 그런 묘한 느낌으로 여운이 길었다. 시적, 문학적 아름다움이라는게 이런 것이란 걸 제대로 보여준 작품 같다. 한강이 한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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