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하지만 민망하지 않은 책들

emi0527
- 작성일
- 2004.1.30
『떨림』은 직업이 소설가인 한 남자가 자신의 성애담을 8편의 이야기를 통해 회고하는 연작소설집입니다. 그는 여성의 '여성성'을 진정으로 알아주고, 존중하는 남자입니다. 따라서 그에겐 할머니도, 아주머니도, 장애여성도 심지어 매독에 걸린 친구 어머니까지 아름답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특별한 여성성을 가지고 있으니깐요. 아주 독특한 느낌의 소설집입니다. 친구 여럿에게 추천해 줬는데... 모두 의외로 진지하게 읽더라구요.
상실의 시대는 여기 저기 리스트에 붙이기 좋은 소설이지요. 성의 묘사에 있어서 제가 주목하는 것은 레이코 여사가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얘기한 경험담입니다. 레이코 여사가 영악한 여자아이에게 성적으로 휘둘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여자애의 손가락이 질 속에서 느껴졌다... 는 식의 묘사가 당시의 제겐 참으로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묘사의 힘은 우리가 생활에서 체험하는 구체성을 언어로 복원시키는 것에 온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지요.
성행위를 여성의 입장에서 담담하고 꼼꼼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점이 돋보였습니다. 그 미묘한 감정의 성질들을 언어로 그렇게 잘 포착해내었는지,, 작가의 예민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어요. 누구는 불륜소설이라 폄하하기도 합니다만... 이 책을 읽고 <카트린 M의 성생활>같은 책을 쓸 수 있는 작가는 어쩌면 전경린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누군가는 이 책을 보고 몹시 기분이 나쁘다로 하더라구요. 여자를 상품으로 노골적으로 취급한다구요. 물론 이 책이 여성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은 맞지만, 일종의 매뉴얼식으로 너무도 쿨~하게 서술했기 때문에 별로 반발감이 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이렇게 사람을 서술한 저자의 기지가 참 돋보이더라구요. ㅎㅎ 제가 듣기로는 남자사용설명서도 나온다고 했는데, 이 출판사 망했나봐요. 아직도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에도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는 '여성'이 나오면 우리나라도 상식이 통하는 또한 문화적 품격을 갖춘 나라일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자신의 성생활을 그렇게 냉정하게 관찰할 수 있는 개인,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책으로 출판하고 그 책이 왜곡되지 않게 읽히는 문화 풍토가 있는 프랑스가 참 부러워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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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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