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1. 책을 읽다! -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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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글쓴이
무라타 사야카 저
살림출판사
평균
별점8.4 (258)
지나고

편의점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손님이 들어오는 차임벨 소리에, 가게 안을 흐르는 유선 방송에서 신상품을 소개하는 아이돌의 목소리. 점원들이 부르는 소리, 바코드를 스캔하는 소리. 바구니에 물건 넣는 소리, 빵 봉지 쥐는 소리, 가게 안을 돌아다니는 하이힐 소리. 이 모든 소리들이 뒤섞여 ‘편의점의 소리’가 되어 내 고막에 거침없이 와 닿는다.

                                                                                                  -p. 8

 

편의점의 소리가 이리도 다양했던가. 인간은 무수히 많은 정보 중에 일부분만 선택해서 받아들인다고 하더니,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소리인가 보다. ‘편의점 인간’ 후루쿠라 게이코는 편의점의 모든 소리를 귀담아 듣는다. 그리고는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이를테면 짤랑하는 작은 동전 소리를 내고 있는 사람은 담배나 신문을 재빨리 사서 돌아가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재빨리 카운터 안으로 자신의 몸을 미끄러뜨리는 식이다. 후루쿠라 게이코는 편의점 점원으로 18년째 일하고 있다. 어느덧 서른여섯 살인데,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취직을 한 것도 아니어서 남들에게 말하기 그럴싸한 변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후루쿠마 게이코는 어릴 때부터 어쩐지 조금 이상해 보이는 아이였다. 유치원 시절에 새가 죽어 있었서 다들 슬퍼하고 있는데, 그녀는 이거 먹자고 얘기했다고 한다. 아빠도 새 꼬치구이를 좋아하고 자기와 여동생은 닭튀김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새는 다수의 의견대로 구덩이에 묻혔는데, 꽃줄기를 억지로 잡아 뜯어 죽인 꽃 시체가 듬뿍 바쳐졌다고 한다. 이런 후루쿠마 게이코의 ‘보통’과는 다른 생각과 행동에 부모님은 언제나 그녀를 걱정했다. “어떻게 하면 ‘고쳐’질까?”

 

아, 나는 이물질이 되었구나,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가게에서 쫓겨난 시라하 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음은 내 차례일까?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쳐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 주려고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p. 98

 

그렇게 이물질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서른 여섯의 나이에 결혼 혹은 취직을 안 하고 있다는 이유로 후루쿠마 게이코는 이물질이 된다. 그것은 시라하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말로는 ‘혼활’(‘결혼 활동’의 줄임말)을 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일한다고 하고는 농땡이만 부린다. 그리고는 결국 여자 손님을 스토커하다가 가게에서 쫓겨난다.

 

“이 세상은 이물질을 인정하지 않아요. 나는 줄곧 그것 때문에 괴로워해 왔어요.”

음료 코너에서 티백을 우린 재스민 차를 마시면서 시라하 씨가 말했다.

재스민 차는 움직이지 않는 시라하 씨를 대신하여 내가 탔다. 시라하 씨가 말없이 앉아 있어서 내가 찻잔을 가져다 앞에 놓아주자, 그는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마시기 시작했다.

                                                                                                  -p. 105

 

후루쿠마 게이코와 시라하 둘 다 같은 것으로 괴로워해 왔으나, 둘은 비슷하면서도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우선 후루쿠마 게이코는 편의점 인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편의점 업무에 최선을 다하지만, 시라하는 게으름을 피우고 변명이나 늘어 놓는다. 후루쿠마 게이코가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과 달리 시라하는 강자한테는 비굴하고 약자한테는 허세를 부린다. 그러나 남들이 보기에 똑같은 사회 부적응자일 뿐이다.

 

“시라하 씨는 조몬 시대 이야기를 좋아하는군요.”

“좋아하는 게 아니라 아주 싫어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현대 사회의 거죽을 쓴 조몬 시대예요. 커다란 사냥감을 잡아 오는 힘센 남자에게 여자들이 몰려들고, 마을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시집을 갑니다. 사냥에 참가하지 않거나 참가해도 힘이 약해서 도움이 안 되는 남자는 업신여김을 받죠. 구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요.”

                                                                                                 -p. 98

 

시라하는 걸핏하면 조몬 시대(일본 역사에서 신석기 시대) 이야기를 하는데, 어쩌면 그의 말대로 구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제수한테조차 업신여김을 받는데, 후루쿠마 게이코와 달리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제수의 말대로 그는 제 손으로 돈을 벌 마음은 추호도 없으면서 돈에 탐욕스럽고 칠칠치 못한 사람이다. 우리가 보통 사회 부적응자하면 쉽게 떠올리게 되는 유형이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후루쿠마 게이코 같은 유형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육체 노동자는 몸이 망가지면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아무리 성실해도, 분발하여 열심히 노력해도, 몸이 나이를 먹으면 나도 이 편의점에서 쓸모없는 부품이 될지도 모른다.

                                                                                                  -p. 101

 

쓸모있는 부품이 되기 위해 후루쿠마 게이코는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편의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 잠을 자고, 컨디션을 조절하고,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 업무에 포함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편의점에서 그만두게 되자, 무엇을 기준으로 자신의 몸을 움직이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는데..

 

수상식 당일에도 편의점에서 알바를 마치고 왔다는 무라타 사야카의『편의점 인간』은 작가에게 아쿠타가와상을 안겨 줬다. 그녀 역시 18년째 편의점에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써 왔다고 한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 그런지 후루쿠마 게이코라는 캐릭터가 돋보인다. 처음 후루쿠마 게이코는 감정은 배제한 채 효율성만 강조해서 고쳐져야 하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성격은 편의점에서는 빛을 발한다. 부품으로 일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산업 사회가 만든 인간의 기계화를 그린《모던 타임즈》가 떠오르기도 하는데, 후루쿠마 게이코는 편리하게 날 때부터 기계 같은 모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들 기계화가 되었을지 몰라도 처음부터 기계였던 사람은 이상하고 불편하다. 게다가 그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겪는 수순을 밟지도 않는다. 그러기에 자꾸 간섭하고 타박하는 것이다. 결혼이나 취직을 하라고 말이다. 모두들 정작 누군가를 소개해 주거나, 일자리를 소개해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것을 후루쿠마 게이코에게 강요한다. 오로지 그녀의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람들 말에 휘둘리다가 결국 자기 자리를 찾는다. 그 자리가 최선인지 아닌지 어느 누구도 말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여전히 들리는 듯하다. 그 자리는 잘못된 것이라고, 어서 빨리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라고.. 시라하의 말대로 이 세상은 현대 사회의 거죽을 쓴 조몬 시대일 수도 있다. 예외는 용납되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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