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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9.1.22

프레더릭 레이턴 경 <페가수스를 탄 페르세우스> 1895-1896년, 캔버스에 유채,
레스터 뉴 워크 박물관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신화, 그 이야기를 소재로 한 루벤스와 번 존스의 그림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이미 한 바 있습니다. 이 글은 지면관계상 그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지 못했던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에 대한 전승을 살펴보고 지난 글에서 미처 살피지 못한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의 사랑에 관한 전승을 소개할 것입니다.
페르세우스는 아르고스 출신의 용사로 헤라클레스의 직계 조상 중 한 명입니다. 제우스를 아버지로 둔 그는 어머니를 통해서는 링케우스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그의 외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는 어떻게 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신탁에 물었지요. 신은 그에게 그의 딸 다나에가 장차 낳을 아들이 그를 죽이리라 대답했고, 신탁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는 다나에를 청동으로 만든 방에 가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나에는 아이를 배었는데, 물론 다른 이설이 있지만, 다나에에게 반한 제우스가 황금 이슬로 변하여 지붕의 틈새로 스며들었고 그렇게 해서 다나에는 페르세우스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이 전승은 황금만 있으면 가장 삼엄한 경비도 뚫을 수 있으며 사랑까지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자주 인용됩니다. 아무튼 다나에는 청동방에서 몰래 아이를 키울 수 있었는데, 페르세우스가 놀다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외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에게 들키고 맙니다.
신탁의 실현을 두려워 한 아크리시오스는 이들 모자를 나무 궤짝에 넣어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궤짝은 바다를 이리저리 떠돌다가 세라포스섬의 기슭에 닿게 되고 어부 딕티스에게 구조됩니다. 딕티스의 형은 그 섬을 다스리는 폭군 폴리덱테스였지요. 딕티스의 보살핌으로 페르세우스는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납니다. 다나에에게 반해 기회를 노리던 폴리덱테스에게는 용맹하게 성장한 페르세우스가 눈에 가시였고, 그래서 그는 페르세우스가 감당하기 힘든 주문을 합니다. 바로 고르곤, 곧 메두사의 목을 요구하게 된 사정은 지난 글에서 이미 밝힌 바 있습니다. 그 후의 무용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윤기가 해설해주는 이야기에서는 아테나 여신의 주선으로 페르세우스가 날개 달린 샌들과 하데스의 투구를 얻은 것으로 소개되고 있으나,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는 우선 포르키스의 딸들인 그라이아이를 찾아 갑니다. 그라이아이는 눈 하나 이빨 하나 밖에 없는 노파들이란 뜻입니다. 에니오, 페프레도, 데이노가 그들입니다. 페르세우스는 그녀들의 이빨과 눈을 빼앗고 님프들에게 가는 길을 알려달라고 위협합니다. 님프들이 날개 달린 샌들과 <키비시스>라 불리는 배낭, 하데스의 투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님프들은 페르세우스에게 그것들을 빌려주었고 정작 헤르메스가 준 것은 강하고 날카로운 쇠도끼였습니다. 아마도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친 것은 이 쇠도끼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또한 키비시스란 배낭이 있었기에 죽은 후에도 그 눈빛은 살아 있어 바라보는 누구나 돌로 변하게 하는 고르곤의 머리를 가지고 돌아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르고네스, 단수형으로는 고르곤인 메두사의 자매들은 어떤 존재들이었을까요? 고르고네스는 모두 세 명의 자매들입니다. 스테노, 에우리알레, 메두사가 그녀들의 이름이지요. 이들은 바다의 신들인 포르키스와 케토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입니다. 신화 속에서 막내 메두사를 제외한 둘은 불사의 존재들이었고 고르곤이란 이름은 일반적으로 메두사의 것이자 그녀는 고르곤의 전형으로 여겨집니다.
이 세 괴물들은 망자들의 왕국 근처 <머나먼 서쪽> 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들의 생김새는 이미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녀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불사의 존재들에게도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었습니다. 오직 포세이돈만이 메두사와 결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녀를 임신시키지요. 바로 이즈음에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죽이기 위해 길을 떠났고, 그 이유는 위에서 밝힌 대로 폭군 폴리덱테스의 거부할 수 없는 명령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테나 여신의 충고에 따른 것이라고도 합니다.
페르세우스가 자른 메두사의 머리가 아테나 여신의 방패에 박혀 무적의 아이기스가 된 사정 또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 중에는 고르곤의 피에 관한 전승이 있습니다. 페르세우스는 고르곤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받아 모았는데, 그 피는 마법적인 효력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왼쪽 혈관에서 흘러나온 피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었고, 오른쪽의 것은 죽은 자를 살려내는 치료약이었다는 것이지요. 또한 그녀의 곱슬머리 한 가닥만으로도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케페우스 혹은 헤라클레스 참조)
메두사의 전설은 처음 생겨난 이래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를 거칩니다. 처음에는 고르곤이 괴물이고 태초의 신들 중 하나로 올림포스 이전 세대의 신들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하지만 곧 그녀는 마법에 걸려 괴물로 변했는데 본래는 아름다운 처녀였으나 아테나 여신과 미모를 겨루다 벌을 받아 그리 되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 이야기 또한 이미 한 바 있습니다. 지난 신화에 대한 설명은 이만 그치기로 하고 이제부터는 안드로메다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
메두사를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페르세우스는 에티오피아를 지나다가 안드로메다를 만납니다. 그녀는 어머니 카시에페이아의 경솔한 말에 대한 속죄물로 바쳐져 바위에 매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에티오피아의 왕인 케페우스와 카시에페이아의 딸입니다. 어머니 카시에페이아는 네레이데스(네레이스들)를 모두 합친 것보다 자기 딸이 더 아름답다고 주장했지요. 화가 난 네레이데스는 그런 모욕을 갚아 달라고 포세이돈에게 청을 합니다.
그러자 포세이돈은 네레이데스의 맘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괴물을 보내어 케페우스의 나라에 피해를 주었습니다. 왕은 신탁을 구했고 암몬의 신탁은 공주인 안드로메다를 속죄물로 바쳐야 에티오피아에서 재앙이 살아질 것이라고 답합니다. 케페우스는 백성들의 고통을 두고 볼 수 없어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딸을 산 제물로 바칩니다. 그것을 마침 고향으로 돌아가던 페르세우스가 보게 된 것이지요.
=> Andromeda. c.1638. Oil on panel.
Gemaldegalerie, Berlin, Germany/파울 루벤스
안드로메다에게 반한 페르세우스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그녀를 구해주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다짐을 받고 그녀를 구합니다. 메두사의 머리며 아테나의 방패 등을 가진 페르세우스에게 그것은 참으로 손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드로메다는 이미 아버지의 형제인 피네우스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습니다. 피네우스는 페르세우스를 죽일 음모를 꾸미지만 이를 눈치 챈 페르세우스는 고르곤의 머리로 그들을 돌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후에야 뻔하지요. 용사와 아름다운 공주는 결혼하여 알콩달콩 사랑하며 잘 살았다고 전승은 들려주고 있습니다.
코논에 의하면 케페우스가 다스리던 나라는 훗날 포이니케(로마시대의 역사 등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요)로 불리는 지중해부터 아라비아와 홍해까지 이르는 지역이라고 합니다. 안드로메다는 포이니케의 명조가 될 포이닉스와 케페우스의 형제인 피네우스로부터 구애를 받았습니다. 케페우스는 포이닉스에게 딸을 주기로 결정했으면서도 피네우스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납치극을 벌입니다. 자작극을 생각해낸 것이지요.
그는 안드로메다가 아프로디테에게 제사를 드리던 섬에 딸을 데려다 놓기로 작정하고, 포이닉스로 하여금 <고래>라고 불리는 배에 그녀를 태워 섬으로 향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숙부를 속이기 위한 연극인 줄을 모르는 안드로메다는 소리를 지르며 도움을 청했고, 마침 그곳을 지나던 페르세우스가 이를 발견합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페르세우스는 이내 배로 돌진하였고, ‘화석이 되어 버린’ 선원들을 남겨 두고 안드로메다를 구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전승 또한 전해집니다.
- 아크리시오스에게 내려진 신탁의 실현
외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는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신탁의 실현을 두려워하여 딸과 손자를 바다에 버렸습니다만 페르세우스는 불사의 존재로 여겨지던 고르곤을 죽이는 용사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신탁은 실현되었을까요? 어머니에게 돌아온 페르세우스는 그동안 폴리덱테스가 다나에를 강제로 차지하려 했기 때문에 양부 딕티스와 어머니가 불가침의 피난처인 제단 곁으로 피신한 사정을 알게 됩니다. 그 다음의 결과야 여러분이 짐작하듯이, 폴리덱테스 일당은 페르세우스의 복수에 의해 돌로 굳어지고 맙니다. 양부인 딕티스는 세라포스섬의 왕이 되었지요.
빌린 무장을 헤르메스에게 돌려준(헤르메스는 다시 그것을 님프들에게 돌려주었지요)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와 함께 고향 아르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를 만나려 했으나 신탁의 예언을 여전히 두려워 한 할아버지는 펠라스고이 족의 나라로 달아났습니다. 그곳에서는 때마침 라리사 왕이 죽은 아버지를 기려 경기를 열고 있었는데, 페르세우스는 그 경기에 참가하였고 아크리시오스는 그 경기를 구경하게 되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이 방향을 잘못 날아가 하필이면 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의 발을 맞추고 말았습니다. 그 때문에 외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는 죽게 되었고 이윽고 신탁의 예언은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희생자의 신원을 알게 된 페르세우스는 괴로워하며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주었습니다. 신화의 세상에서도 가끔씩은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모양입니다. 그밖에 페르세우스가 고향 아르고스가 아닌 티린스의 왕이 된 사연 등을 전승은 자세히 전하고 있으나 이 정도에서 페르세우스 신화는 마치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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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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