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bi
  1. 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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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금빛 눈의 고양이
글쓴이
미야베 미유키 저
북스피어
평균
별점9.3 (22)
eunbi

사람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오늘도 또 한 사람, 흑백의 방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온다.


미뤄두었던 미야베 미유키의 『금빛 눈의 고양이』를 읽었다. 미시마야 변조괴담 시리즈의 5편으로, 앞서 읽은 『삼귀』, 『환색에도력』과 같은 배경과 동일한 등장인물의 시간적 연속성에서 전개되는 소설인지라 빠르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책에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의 표제는 다섯 번째의 제목인 '금빛 눈의 고양이 金目の猫'이지만, 원제목은 네 번째 이야기 제목인 '기이한 이야기책 あやかし草紙'이다. 독자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제목으로 크게 나쁘지 않다. 다만 내용의 전개를 보면 일본판 제목이 더 어울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작에 비해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심장이 쪼그라들도록 무섭다거나 몸이 으스스하다거나 그런 건 없었다. 그렇다고 읽는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일본 특유의 괴기 괴담은 확실히 흥미롭다. 다만 (주로 회한과 슬픔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풀어가는 씨 날줄에 익숙해져 버렸고, 『삼귀』의 마지막 편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미시마야의 차남 도미지로의 캐릭터도 그렇게 임팩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다음 책부터는 흑백의 방 주인은 열아홉 살 처녀 '오치카 おちか'에서 도미지로로 바뀔 모양이다.


1화 : 열어서는 안 되는 방 開けずの間 /

가족 모두가 죽어 나간다. 가족마저 팔아넘길 수 있는 인간의 이기적인 '소원은 서원 誓願이 아니다.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만 쌓이고, 악의가 없어도 아욕 我慾이 맺히고 만다. 그리고 아욕은 사람을 현혹시킨다'(67쪽). 자신을 학대하여 간절함을 이루려는 그 마음엔 (마주치면 재앙을 가져온다는) '행봉신 行逢神'이 응답한다. 이 요괴는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대신에 그에 걸맞은 무언가를 받아 간다…. 잔혹한 비극이다. 아무런 고생도 없이 자기 생각대로 될 거라고 믿는 착각에서 빈틈이 생기고, 그 약함을 파고드는 악령이 우리를 흔들어놓는다….

  

2화 : 벙어리 아씨 だんまり? / 

1권이 너무 무거웠나 보다. 2권은 그 오싹함을 조금 들어주는, 짜임이 좋은 작품이다. (망자를 깨우고 요괴를 부르는) 몬모 목소리를 가진 시골 할머니 오세이의 인생 유전 이야기가 의외로 흥미롭다. 목소리 탓에 큰 고통을 받다가 절벽 가장자리에 섰을 때 사람의 눈을 가진 갈매기가 길을 열어준다. 10대 말 개인적 경험(?)과 접점이 있어 마음이 움직인 대목이다…. (영특하나 말을 하지 못하는) 영주 딸의 요강지기로 들어간 오세이는 일본판 궁중 암투로 살해되어 궁을 떠나지 못하는 잇코쿠의 안타까움을 풀어준다. 외갓집 동네도 후릿그물로 고기를 잡곤 했는데... 유년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3화 : 가면의 집 面の家 / 

가면을 가두어두는 집이 있다. '모양은 가면이지만 그 정체는 이 세상에 재앙과 나쁜 일을 일으키는 이매 ?魅다. 그래서 이 집에 봉해져 있지. 이 저택에 사는 사람들은 파수꾼이다(354쪽).' 오망성 문장이 그려진 하얀 도복도 나오고... 일본 애니 '음양사'가 절로 그려진다. '파수견'으로 채용된 아이의 돈에 대한 욕심이 가면의 도망을 돕게 되고……. 

이 이야기의 결론에서 오치카는 흑백의 방에서 듣는 이야기를 듣고 버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건 들은 이야기를 존중하고 건드리지 않으며, 듣는 사람이 의미를 더하지 않으며, 들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조용히 보내 주는 것이라고….


4화 : 기이한 이야기책 あやかし草紙 / 

흑백의 방 주인 오치카의 이야기가 결실을 본다. 세책가게 효탄고도의 간이치가 이야기꾼으로 등장해 유년의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이어 여섯 번이나 시집을 갔다는 노파의 이야기를 거치면서 오치카는 마음속에 자신을 옭매던 '과거의 일'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야기의 어떤 부분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을까? 별거 아닌데 놓치는 분도 있으리라. 그 답은 이 책을 읽을 독자를 위해 남겨둔다. 이 4화가 일본판 소설의 표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기이한 이야기책'이 서책이나 다름없는 오동나무 상자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괴담을 듣고 도미지로가 그린 그림을 보관하는…. 아마도 다음 책의 주요한 도구가 되리라 본다.


5화 : 금빛 눈의 고양이 金目の猫 /

한국판 표제작으로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주머니 가게 미시마야(三島屋)의 장남 이이치로와 차남 도미지로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금빛 눈을 가진 하얀 고양이의 추억으로 풀어나간다. 분노와 슬픔이 풀 길 없이 쌓일 때, 사람의 염(念)은 한계를 초월하게 되나 보다…. 고양이의 정체와 함께 4화와 5화의 뒷이야기는 여지를 좀 남겨둬야 할 것 같다. 서로 이어지는 부분이 많아 모두 까발리면 안 될 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4화에서 오치카가 마음을 풀게 된 암시와 복선은 5화의 598쪽 하단에서 확신의 장치로 나타난다 (이걸 놓치기 쉽다). 특별한 건 아니지만 미야베의 작품 철학이 보이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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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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