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고...

eunbi
- 작성일
- 2020.6.19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 글쓴이
- 신시아 샤피로 저
서돌
직장생활을 해보니 업무 능력이 탁월하고 팀원의 존중을 받는 분이라 하여 꼭 높은 자리로 승진하는 것은 아니었다. 위만 바라보고 손 잘 비비는, 그러면서도 나름 장악력이 뛰어난 상사가 먼저 발탁되는 걸 더러 봤다. 흔히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들 하는데, 오너는 (아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왜 그런 간부를 중용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시 우리 회사가 조금 잘나가긴 했지만, 몰락의 길을 걸어가는 전형적인 원인이었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그 위치 즈음에 가보니... 바라보는 생각이 약간 달라지긴 했다. 능력도 부족하고 아부만 한다는 평판은 (회사의 발전이 아닌 자본가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오너 위주의 관점'에서 일을 하다 보니 받게 되는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만 사축(社畜)의 틀에서 벗어나는 걸 두려워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 자신들도 살아가기 위해 불편한 후흑(厚黑)이었음을 조금은 이해해 줄 수 있었다.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을 읽었다. 2007년 출간된 책이라 그런지 주된 흐름은 '회사 또는 상사에게 대들지 말고, 알아서 빡빡 기라'는 거다. 흔한 말로 ‘직장생활, 간 쓸개 빼놓고 하라’는 말이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회사(자본가) 또는 상사의(사회·계급적) 우월성을 인정하고 흙수저로 복종하라는 것으로 느껴져 기분이 뒤틀린다. 그런데 묘하게도 마음 한편에서 일정 부분은 나름 수용할 만하다는 생각도 살짝 일어난다. 나도 기득권 꼰대인가?
회사의 가치 시스템은 여전히 업무시간이나 개인 사정과 관계없이 회사를 가장 우선시하여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는 직원에게 보상한다. 일과 삶의 조화라는 홍보용 가치 규범을 순진하게 믿은 많은 직원은 형편없는 인사고과와 낮은 보너스, 그리고 승진에서 낙오되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31쪽)…. 모든 성과에 점수를 매기고 일렬로 세우는 구조에서 '회사인간'에게 요구하는 회사의 진정한 가치 규범은 비밀 같지 않은 비밀이라는 것이다.
능력? 능력 있고 실적 좋은 직장인들이 오늘도 밀려나고 있다. 능력 말고 필요한 것은 '회사 편이라는 신임'이다. 능력은 누구나 키울 수 있다. 회사는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 (설령 비도덕적이라 할지라도) 회사가 가치를 두는 것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직원을 원한다는 거... 권력자들은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냉정하다는 거... 그래서 급하다면 밤늦게까지 일을 해주는, 상사에게 고분고분한 직원을 좋아한다는 거다. 이것이 이 책 저자의 신념이다.
상사는 영원하다. 상사와 맞서는 것은 지는 게임이다. 상사는 반드시 복수한다... 그러니 상사를 궁지에 몰아넣지 마라... 존경심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자신을 낮추고 상사의 조언을 구하라... 관계가 훼손되었으면 그냥 묵묵히 회복될 때까지 인내하고 일관성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뭐람…. 상사를 안심시키고 당신의 편으로 만들어, 당신의 노력과 성과를 지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건 좋은 맥락이지만 이런 라인 조직 문화는 영~…. 쩝~
회사의 신임을 얻고 싶으면, 당신이 먼저 회사에 충성하라. 그게 조직의 방식이다…. 회사에 (이미 갖춰진 시스템에) 존경심을 보이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상사에게 무조건 공(功)을 돌리고 복종하라는 것, 상사나 조직에 비판적인 그룹에 속해있다면 당장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것, 그냥 월급쟁이 부속품 노릇을 충실히 하라는 것이 진정한 성공적 회사 생활의 비결일까? 이런 옛 방식으론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기업 존속이 어려울 텐데….
대체로 편협한, 그러면서도 "업무를 위임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라거나,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함정,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함정 등 당연히 알지만 잘 안 되는... 지금 내게 필요한 그런 것 몇 개 건질 게 있는 책이었다. 좋게 말하면 적자생존이란 진화론적 순응(적합한 개체가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생물은 또 적합하고, 그래서 또 살아남는….)의 조언이고, 나쁘게 말하면 창의적 인간성이 사라져 버린 씁쓰레한, 출간 시기만큼 시대에 뒤떨어지는 그런 자기계발서라고 느껴졌다. 음….(빡빡 길 수 없었던 나는 이미 예견된 길을 걸어왔다는 건데... 후회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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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