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하나! 마음 하나!

eunbi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0.1.30
"이 놀라운 조선 천재 화가들"를 보다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에 오랫동안 눈길이 꼽혔다. 보면볼수록 대단한 진경 산수 그림이다.(국보 217호.眞景이란 마음에서 느낀 그대로를 그린 진짜 경치란 의미이다)
이 금강전도를 음양오행으로 해석한 글을 관심있게 본 기억이 있어 찾아보았다.

<1734년, 종이, 수묵담채, 130.7X94.1, 호암미술관 소장>
작고하신 오주석 선생님(1956~2005)의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03, 솔출판사)에 보면 아래 내용이 있으므로 참고 바란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를 하나의 커다란 원형구도로 단순화시켜 표현하였다. 이를 "위대한 단순함"이라고 한다나....원은 우주, 하늘을 나타낸다.
한가운데 있는 것이 만폭동 너럭바위①이다. 그 중심에서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는 봉우리를 연결하면 S자로 휘어진 선 바로 태극太極이 그려진다.
맨 아래에 있는 다리는 장안사 장안교③다. 태극은 장안교 오른쪽에 짙은 선으로 그려진 봉우리인 장경봉에서 처음 크게 휘어져서 한가운데 만폭동을 거치면서 다시 반대로 휘었다가 정상인 비로봉②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로 우리 겨레의 상징인 태극기 그것도 좌우 즉 陰陽으로 나뉜 태극의 형상(左는 낮은 흙산으로 陰이고, 右는 뾰족하게 솟은 돌산으로 陽이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 태극기는 태극이 세워져 있다.)
태극이란 무한한 공간과 시간을 뜻하며, 동시에 혼돈에서 질서로 가는 첫걸음이라고 한다. 음양 자체는 원래 상반된 것이지만 태극으로 맞물리면 서로가 서로를 낳고 의지하며 조화를 이루게 된다.
겸재는 여기에 더하여 일부러 높게보일려고 위쪽에 우뚝 솟아 있는 비로봉②은 陽으로, 아래쪽 만폭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구멍이 뻥 뚫린 무지개 다리 장안교③는 陰을 상징하게 거듭 강조하였다.
그 다음 이번에는 심오한 오행(五行)의 뜻을 심었으니,
<금강전도>의 한가운데 만폭동에선 든든한 너럭바위①[土]를 강조하고,
아래 계곡③에는 넘쳐나는 물[水]을 그렸다.
오른편 한가운데 있는 봉우리④는 촛불[火]인양 휘어졌고,
위쪽 비로봉 아래 가로로 늘어서 있는 꼭대기들은 창검[金]을 꽂은 듯 삼엄하다. 그리고 왼쪽 흙산⑥들은 검푸른 숲[木]으로 덮여 있다.
이런 오행의 배열은 역학에서 말하는 선천先天이 아닌 후천後天의 형상이라고 한다.
정선은 새해를 앞두고 이 <금강전도>를 완성했다. 이것은 오른쪽 위에 적힌 題詩에 그렇게 써 놓았다.
제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만 이천 봉 개골산(겨울 금강산)의 드러난 뼈를
뉘라서 뜻을 써서 그 참 모습 그려내리
뭇 향기는 동해 끝의 해 솟는 나무까지 떠 날리고
쌓인 기운 웅혼하게 온 누리에 서렸구나
암봉은 몇 송이 연꽃인 양 흰빛을 드날리고
반쪽 숲엔 소나무 잣나무가 현묘한 도道의문門을 가렸어라
설령 내 발로 직접 밟아보자 한들 이제 다시 두루 걸어야 할 터
그 어찌 베갯맡에 기대어 (내 그림을) 실컷 봄만 같으리요!
이 제시를 쓴 방식이 절묘하다.
제시를 모두 11행으로 나누어 썼는데, 한가운데 행이 '사이 간間' 한 글자다. 이것은 두 문짝 틈새로 비치는 햇빛이니까 한 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온다는 뜻이 된다.
그 좌우 2행은 두 글자씩, 다시 바깥쪽 4행은 네 글자씩으로 점점 글자수가 늘어나고 있다. 태극의 첫걸음이 1에서 2로, 다시 4로 끝없이 펼쳐져 미래로 뻗어 나간다는 원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겸재 정선은 우주적 질서와 음양의 원리를 빌어 금강산을 또하나의 소우주로 표현하여 온 겨레의 행복한 미래, 평화로운 이상향의 꿈을 기린 것이다.
대단한 해석이다. 이번 기회에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2003, 솔출판사)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은 일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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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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