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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글쓴이
장하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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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별점8.8 (209)
eunbi

2010년 12월. 올해도 망년회로 잦은 회식이다. 엇그제는 오랜만에 각계에 있는 친구들이 모였다.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묻고 한순배의 술이 돌자 이야기는 정치와 경제 등의 시사를 안주로 놓고 서로의 의견과 주장을 나눈다. 역시나 장안의 화제였던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이슈가 된다. 대략 뭐 당연한 '관심'이란다. 전 정권에 여러 이유로 실망한 유권자들이 지금의 정권에게 몰표를 주다시피했는데, 지금의 우리는 '정의'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정부가 등용하고자했던 유력인사들의 인사청문회에서 보게된 도덕적 흠결과 지도층의 부조리, 툭하면 고소 드립, 왠지 과거의 안좋은 기억으로 회귀하는 듯한 통제 등 사회적으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생쑈가 펼쳐지자 누구나 우리네 사회 전반에 오염되어있는 근본을 생각지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대통령 또한 '공정 사회'를 들고 나왔고, 마침 "정의에는 도덕적 미덕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샌델 교수의 저서에 관심이 폭발한게 아닌가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명저라기 보다는 시대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것도 의미가 심장하다. 현재의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한 경제학서가 관심을 받고 읽혀진다는 것은 최근의 화두인 '부자 감세' 등 우리에게 피부로 느껴지는 경제 정의가 '가진자에게 보다 많이 유리'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여진다. 전 정권때 종합부동산세의 '세금 폭탄'에 반발했던 민초들이 이제 공격적 감세정책 이면의 그림자인 '부자 감세'에 다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교수가 워낙 유명하신 분이긴 하지만 그의 논조가 떠오른 것은 전임 대통령 시절이다. 이 분이 장교수의 '쾌도난마 한국경제'을 언급하면서 비서진에게 필독을 권하자 관심이 증폭되었고, 이후 발간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 신봉자인 공병호 박사와의 논쟁으로 이어지면서 장안 지식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가 있다. 먼저 신자유주의 옹호론자들의 논리를 설명한 뒤에 조목조목 그 논리를 논파해버리는 그의 저서는 당시의 공박사 논지를 압도하는 듯 하였는데, 이번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역시 이러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사실 서론에 제시하고 있다. 장교수가 볼 때 자유 시장주의자들, 혹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온 이야기는 잘해야 부분적으로만 맞고, 최악의 경우에는 완전히 틀렸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 시장 이론가들이 '진실'이라고 팔아 온 사실들이 꼭 이기적인 의도에서 만들어 낸 것은 아닐지라도 허술한 추측과 왜곡된 시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며, 자유 시장주의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자본주의에 관한 여러가지 중요한 진실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의 이런 관점은 그를 좌파 경제학자로 매도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좋은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그저 지난 30여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즉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을 뿐"이라고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이 책이 반자본주의 성명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그의 전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국방부에서 '반정부.반미 불온서적'으로 분류한 데 따른 개념 정의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비틀거리는 신자유주에 대한 영양주사가 될 수도 있는 비판을 왜 수용할 수 없는건지 나는 아직 이해가 잘 안된다)


 


책에서 제시하는 23가지 관점 중 마음에 드는 어느 부분부터 읽어도 상관없지만, 첫 장의 제목이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없다."임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시장론자들이 시장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이유를 들어 특정규제의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그 규제를 통해 보호될 권리들을 부정한다는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하는 첫걸음 임을 강조하는 의미를 안다면 그의 경제학적 주장의 밑바탕을 꿰어찬거나 진배없다고 생각한다. 이의 증빙은 '이민 제한 정책'이 아주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부자 감세에 대한 그의 의견은 눈여겨 볼만하다. 부자들의 높은 생산성 덕에 자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부자들이 너무 의기양양하지말라는 그의 경고(55쪽)는 저번 대선 때 공방을 주고 받았던 파이를 먼저 키우느냐, 복지가 우선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다시 한번 제고하게 된다 (당시 난 파이를 키우는데 동의하였었다). 정권이 바뀌고 나는 다시 생각한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도덕성이 땅에 떨어지면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소용이 없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아담스미스가 말한 이기적인 행동이 자본주의 원리란 문구에 박혀 도덕적 행위를 착시현상으로 파악해 버린다면 참으로 허망한 경제사상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이 점에 대해 도덕성은 착시현상이 아니란 그의 설명이 가슴에 들어온다(77~80쪽). 이 부분은 13장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편과 연결하여 읽으면 판단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는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소비가 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스며든다는 '트리클 다운 trikle down' 원리는 설득력이 없다며 '펌프 이론'을 제안했다. 상당한 부(富)가 위에서 밑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복지국가라는 이름의 전기펌프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을 귀담아 둘만하다.


 


이외에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그의 생각,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는 7장,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9장(탈산업 사회라는 환상은 선진국에도 좋지않지만 특히 개발도상국에는 대단히 해롭다),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는 11장(아프리카의 성장실패의 주된 이유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강요한 자유 시장정책에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도 될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는 16장,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는 17장(교육은 소중하지만 경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자칫 잘못읽으면 오해할 주제도 있다. 20장의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는 말은 기회이 균등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만 진정으로 공정하고 효율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바란다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무엇인가? 적어도 최소한의 소득, 교육, 의료혜택 등을 보장함으로써 최소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지 않으면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장과 분배의 문제가 여기서 다시 화두가 된다.


 


어쨌거나 정통적(이렇게 믿고 있다) 경제학을 배운 사람들에겐 뭔가 반론이 필요하지만, 장교수의 설득력있는 분석과 비판에 많이 동화되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만큼 작금의 경제가 주는 승자독식과 패자몰락의 위기, 불안한 경제적 위치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대변하는 힘이 이 책에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개발도상국은 국가가 보호하는 자본주의가 단기적으론 조금 미약할지라도 장기적으론 더 큰 이익을 줄 것이라는 느낌이다. 혹자들이 장교수의 이론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처럼, 그의 주장이 분석은 탁월하나 비현실적인 이상추구형 일련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지금의 자본주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더나은 자본주의'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은 크게 나쁘지 않다고 본다. 정말로 이 책을 읽을수록 "실제로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 지"에 대한 기본 틀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교수를 주류경제학에서 벗어난 좌편향 경제학자로 몰아붙이는 이들도 있는 듯 한데 참 동의하기 힘들다. 거대 선진자본에 국가의 경제가 편입되어버리는 폐해에서 벗어나는 방안으로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지향하자는 논지는 국수적일지언정 좌우이념으로 나눌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다.


 


내가 장교수의 논지에 끌리는 또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1999년 초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UN Global Compact(지구협약이라고도 함) 화두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a human face to the global market(글로벌 시장에서 인간의 얼굴이란 곧 최소 인권은 보장하자는 뜻)'였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시장 자유화, 민영화, 탈규제, 노동의 유연화(이게 무섭다. 비정규직이 대두 되었으니...), 정부개입 최소화 등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큰 흐름인 시점에서 '인간'을 강조한 이유는 그만큼 신자유주의가 '비인간적'이라는 말의 또다른 표현이지 않겠는가. 개인의 이익추구가 공공의 이익으로 작용한다는 자본주의가 '부익부 빈익빈'의 난관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다. 장교수의 자본주의에 대한 해석도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책이 히트치고 있는데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 책들은 굵직한 주제를 다룬 것들은 읽기 쉽지 않고, 가벼운 주제를 다룬 것들은 깊이가 얕거나 일방적으로 자유시장을 선전하는 내용인 데 비해, 내 책은 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맞다. 참 쉽게 경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끄는 그의 필력에 완전히 공감한다. 한해를 보내는 12월. 장교수의 논지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대단한 이슈의 책을 손에 잡아보았다는 느낌을 남기면서 책을 덮는다. 결국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과잉이 이런 책의 설득력을 받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반격이 참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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