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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 작성일
- 2023.10.30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 글쓴이
- 10·29 이태원참사 작가기록단 저
창비
올해 들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것을 처음 보는 것 같을만큼 이번주 주말엔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고 여기저기서 지역 축제가 열린다. 사실 맞다, 지금은 도심 속 축제뿐만 아니라 숲으로 바다로 가도 좋을 맑고 선선한 가을날이기 때문이다.
그 날도 그랬을 뿐이다.
누군가는 아침부터 건강하게 등산을 즐기고 누군가는 집에 틀어박혀 포근한 집콕을 즐기는 것처럼, 우리는 이 좋은 날을 즐기기 위해 축제를 택했을 뿐이다. 할로윈과 이태원을 선택한 것이 잘못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정말 괜찮아졌다.
이 사진을 꺼내본 것이 그 증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늘 사진을 꺼내볼 생각은 하지 못했고 이 사진들은 영원히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기억으로 묻어둘 줄 알았다.
사고 직후엔 다시 사진을 볼 엄두도 나지 않았고
누군가 할로윈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을 보면서 환멸을 느꼈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들 SNS에는 애도를 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기도 했다.
내 아픔을 보듬어줄 내 친구, 내가 힘을 얻었던 아티스트들, 그리고 익명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았다.
확실히 나는 그 때에 큰 상처를 입었던 거다.
조금 늦었지만 상처를 알아차리고 여러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빌려 나는 지금까지도 잘 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고통과 슬픔에 잠겨 몸을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고,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나도 그랬기 때문에 모두 이해한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를 수밖에 없다. 슬픔은 특히 더 그렇다. 질투라는 말은 있어도 당사자보다 슬픔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는 없지 않나. 왜 살아있음에도, 더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음에도 이토록 함께 슬퍼하고 힘들어하는지,..
그 대신 나는 최근에 본 문어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 싶다.
문어가 돌 사이에 숨었음에도 돌 틈으로 머리를 들이민 상어에게 다리를 물어뜯기고 하얗게 질려서는 굴 속으로 아주 천천히 힘없이 이동하고서 몇날며칠을 웅크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 다리는 다름아닌 문어의 뇌 역할을 하는 수많은 다리 중에서도 2/3가량의 일을 하는 오른쪽 앞다리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죽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매일같이 와서 들여다보기 몇주쯤 끝에 문어가 기운을 차렸다. 놀랍게도 손톱만큼 아주 작은 미니 다리가 자라고 있었고, 작은 다리로도 다리 구색을 하며 사냥을 하고 기어도 다녔다. 그 다리는 한 달이 지나니 상처를 알아볼 수도 없을만큼 멀쩡하게 자랐고, 그 문어는 이후로도 수없이 많은 공격에도 살아남아 알을 모두 부화시키고는 죽었다고 한다. 인간보다 훨씬 유약한 동물이 위험이 득실이는 곳에서도 끝내 잡아먹히지 않고 제 명을 다 하고 스스로 희생해서 죽은 것이다.
나는 이 문어가 웬만한 강아지보다 지능이 높아 사람과 교감이 가능하다는 점보다도
몸이 뜯겨나가고서 하얗게 질려 몇 주를 먹지도 않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던 시간에 크게 감동했다.
상처에는 웅크릴 용기가 필요하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면 좋겠지만 죽은듯이 며칠을 웅크리고 있는 게 당연하다는듯 멋지게 살아남아 숭고한 죽음을 선택했다. 1년여의 짧은 생이고, 알을 부화시키기까지 굶어죽는 어미문어가 안타까웠지만 이 말랑한 동물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무일도 없이 명이 다할때까지 산다면 좋겠지만 크고작은 사고는 사람을 가리지 않기에,
멀리 보이는 타인의 상처도, 하찮게 보여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상처도 알아차리고
멋지게 웅크리자, 당연하다는듯 살아남기 위해서.
문어처럼, 우리도 말랑하지만 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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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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