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Bright
  1. 읽고 쓰기

이미지

도서명 표기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글쓴이
하인리히 뵐 저
민음사
평균
별점9.1 (163)
Bright

 민음사 버전에서 넣어준 '10년 후 저자인 하인리히 뵐의 후기'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언론의 폭력에 대한 소설이다. 이번에도 2010년에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언론의 폭력과 비열함에 대해 역시 생각하며 이 작품을 읽을 수 있었는데, 대신 그 행태를 몇 가지로 쪼개어 읽었다.

 첫째로, 사실에 대한 왜곡이다. 가장 큰 문제이고 소설에서도 가장 비중있게 다루는 문제이다.
 "그는 다음 면을 읽고, <차이퉁>지가 카타리나는 영리하고 이성적이라는 자신의 표현에서 '얼음처럼 차고 계산적이다'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범죄성에 대한 일반적인 입장을 표명한 말에서는 그녀가 '전적으로 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라는 말을 만들어 냈음을 알게 되었다."(p. 38)
 공식적인 수사기록에서 묘사한 내용을 자극적이고 '잘 팔리게끔' 부정적으로 포장하여 보도하는 행태가 잘 드러나있다.

 둘째로, 대중을 선동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을 일부러 사용하는 경우다. 우리나라에서도 언론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세력에 대해 교묘하게 대중들이 그들을 비난하게끔 선동하곤 한다. 특히 정치적 입장을 '빨갱이' 등으로 직접적으로 폄훼, 매도한다거나 높은 수준의 경제적 지위를 부도덕한 것으로 은근히 조장하곤 한다. 이 소설에서도 그 행태가 나온다.
" 마지막으로 정원 풀장에 있는 블로르나와 투르데를 찍은 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 아래 설명은 다음과 같다. '한때 빨갱이 트루데로 알려졌던 이 여자와 이따금 좌파로 통하는 그녀의 남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호화 빌라의 수영장 앞에서 부인 트루데와 함께 포즈를 취한, 고소득의 산업체 변호사 블로르나 박사." (p. 45)
 
 세 번째로는 공식적인 기관의 조사내용을 빼내어 공개하는 행태이다. 또한 사건과 별개의 (별개로 추정되는) 사생활의 일부분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개한다.
 그 사이 그녀는, 심문이 왜 삶의 세세한 구석까지 파고드는지 잘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 심문이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쯤은 아주 잘 알게 되었노라고 했다. 하지만 심문할 때 거론된 세세한 사항-신사의 방문 같은 문제-들을 어떻게 <차이퉁>이 알게 되었는지, 게다가 어떻게 하나같이 왜곡되고 오도된 진술로 알게 되었는지 그녀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p. 62)
 고 노무현 대통령 조사당시 검찰과 언론이 짜고서 수사과정을 계속 보도했던 때가 생각난다. 밝혀지지도 않은 내용까지 루머를 곁들여가며 연일 발표하던 검사들의 모습과 그것을 신나게 받아적고 확대 재생산 하던 언론들의 모습은 악마적이었다. 그때 확산시켰던 루머들은 아직까지도 순진한 사람들에게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 끔찍하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슈트로입레더라는 인물은 명망가이자 권력자이다. 그는 자신의 추문을 감추기 위해 언론을 이용하고 이 과정에서 약자인 카타리나는 더욱 처참하게 망가진다. 언론은 권력자를 보호하기 위해 약자를 망가뜨리는 부역자 노릇을 한다.
"그녀는 어느 명망 높은 학자이자 사업가의 우정 어린 신뢰와 자발적으로 도와주려는 마음을 악용했다. 그 사이 본지에 거의 확고히 입증된 정보들이 제보되고 있다. 그녀가 신사 방문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별장을 찾아내기 위해 청하지 않은 숙녀 방문을 했다는 것이다. ..." (p. 118)

 언론의 왜곡으로 인하여 인간 사이의 믿음이 무너지고 불신이 싹트는 모습도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비단 언론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인간관계에서도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도 외부의 사람이 이간질하기 시작하면 친밀한 사이가 깨지기 쉬운데, 언론은 허울뿐인 공정보도라는 이름으로 평범한 인간 사이를 이간질 시킨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제 <차이퉁>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블로르나가 이혼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것은 아무 근거도 없는, 정말 전혀 사실이 아닌 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 소문이 부부 사이에 모종의 불신의 씨앗을 뿌렸다."(p. 126) 

 끝으로, 정말 우습고 모순적이었던 장면은 언론들이 자신들의 저열하고 비겁한 보도행태에 대한 반성은 없이 자신들에 대한 공격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명예훼손을 하거나 사실왜곡을 하여 피해를 입힐 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보도로 사과보도를 하고 자신들에 대한 공격에는 발끈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대응하는 모습이다. 책임은 없고 권력만 누리려는 행태인데 소설의 초반부에 이를 잘 묘사한 대목이 눈에 띈다. 
  "… <차이퉁>지는 자사 기자들에게 일어난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알려지자 상당히 유별난 태도를 취했다. 광적인 흥분! 대서특필. 1면 기사. 호외 발행. 통례를 벗어난 크기의 부고. 어차피 피살 사건이란 늘상 일어나는 것인데도, 마치 저널리스트 살인 사건은 뭔가 특별한 것인 양, 은행장이나 은행원 혹은 은행 강도 살인 사건보다 더 중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언론의 과잉 반응에 대하여 언급해야겠다. <차이퉁>지 뿐만 아니라 다른 신문들까지도 실제로 한 저널리스트의 피살 사건을 특별히 더 나쁜, 특히 경악스럽고, 거의 장엄하기까지한, 그러니까 종교 의식적인 살해와 같은 수준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 (p. 6)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두 번째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저자는 언론의 폭력에 중점을 두어 이 소설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언론의 폭력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언론에게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진다. 수사기관, 언론, 이웃 …, 즉 사회 전체가 여성을 둘러싸고 자행하는 폭력은 추접스럽다. 그 폭력의 방식은 주로 성적인 공격이며 여성에게 가해진 편견을 덧씌우고 확인하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관점으로 이 소설을 다시 보니 떠오른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일명 '신정아 사건'으로 동국대 교수였던 신정아씨가 학력위조로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다. 이때 언론의 포커스는 학력위조에 맞춰져있지 않았고 신정아와 권력을 가진 남성들간에 성스캔들에 맞춰져 있었다. 그녀를 비난하면서도 그녀의 매력에 집중했고 나중에는 그 매력까지도 갈기갈기 찢어놓는 식이었다. 매일매일 자극적인 내용이 새롭게 보도되었고 심지어 그녀의 누드사진이 여과도 없이 신문지상에 보도되기도 했었다. 신정아 본인도 이런 시선을 이용했다는 평가가 많지만, 그에 앞서 당시 언론들이 한 여성에게 가한 온갖 지저분한 보도가 더 문제였다.
  "그러나 전화기에서 흘러나온 것은 괴텐의 음성이 아니라 '섬뜩할 정도로 낮은' 남자의 목소리로, '거의 속삭이듯이' 그녀에게 '추잡한 얘기'를 지껄여 댔다는 것이었다. 불쾌했던 것, 아니 가장 불쾌했던 것은, 그자가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고 밝히면서, 그녀가 그리도 다정함을 원할 때 왜 그렇게 멀리서만 남자를 찾느냐며 그는 이미 그녀에게 모든, 모든 종류의 다정함을..."(p. 78)
" … 그러니까 매혹적일 정도로 태연스레 싱크대에 기대서 있는 카타리나에게 바이츠메네가 물었다고 한다. '그자가 너랑 붙어먹었지?' 그러자 카타리나는 낯을 붉히면서도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아니요, 나라면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 않을 겁니다.' …"(p. 21)
 "그녀가 슈트로입레더같은 사람을, 그러니까 부유할 뿐만 아니라 정계나 재계, 학계에서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 때문에 영화배우만큼 유명한 사람을 거부한다고 하면, 누가 그녀의 말을 믿어주겠는가?..."(p. 112)

 결정적으로 왜곡보도를 자행했던 기자가 죽는 장면에서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모욕이 등장한다. 기자는 "섹스나 한 탕 하는 게 어떨까?" 라고 말한다. 저 말 때문에 카타리나 블룸에게 죽게된 것은 아니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울면서 빌어도 모자랄 판에 매를 버는 구나.' 하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역자의 해설처럼 이 장면은 "카타리나는 잃어버린 명예를 보상받고자 기자를 살해하고 자수한다. 언론에 의해 한 개인의 명예가 생매장되고 결국 그것이 언론사 기자의 피살로 이어지는 폭력의 악순환을 보여 주는 장면" (p. 162)이다. 그래서 매우 비극적인 장면인데 카타리나의 '어디 한탕 해보시지, 이판사판이니까.' 라는 대사와 마구 쏘아댄 총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가슴을 통쾌하게 만들었다.
 "어이, 귀여운 블룸양, 이제 우리 둘이 뭐하지? 라고요. 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거실로 물러나며 피했지요. 그는 나를 따라 들어와서는 말했어요. '왜 날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거지? 나의 귀여운 블룸양, 우리 일단 섹스나 한탕 하는 게 어떨까?" 그사이 내 손은 핸드백에 가 있었고 그는 내 옷에 스칠 정도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난 생각했어요.' 어디 한탕 해 보시지, 이판사판이니까.'라고요. 그러고는 권총을 빼 들고 그 자리에서 그를 향해 쏘았습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정확히 몇 발인지는 모르겠습니다."(p.140)

 이 소설의 작가인 하인리히 뵐은 실제 독일의 한 신문인 <빌트>지를 저격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소설의 초두에 "<빌트>지와 유사한 면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라고 말한 것은 역으로 <빌트>지를 상대로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나 진배없다. 이런 우아한 방식으로 언론사를 비판했다는 점이 놀라웠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언론으로부터 겪을 수 있는 피해를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다. 소설의 주인공인 카타리나 블룸은 우리네처럼 매우 평범한 인간이었고 그녀의 일상과 고초는 무척 리얼했다. 이 소설은 1975년도 독일에서 나온 소설이다. 그동안 독일 언론이 얼마나 공정보도를 위해 발전했는지 잘은 모르겠으나, 1975년도의 독일언론보다 우리나라의 언론이 더 못한 것 같아서 읽으면서 솔직히 부끄러웠다. 하루 빨리 우리 사회에서 이 소설이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라 박물관의 유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 블로그에 놀러오세요 http://blog.naver.com/elegans_lilly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Bright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17.9.22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17.9.22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17.9.22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17.9.22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17.9.22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17.9.22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사락공식공식계정
    작성일
    2025.6.17
    좋아요
    댓글
    9
    작성일
    2025.6.1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6.17
    좋아요
    댓글
    5
    작성일
    2025.6.1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6.19
    좋아요
    댓글
    102
    작성일
    2025.6.19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