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깃꿈
- 작성일
- 2008.12.22
영웅본색 2
- 감독
- 오우삼
- 제작 / 장르
- 홍콩
- 개봉일
- 1988년 7월 22일
흔히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영웅본색> 은 무지막지한 액션영화가 아니다. 주윤발이 주인공인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서로 다른 길을 가던 두 형제가 지지고 볶다가 화해를 하게 된다는 진지한 드라마고 주윤발은 그들 주위를 맴도는 조연에 불과하다. 초반과 후반부를 제외하면 변변한 액션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웅본색> 을 주윤발의 액션 영화로 오인하게 만드는 건 오우삼의 액션 연출이 절묘했기 때문이다. 오우삼은 샘 페킨파의 고속촬영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형하고 확장한다. 페킨파의 고속촬영이 인물과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장치였다면 <영웅본색> 에서 오우삼은 그것과는 다르게 좀 더 액션자체에 집중한다. 감정이 최고조에 오르고 촬영과 편집을 극도로 과장하면서 순간에 집착하는 액션의 파괴력은 상상이상의 효과를 불러온다.
<영웅본색2> 가 전 편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더 강해야 한다는 속 편의 전략과도 맞아떨어진다. 전 편의 예상치 못한 성공에 자극받은 제작자 서극은 절대 속 편은 만들지 않겠다는 오우삼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급히 속 편 제작에 착수한다. 오우삼은 <영웅본색> 을 발판으로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그전까지 평범한 무협영화와 코미디 영화를 만들었던 그에게 마땅히 속 편을 거부할 수 있는 명분과 실리는 적었을 것이다. 왜냐면 <영웅본색> 의 성공은 서극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 서극은 홍콩 영화계의 실력자였고 오우삼은 골든 하베스트에서 주문하는 B급 코미디와 액션 영화를 단기간에 만들어내는 생계형 직업 감독에 불과했다.
오우삼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영웅본색> 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도 있었다. 서극의 영향 아래 있던 <천녀유혼> 의 정소동을 무술감독으로 참여시킨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이후 오우삼과 서극, 정소동이 합작한 <첩혈쌍웅> 이 <영웅본색> 으로 시작된 홍콩 누아르를 좀 더 확장하면서 완결짓는 영화였다는 점에서 <영웅본색2> 가 오우삼의 영화이면서 동시에 서극의 프로듀싱과 정소동의 액션 연출이 이상적으로 발휘된 영화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런 한계에도 결과적으로 <영웅본색2> 는 좀 더 자신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오우삼에게나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에게도 중요한 영화다. 자신에 의해 발견된 홍콩 누아르라는 장르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이면서 좀 더 오우삼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출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우삼이 <영웅본색2> 를 건너뛰고 <첩혈쌍웅> 이나 <첩혈가두> 를 먼저 만들었다면 조금은 난데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영웅본색2> 는 <영웅본색> 과 <첩혈쌍웅> 의 조금 다른 지점을 이어주는 가교로 나무랄 데 없다.



영화의 이야기는 별게 없다. 급하게 만들어진 속 편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여전히 오우삼의 각본은 평균에도 못 미친다. 전 편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송자호 (적룡) 와 송자걸 (장국영) 형제가 주인공이지만 갈등이 사라진 형제애는 낯간지럽고 용선생 (석천) 과 켄 (주윤발) 은 애초 닭살스런 형제애가 없었다면 등장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인물들이다. 한 마디로 드라마는 개연성이 없고 감정은 질질 늘어진다. 그러나 <영웅본색2> 는 그런 사소한 것 (?) 이 문제가 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비현실적일 정도의 인물들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영웅본색2> 를 더욱 비극적인 신화의 세계로 만든다. 전 편에서 처참하게 죽은 소마를 부활시키는 것도 그런 맥락에 가깝다.
<영웅본색> 시리즈에서 모두 주윤발이 연기하는 소마와 켄은 굳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주변 인물에 가깝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되면서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속해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켄과 소마는 일란성 쌍둥이라는 혈연일 뿐 아니라 의리와 예를 목숨처럼 신봉한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같은 사람이다. 그들의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감정의 교류다. 그것은 좀 더 냉정한 세상의 가치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래서 별다른 연고도 없는 켄이 용선생과 송씨 형제들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하면서 끈끈한 동질감을 확인하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최후의 싸움에 뛰어드는 것은 무엇을 따질 겨를도 없이 당연해진다.
강호의 의리는 땅에 떨어졌고 세상은 배신자들이 득세하면서 미쳐 돌아간다.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 영화 속 인물들은 아무도 존중하지 않는 가치를 지키려하지만 그럴수록 세상의 바깥으로 쫓겨난다. 세상을 구원하기는커녕 쓸쓸해 사라지는 영웅의 판타지는 역설적으로 영웅이 사라진 시대에 신화가 되기에 충분하다. 총에 맞아 구멍 난 소마의 외투를 입은 채로 장난스럽게 총을 난사하는 켄은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소마의 매력을 고스란히 가지고 온다는 점에서 신화의 연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소마의 유품을 뒤적이다 켄이 쌍둥이 동생이란 걸 발견하게 되고 그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설처럼 소개되는 장면이 초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단순히 속 편을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만은 아닌 것이다.
여기에 일본 사무라이 영화와 프랑스의 갱영화, 웨스턴과 무협영화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지면서 <영웅본색2> 는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독특한 감수성의 영화가 된다. 오우삼의 영화가 세상의 모든 영화를 불러오는 아류이면서 쉽사리 카피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도 오리지널을 무색하게 만드는 복합장르와 정서적인 교류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서일 것이다. 오우삼을 흉내 낸 수많은 영화들을 보라. 발끝에도 못 미친다. 안면몰수하고 끝까지 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정 <영웅본색2> 가 걸작 (이자 오우삼이 대단한 감독) 인 이유는 그래서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