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freedhot77
  1. 에세이

이미지

도서명 표기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글쓴이
파스칼 브뤼크네르 저
인플루엔셜
평균
별점8.9 (32)
freedhot77



 



펜데믹 이후,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집 밖의 세상이 삶을 위협하는 것 같아 집 밖을 나서는 것이 두렵게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집 안에서 많은 것을 해결하려는 발버둥이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 되어 가고 있으며, 함께 해야할 사람들간의 관계에도 보이지 않는 차단막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전염병 코로나19의 심각성으로 강제적인 거리두기가 이행되었고, 전염병이 감기 바이러스로 자리잡아가면서 거리두기가 해제 되었음에도, 거리두기 차단막은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거리두기가 이행되는 동안, 차단된 삶에 이미 익숙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자발적으로 자유를 속박하고, 자발적인 칩거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인 집이라는 작은 세상에서 안정감을 느끼려고 합니다. 작은 세상은 세상으로부터 차단된 동굴과도 같고, 그 동굴 속에선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발적인 칩거는 선택이 되었고 그 선택은 보편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개개인의 안정은 보장되었지만, 이러한 자발적 자유박탈은 무기력을 선사해줍니다. 똑같이 돌아가는 일상이 그저 무료해진. 이로 인해서 삶을 살아가는 참 가치도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을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채. 우리의 영혼과 교감하지 않는, 인간적인 따뜻한 감성마저 상실할 수도 있는 지금에 위기감을 느껴야만 합니다.



 



세상 밖에 아무리 위험해도, 세상에 맞서서 도전하며, 모험을 즐기려는 의지를 꺾어선 안된다고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말합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현명함이 아니라 가벼운 광기요, 영적인 치료제가 아니라 짜릿한 도취다"라는 책의 글귀가 너무나 와닿습니다.



 



전염병, 이상기후, 자연재해, 다양한 중범죄, 전쟁 등, 평화로운 일상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증가했으며, 여기서 우리를 보호하고픈 본능이 발동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동굴같이 아늑한 공간에서 손바닥의 작은 화면으로 세상이 너무나 위험하다는 이야길 자주 듣게 됩니다. 바깥 세상이 위헙하고 가짜 투성이가 많으니, 이불 안에 꽁꽁 숨어 있으라고 부추깁니다.



 



어느순간 "안"의 세상이 진짜이고, "밖"의 세상은 가짜투성이라 믿으며 환상과 허상에 기대어, 몸과 마음을 보호합니다. 직접 경험을 줄이고 간접 경험에 의존하게 됩니다. 삶의 참 가치를 몸소 느껴볼 시간을 줄여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혼을 잃어가고 감성을 잃어가는 위험에 빠져들고 있음으로, 이 책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게 됩니다. 



 



 



>> 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내용



 



이 책의 구성은 아주 단조롭습니다. 그러나 진짜 삶을 구분할 수 있도록 철학적으로 이야기를 푼, 철학 에세이라고 보면 됩니다. 편안한 느낌의 제목만 보고 가볍게 덤볐다가 "진짜 삶을 찾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우리가 바깥 세상이 전하는 위협에, 우리 자신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집 안에만 머물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각 챕터별 제목과 제목에 따른 간단한 메시지 강렬하게 와닿습니다. 다양한 철학자들의 메시지와 문학의 내용을 잘 버무려서 적어 내려간, 진짜 삶을 찾아가야하는 이유가 이 책에 잘 담겨져 있습니다. 



 





 



 방 ㅣ 괄호가 쳐진 (세상)



집은 허무, 어둠, 모호한 근원의 공포를 막아주는 유일한 방벽이다. 인류의 자유는 안정과  내향을 통해 활짝 피어나며 개방과 무한을 통해서는 결코 그리되지 못한다 - 이마누엘 칸트



 



불안정한 시대를 살았던 칸트의 "집"에 대한 철학적 감성을 담은 메시지를 담겼습니다. 허나 지나친 안정이 무기력과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어요. 



 







 



여행 ㅣ 자기 방을 떠나지 않으려는 사람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기 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그렇기 때문에 고독의 기쁨이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블레즈 파스칼



 



블레즈 파스칼은 고독의 기쁨을 누려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방에 가만히 있으면서 말이죠. 아무래도 그가 살았던 시대는 시끄러웠나 봅니다. 진짜 자신과 마주하려면 조용한 곳에서 오로지 자신을 느낄 필요는 있어요. 허나, 지나치게 세상과 차단되어버리면, 무기력과 권태의 위협과 가까워질 수 도 있다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과 교감해야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알게됩니다. 진짜 삶과 마주하지 않으면, 기계 못지 않는 영혼없는 삶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걸, 꼭 기억해야 합니다.



 



 





 



잠 ㅣ  침대 위에서 보내는 절반의 인생



 



우리는 침대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내고 나머지 절반에서 겪은 슬픔도 잊는다-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잠이 휴식이 목적이 아니라 도피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피만 하다보면 삶은 무의미하고, 삶이 무의미하면 허무에 빠져들기 십상입니다. 잠은 휴식이자, 세상의 연결을 위한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잠을 위해 잠을 잔다는 것은 궁극의 허무를 경험하는 일이다. 잠에서 깨면 다시 세상과 수천 가닥의 끈으로 연결된다. 기운차게 일어나고 식욕을 느끼면서 경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잠의 세계에도 기강이 필요하다. 분주한 일과를 잠시 중단하고 뇌를 재충전하는 낮잠의 복권이 이루어져야 한다.(p. 130)"



 



 



>> 마음에 와닿는 글귀들



 



p. 59 스마트폰은 세상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든다. 스마트폰은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의 예상 범위를 언제나 뛰어 넘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인 광장에서, 우리는 이동을 하지 않고도 다른 대륙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p. 63 스마트폰은 이제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디지털 시대는 산만함의 승리와 주의력의 몰락으로 대변된다.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고 매 순간 새로운 만족을 추구한다. 광적인 스마트폰 사용은 경험의 빈곤과 다르지 않다. (중략) 타인과의 소통 도구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호를 방해하거나 관계에 공백을 만든다.



 



p. 73-74 과거에는 삶에 방향성이 있었다. 길지 않은 삶을 사는 동안 영혼의 구원에 집착했고, 그러기 위해 원죄를 대속해야만 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미지의 축복 혹은 혐오로 통하는 문이었다. (중략) 이제 미리 정해진 삶의 방향은 없다.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그러므로 삶은 즉흥이 될 수도 있고, 반복이 될 수도 있으며, 밑도 끝도 없는 염불로 제한될 수도 있다.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진부함이라는 시대병이 탄생한다. 지부함은 마치 흠집 난 디스크처럼 끝까지 돌지 못하고 계속 같은 자리에서 튄다.



 



p. 105-106 고행자, 독방 생활자, 은둔자가 가장 먼지 지분한 일상에 짓눌려 나가떨어지기 쉽다. 진부한 일상은 얼핏 상반된 듯 보이는 두 가지 현상이 하나로 합쳐진 형태로 나타난다. 한없이 권태로우면서도 부산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수도사는 미사, 찬양, 무릎 끓기 등 광적으로 의례를 챙긴다. 수도사의 삶은 침묵하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이기 때문에 더욱더 좌절이나 공동 생활의 무기력에 노출되지 쉽다. 그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 신과의 직접적 관계가 끊어진 수도사의 흉흉한 모습이 그점을 확인해 준다.



 



p. 109 (중략) 집은 사색의 토대가 되는 곳이다. 하늘과 땅, 높은 곳과 낮은 곳의 대립은 내 공간과 남들의 공간이 대립으로 바뀌었다. 이제 내 방, 내 집이라는 자그마한 고국을 토대로 삼지 않고는 내 세상에 대하여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을 회피하는 것과 세상에 괄호를 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방에 틀어박히는 것은 바깥세상을 저버리기 위함이 아니요, 다시 돌아가기 위해 그 세상을 잠시 유예 상태에 두는 것이다. 집이 감방이 되어버리면 현실에 열정을 쏟을 신체는 점점 죽어간다. 그런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요, 일종의 방공호이며 요새화된 수용소일 뿐이다.



 



p. 117-118 집에 나혼자 뿐이고 찾아오는 이도 없다면 성스러운 장소가 감옥이 되는 건 시간 문제이다. 나는 모든 구석에서 나 자신과 부딪힌다. 더 이상 "밖"이 없다면 "안"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안팎이 없는 닫힌 장소가 될 뿐이다. 세상의 거대한 빛, 불시의 아름다움이 끊임없는 왕래를 통하여 삶의 의미를 더해주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p. 118-119 집이든 방이 밖으로 열려 있을 때만 폐의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래야만 더욱 확장되고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문과 창이 꽁꽁 닫혀 있으면 폐는 위축되고 탁해 빠진 실내 공기만 들이마시게 된다. (중략) 삶이란 떠날 때나 돌아올 때나 거치기 마련인 문지방에서 사는 것과 같다. 방과 집이 동네로, 거리로, 주위의 들판으로 통해 있을 때만 자기 확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방과 집은 자기가 아닌 것, 새로운 운명과 맞닿은 언저리를 향하여 열려 있는 귀가 된다.



 



p. 127-128 잠은 규칙적으로 심연으로 내려가는 행위다. 죽음은 존재를 삼켜버리지만, 잠이라는 작은 죽음은 존재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효율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중이다.



 



p. 130 잠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이유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힘을 되찾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피곤하다 못해 탈진했음에도 자기를 잊고 확 풀어지지 못하는 것이 불면증이다.



 



p. 131 기상은 평정심이 공포를 이겨낸 결과이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힘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쓰러진 자들이었으나 다시 산 자가 되었다. 노여움은 가라앉고 원한은 지워졌다. 우리의 피로를 몰아내리라.



 



p. 145 인터넷은 추상적 인간과 구체적 시민, 인류와 다양한 인간상 사이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터넷이 세상을 구원하고, 인류의 문화유산을 만인에게 전하며, 관용과 연대를 도모할 것이라는 믿음은 새로운 폐쇄성이 확인됨으로써 무참히 부서졌다. 네트워크 사용자들은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파벌, 소속, 집단, 특정한 공통점에 근거해 끼리끼리 모인다. 언뜻 보기에 나라는 일개 인간이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된 것 같지만 실상은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 딱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른다. 이 시스템 안에는 나를 닮은 타자들밖에 없다.



 



p. 148-149 사람들은 차분하게 집에만 머물게 하는 "고인 물" 사회에는 "고인 물" 상태의 신체들이 필요하다. 우리의 뇌를 강탈하려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잘된 일이다. 화면이 보여주는 것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눈요기"에 불과하다. 화면은 무엇을 금지하거나 명령하지 않지만 자신이 아닌 모든 것을 쓸모없게 만든다. 화면은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의 주의력을 앗아간다. 이러한 점에서 팬데믹 이후 문명의 상징은 로켓이나 초고층 빌딩이나 원자로가 아니라 좀 더 소박한 사물, 이를테면 전원과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안락의자가 될 것이다.



 



p. 151-152 동영상 소비가 더 늘어난다는 것은 자율성을 점차 잃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영상물은 일상을 말소리와 소음과 색채로 채워주는 진정제가 된다. 합성 음성으로나마 싹싹하게 말을 걸어주는 스마트 기기들은 또 어떤가. 청소기, 밥솥, 커피메이커 등 고급 가전제품은 늘 우리를 염탐하며 친한 적을 해낸다.



 



p. 153 증강현실 장비를 이용할 때는 줄거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영화나 연극을 볼 때는 신체적으로 줄거리 밖에 위치한다. 웹이 유일한 "밖"이고 물리적 세계는 이제 잉여물 혹은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세계에 있지만 정마로 그 세계를 살지는 않는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 데도 없다.



 



p. 160-161 인생의 즐거움은 충동적 모험에서 가상 체험으로 대체될 것이요, 그러한 즐거움은 소파나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갈 때나 잠시 중단될 것이다. 이동이라고 해봤자 주방에서 거실로 가기, 혹은 거실에서 주방으로 가기 정도이려나. 장애물도 없고 밖으로 나가는 위험을 무릎쓰지도 않는 자유는 자유의 모조품에 불과하다. 카메라 조리개가 세상이라는 대극장을 삼켜버리는 날이 오려나? 옛날에는 사새활이 밖을 필요로 했다. 당시의 사생활은 불완전했지만 그래서 좋았다. 인터넷이 떠받치는 지금의 사생활은 유아론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취해 있고 애꿏은 그림자들은 진짜라고 착각한다.



 



p. 181 날씨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최소한의 모험이다. 날씨의 매력은 만화경과도 같은 불규칙성과 가변성에 있다. 날씨는 우리의 감성을 날카롭게 벼려준다. 살아있다는 의식은 더위에서 추위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코스모스"개념, 자연의 원소들과 사람의 마음 사이의 연대, 더 큰 전체의 일부라는 소속감을 원하기 때문에 더욱 그리음에 젖어 교감을 추구한다.



 



>>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freedhot77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5.1.14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1.14
  2. 작성일
    2025.1.14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1.14
  3. 작성일
    2024.12.9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4.12.9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19
    좋아요
    댓글
    157
    작성일
    2025.5.19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20
    좋아요
    댓글
    211
    작성일
    2025.5.20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21
    좋아요
    댓글
    89
    작성일
    2025.5.21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