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문학전집류

책찾사
- 작성일
- 2018.7.25
19호실로 가다
- 글쓴이
- 도리스 레싱 저
문예출판사
[다섯째 아이]와 [그랜드 마더스]라는 작품으로 만나본 도리스 레싱이 오늘날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문학이 페미니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그녀가 2007년 노벨 문학상 수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작품이 페미니즘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황금 노트북]이었다는 점만 놓고 본다면 그러한 생각이 결코 지나친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읽었던 작품에서 [그랜드 마더스]가 아마도 여성들의 사랑과 심리를 묘사한 부분이 있기에 그나마 레싱의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겠지만, 그녀의 단편집 [19호실로 가다]는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성(性)을 소재로 갈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수 있게 된다.
도리스 레싱의 페미니즘적인 성향에 초점을 맞춘다면 첫번째로 등장하는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라는 작품은 여성의 관점 변화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자신의 무능함을 여성과의 잠자리를 통하여 해소하려는 남자와 그 남자의 목표 대상이 되는 한 여자의 이야기는 사실 불편한 느낌이 든다. 결국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상투적이면서도 전형적인 가부장적 체제에 대한 상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에 대한 사랑 또는 강한 압박에 대한 굴복이 아닌 단지 귀찮고 피곤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남자와 잠자리를 하였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다음날 여자는 그러한 남자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일에 의욕적으로 매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여성관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는 여전히 잠자리를 통하여 여자를 정복하였다는 과거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여자는 그러한 남자와의 잠자리보다는 일을 하는 것에 더욱 큰 가치를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의 의식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품은 바로 [남자와 남자 사이]이다. 평생 여러 남자들의 정부 역할을 하면서 살아온 여자와 남자와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한 여자의 대화는 언뜻 보기에는 남자에 기대어 살아가는 무능한 모습처럼 다가온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과거와 같이 남자들의 정부 역할을 하거나 결혼을 통하여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음을 한탄하는 두 여자의 모습은 도리스 레싱의 페미니즘과는 왠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어찌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내용이 아닌가라는 놀라움마저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도리스 레싱이 페미니즘을 주장하면서도 페미니즘이 남성들에 대한 모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발언을 떠올린다면 이 작품은 그러한 그녀의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과거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더불어 이 여성들이 앞으로 스스로 자립하기 위한 건설적인 생각에 다다르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레싱이 여성 스스로의 의식 변화를 통한 페미니즘 추구를 말하고자 한 것이라 보여진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19호실로 가다]는 가부장제 체제에서 자신의 의미를 잃어가는 무력감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여성의 모습을 통하여 페미니즘에 대한 필요성과 그 의미를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선을 끌고 있다.
사랑조차 삶의 중심이 아니라면, 무엇이 중심이 될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의 훌륭한 인생은 분명 사랑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두 사람의 인생은 확실히 훌륭했다.
- p. 280 ~ 281 中에서 -
사랑에 대한 강조를 통하여 하나로 이어진 남녀의 결혼생활은 처음에는 훌륭해 보였다. 심지어 결혼하여 가정을 꾸민 상황에서도 "다른 것은 모두 이것을 위해서."라는 말은 수전으로 하여금 가정에 충실할 수 밖에 없게끔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랑이 전형적인 가부장제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변질되면서 수전은 가정의 중심에서 자기만의 삶이 있는 여성으로 서서히 해방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수전의 해방은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의미와 자유를 만끽하는 소소한 시간을 가짐으로써 이뤄진다. 그러나, 그녀만의 그 소소한 시간은 가부장제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것임을 곧 깨닫게 된다. 남편은 수전을 의심하여 그녀가 머무는 그 호텔에 대한 뒷조사를 하면서 수전을 압박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수전에게 그 싸구려 호텔의 19호실은 평범한 익명의 장소였고, "내가 있는 곳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완전히 혼자 있고 싶어서요."라는 그녀의 말마따나 그녀가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었기에 남편의 그러한 의심과 압박은 그녀에 대한 통제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수전은 그녀만의 19호실을 찾기 위하여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비로소 자유와 평온함을 되찾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이러한 수전의 행보는 오늘날 페미니즘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거꾸로 그것을 호도하여 악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할 수 있다. 수전의 19호실은 바로 오늘날 페미니즘의 지향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9호실로 가다]에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도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색다르게 다가오리라 생각된다. 나는 도리스 레싱의 생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통하여 그러한 부분을 들여다보고자 하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페미니즘 문학으로 느껴졌다. [옥상 위의 여자]에서라는 작품에서 나체로 옥상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여성에 대한 남자들의 분노는 역시나 가부장제에 익숙한 남성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졌고, [영국 대 영국]은 당시 영국의 계층간의 갈등을 마주한 한 남자의 광적인 상황이 예의를 지키라는 여성의 외침으로 진정되는 장면이 역시나 여성들이 당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주체적인 입장과 더불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하였다. 물론 사랑의 관점으로 이 작품들을 마주한다면 같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느낌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몰랐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지만, 도리스 레싱의 행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부분을 알았기에 그녀의 단편들에서 그러한 부분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19호실로 가다]라는 작품이 최근 모 TV 방송에서 언급되었다는 점과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쓴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종사하는 여성이라는 점은 분명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폭넓게 펼쳐지고 있는 페미니즘과는 분리해서 읽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페미니즘을 자극적이면서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그릇된 행태와 페미니즘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이 난무하는 현재의 상황에서 도리스 레싱의 작품을 통하여 그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문학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고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있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출판사 문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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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