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과 역사

책찾사
- 작성일
- 2018.9.30
역사의 역사
- 글쓴이
- 유시민 저
돌베개
인류의 행적이 문자로 기록된 이래로 현재까지 수많은 역사 서적이 출간되고 있다. 역사로 다뤄지는 부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증가할 수 밖에 없지만, 그것들이 실험과 분석을 통하여 발견되는 새로운 영역의 것이 아니라 이미 과거의 사실이라는 점에서 그토록 다양한 책들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하여 왜 동일한 사건과 시대, 인물이 다양한 관점과 방법으로 기술되고 있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역사서의 내용을 일차원적으로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담긴 다양한 함의(含意)를 짚어낼 수 있는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유시민 작가의 [역사의 역사]는 바로 그러한 부분들을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부터 최근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유발 하라리의 저서를 통하여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역사를 공부하는 하나의 방법을 마주하게 된다.
[역사의 역사]라는 제목을 접하면서 다소 광대한 범위를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정확한 제목이 [역사 서술의 역사]임을 알게 된다면 저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는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이미 인문학의 고전에 반열에 올라 있는 역사서는 물론이고 현재에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서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역사 서술의 시간적 흐름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유시민 작가는 역사에 대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역사서와 그를 기록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역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몇 가지의 방법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헤로도토스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투키디데스에 대한 내용은 역사 서사에 대한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다. 이야기꾼으로 유명한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마치 당시의 상황을 실제 옆에서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로 생생히 묘사되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즉, 사실과 허구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그의 묘사는 분명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에 반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한 투키디데스의 기술 방법은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원인 분석에 치중하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연대에 따른 꼼꼼한 기록과 더불어 그리스 내전의 원인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언뜻 이 둘의 기술에 대한 차이는 사실과 상상이 역사에서 어느 정도 허용이 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보여질 수 있지만, 결국 둘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각각 페르시아와 그리스라는 세계 전쟁과 그리스 내전이라는 민족 전쟁에 대한 둘의 기록이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게 쓰여져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의 역사 기술을 통하여 역사 서술의 고충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직접 경험한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헤로도토스는 다양한 사료를 통하여 기술을 하였으며, 투키디데스 역시 자신의 경험에 더하여 다양한 사료와 글들의 비교를 통하여 기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대중에게 역사의 극적인 부분들을 선사하고,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신화와 전설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간결하게 정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러한 차이는 현재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큰 것이라 볼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부분들은 제한된 자료로 인하여 당시 역사가들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고충으로 바라봐야 하기 때문에 상상력과 사실의 잣대를 그 당시의 역사에 평가 기준으로 삼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사마천의 [사기]는 축복을 받았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이내 공감하게 된다. 비운의 역사가라고 알려져 있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관직에 있었다는 점과 고대 그리스와는 달리 풍부한 사료와 기록이 있었기에 그를 바탕으로 [사기]를 기술할 수 있었다는 점은 왜 [사기]가 역사서로서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기]가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는 점은 단순한 기록이 아닌 사마천이라는 인물의 관점과 생각이 반영된 서사라는 부분이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에 기반한 기록에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에 대한 해석을 추가한 부분이라든지 [화식열전]과 같이 자신의 관점과 기준에 따른 인물들의 이야기의 분류는 역사 서적이 그저 사실에 대한 기록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서사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관점과 방향성에 따라 달리 기술되는 역사 서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인물과 책은 바로 이븐 할둔의 [역사 서설]이다. 이슬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이븐 할둔과 그의 저서에 대한 설명은 새로운 지식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그가 1300년대에 활동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술 방법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인류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이전의 기술 방법과는 달리 빅 히스토리의 개념으로서 인류사를 다루면서 그 안에서 보편적인 원칙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였던 것이다. 물론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편적인 원칙을 찾기 위한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였지만, 그러한 보편적인 원칙을 찾아내기 위하여 다방면에 대한 그의 기술은 거꾸로 당시 이슬람 세계에 대한 다양한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성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시점에서 [역사의 역사]는 첫 장에서도 잠깐 언급한 사실과 상상력의 경계에 대한 부분을 랑케와 에드워드 H. 카의 저서와 행적을 통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랑케의 필법은 말 그대로 사실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기술 방법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역사가 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과 통하는 부분이지만, 그의 역사 기술이 철저히 문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역사 서적이 단순히 사실의 나열 및 정리에 그친다는 부정적인 부분을 담고 있다. 또한 그가 각국을 방문하여 얻은 문헌 역시 승자의 기록과 같이 편향된 조건에 의하여 보존된 자료이기에 문헌이 반드시 객관적이라고도 볼 수 없다는 점은 랑케 필법의 한계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은 바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하여 비판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에드워드 H. 카에 대한 내용을 읽다보면 유시민 작가가 이 책을 기획한 의도가 그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중략) 역사가와 사실은 평등한 관계, 주고받는 관계다. 역사가는 끊임없이 해석에 맞추어 사실을 만들어 내며 사실에 맞추어 해석을 만들어 낸다. 어느 쪽도 우위를 가질 수 없다. 이 상호작용은 현재와 과거의 상호 관계도 포함된다.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기 때문이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중략)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 p. 235 中에서 : [역사란 무엇인가]의 내용 -
저자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 부분의 인용을 통하여 다음의 사실을 도출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역사 서술에 대한 설명을 압축하여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은 과거의 것이고 역사가는 현재에 산다. 과거의 사실 가운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기준과 그 사실들을 일정한 관계로 맺어 주는 해석의 관점은 역사가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 역사가의 경험, 역사가의 이념과 개인적 기질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중략) 역사란 오늘을 사는 역사가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 p. 235 中에서 -
저자는 역사가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역사를 객관적인 사실, 분석된 사실로 알고 있던 우리에게 '이야기'라는 표현은 역사를 서술하는 이의 개입에 초점을 맞춰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사마천 또는 투키디데스가 독립운동 시기의 우리의 역사에 대하여 기술한다면이라는 가정이 실제 박은식과 신채호의 역사 서술로 이어진다라는 부분은 역사 서술 당시의 상황이 서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동시대에 그들과 달리 식민사관이 등장하였다는 점은 상황과 관점에 따라 달리 역사가 서술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헌팅턴이나 토인비와 같이 특정 국가나 시대가 아닌 문명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부분이라든지 과거의 역사를 기반으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하여 논하는 유발 하라리의 이야기도 기술의 관점에 따라 역사에 대한 다양한 서술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역사의 역사]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와는 다르다. 보통 역사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과 개선되는 상황을 발견하게 되지만, 여기에서는 역사 서술이 시간에 따른 발전이 아니라 그 상황에 따른 다양한 형태로 기술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풍부한 자료가 존재하는 현대에 쓰여진 역사 서적이 [사기], [역사]와 같은 고대의 역사 서적보다 우수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도 그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의 역사]는 역사를 서술한 인물이나 관점, 방법에 대한 우위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특징을 통하여 당시의 사회적 흐름이나 상황을 거꾸로 유추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그 책의 내용들이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 표현되는 원인을 이해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함의를 파악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역사란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기록하는 순간 쓰는 사람의 입장이 배제되고 정확히 사실만을 반영하는 것이 가능할까? 사실을 기록하되 지어내서 쓰지 않는다라는 '술이부작 [述而不作]'이 그 의미 그대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겸양의 표현이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인간이 기계적으로 모든 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역사]를 읽음으로써 역사 관련 서적을 달리 바라보게 된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의미와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을 찾는 과정으로 말이다.
- 좋아요
- 6
- 댓글
- 84
- 작성일
- 2023.04.26
댓글 84
- 작성일
- 2018. 10. 18.
@dewaere
- 작성일
- 2018. 10. 18.
- 작성일
- 2018. 10. 18.
@Alice
- 작성일
- 2018. 10. 19.
- 작성일
- 2018. 10. 19.
@시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