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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시라노
글쓴이
에드몽 로스탕 저
열린책들
평균
별점8.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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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래전에 [시라노 : 연애조작단]이라는 영화 개봉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연애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대행사를 만들어 사랑으로 이어준다는 내용이었는데, 내용보다는 오히려 '시라노'라는 제목에 더욱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라노 에이전시'는 도대체 어디에서 착안하여 그러한 이름을 붙인 것이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우연히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중 하나인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를 통하여 비로소 해소될 수 있었다. 과연 그렇다면 [시라노]는 과연 어떤 부분 때문에 영화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뮤지컬 또는 연극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책 표지의 인물을 바라보면 곧바로 그의 코가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된다. 마치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해서 코가 길어진 것과 같은 이 모습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시라노를 형상화한 것이다. 뛰어난 문학적인 재능과 더불어 훌륭한 칼솜씨를 동시에 지닌 이 남자 시라노는 아쉽게도 코가 유난히 컸기 때문에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던 여자에게 고백을 하지 못한다. 저자 에드몽 로스탕은 17세기 프랑스의 실존인물이었던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라는 인물을 그의 작품에서 모티브로 삼았는데, 실제 모든 방면에서 완벽했던 그에게 엄청난 코를 선사함으로써 이 작품은 시라노의 실제 삶과 비슷하면서도 또다른 이야기로 탄생된 것이다. 사실 이 실존인물은 알렉산드르 뒤마의 그 유명한 [삼총사]의 주인공인 달타냥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더구나 [시라노]에서는 달타냥과의 짧은 만남도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1640년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5막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대략 루이 13세 후반의 치세이며 30년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이기에 [시라노]는 그러한 시기의 생활상은 물론 정치, 사회적인 면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볼 수 있다. 더구나 주인공인 시라노는 비롯 비정상적인 코로 인하여 추남처럼 보이지만, 글과 검술에 모두 능하다는 점은 이 작품이 그러한 복합적인 상황을 모두 보여주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로도 느껴질 수 있게 된다. 사실 이 작품의 플롯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자신의 사촌인 록산에 대해 사랑을 느끼지만, 자신의 외모에 한계를 갖고 있는 시라노와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크리스티앙의 뛰어난 외모를 보고 한 눈에 반하는 록산, 역시나 록산의 아름다움에 반하지만, 정작 그녀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문학적 기질은 전무한 크리스티앙. 이들의 삼각관계가 바로 이 작품의 주요 플롯이다.

 

 하지만 통상의 삼각관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시라노]는 기존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재미와 유쾌함을 추가로 전해준다.

크리스티앙 : (절망에 빠져) 나에겐 능변이 필요해

시라노 : (느닷없이) 내가 빌려 주지! 자넨 나에게 정복자의 신체적 매력을 빌려 주게. 우리 둘이 함께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보세!

(중략)

시라노 : 록산은 결코 실망하지 않을 걸세! 말해 보게. 우리 둘이 함께 그녀를 유혹한다면? 내가 불어넣는 영혼이 내 물소가죽 저고리에서 수놓인 자네의 저고리로 지나가는 것을 느껴 보게나!

 - p. 109 中에서 -

 

 당시 귀족들의 연애는 문학적인 기질과 더불어 사랑을 속삭이는 말솜씨가 필수였는데, 크리스티앙은 그러한 것을 전혀 갖추지 못하였기에 록산에게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시라노는 그러한 재능을 차고 넘칠 정도로 갖고 있었지만, 정작 외모로 인하여 아예 사촌인 록산에게 사랑을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로 연적(戀敵)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라노는 서로의 부족분을 채우면서 록사에 대한 사랑을 쟁취하고자 하였기에 이 작품은 독특한 매력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자신이 직접 다가갈 수 없지만, 크리스티앙의 얼굴을 매개로 하여 록산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사랑에 대한 깊은 열의로 느껴지게 된다. 크리스티앙 역시 록산이 자신에게 반하여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시라노의 재능을 활용하여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면서 이 둘은 기묘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또한 록산을 사랑하는 리슐리외의 조카이자 대귀족인 드 기슈로 인하여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수 밖에 없고, 실제 시라노의 기지를 통하여 크리스티앙과 록산은 결혼을 하게 된다. 물론 결혼과 동시에 드 기슈의 음모로 인하여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은 곧바로 아라스 포위전에 참여하게 되지만 말이다. 생사의 갈림길인 전장 속에서도 시라노는 록산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하여 크리스티앙을 보호해야 할 처지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날마다 전장을 가로질러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록산에게 편지를 보내고, 록산 역시 그 편지에 감동하여 크리스티앙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하지만 연애에 있어서 대부분의 삼각관계는 해피엔딩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 한 여성을 두고 경쟁하던 두 남자가 결국 셋이 사랑하기로 합의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던 것처럼 [시라노]의 인물들 역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크리스티앙은 전장에서 전사를 하고, 록산은 그러한 크리스티앙을 잊지 못하여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이후 15년 동안 수도원을 방문하여 세상 소식을 전하는 시라노는 정작 여전히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록산이 그가 쓴 편지를 크리스티앙이 쓴 것으로 생각하는 상황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물론 이러한 방관은 단순히 애틋함의 발로는 아니었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에 대한 의리와 우정을 져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크리스티앙은 비록 록산과 결혼을 하여 그녀의 사랑을 얻었다고 생각했지만, 전장을 방문한 록산이 처음에는 크리스티앙의 외모 때문에 반했으나 이제는 그의 편지(시라노가 쓴)를 통하여 진실된 마음에 더욱 사랑을 느꼈다는 고백으로 인하여 충격을 받고, 결국 전장에서 무모한 죽음을 택하였던 것이다.

록산 : 그러니 행복을 만끽하세요. 오로지 잠시 머무는 외모 때문에 사랑받는 것은 고귀한 사랑의 마음을 고문에 빠뜨릴 테니까요. 하지만 그 소중한 마음이 얼굴을 지워 버렸어요. 처음에 내 마음을 설레게 했던 당신의 아름다움은 내가 더 잘 볼 수 있게 된 지금......더는 보이지 않아요!

크리스티앙 : ......오!

 - p. 197 中에서 -

 

 전장에서 만난 록산의 고백을 통하여 결국 진정한 사랑은 외모가 아닌 마음이라는 점은 사실 크리스티앙의 가슴을 후벼 판 것만큼이나 쓰리게 작용했던 것이었다. 록산을 감동시킨 글과 편지는 모두 크리스티앙의 이름을 빌려 시라노가 쓴 것이었으니. 또한 시라노의 글과 편지 역시 록산과 크리스티앙의 사랑을 위하여 시라노의 선의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그 쓰라림과 충격은 결국 전장의 죽음으로 밖에 대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은 록산과 시라노 역시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화 [시라노 : 연애조작단]과는 너무나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크리스티앙이 죽은 후 1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된 록산이라든지 그 사랑을 눈앞에 두고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시라노를 과연 누가 행복한 결말이라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는 [시라노]는 자칫 진부하게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러 요소에 유쾌하면서도 희극적인 부분을 통하여 그러한 비극을 비극이 아닌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작품 곳곳에서 등장하는 언어적 유희는 물론 사랑에 대한 심각한 싸움 대신 시라노의 기발한 생각이 빚어낸 록산의 심리 변화를 통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은 이 작품이 발표된지 수 백년이 흐른 지금에서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쾌함에 젖어 웃다가도 그 안에 담긴 사랑에 대한 헌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의 비극적인 결말에 다다르는 과정들은 이 작품에 인간의 희노애락을 모두 담아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닫고 또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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