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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격 한중일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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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글쓴이
굽시니스트 저
위즈덤하우스
평균
별점9.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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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정책은 두 번의 양요를 겪으면서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이것을 두고 우리는 만약 그 당시에 쇄국이 아닌 문호 개방을 택했더라면 조선의 운명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정하곤 한다. 그리고, 개화당에 의한 '갑신정변'이 성공하여 수구세력을 몰아내고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 역시 이 시기의 역사를 접할 때마다 자연스레 등장한다. 과정과 그 속도가 달랐지만 중국과 일본이 각각 변화와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문호를 개방하여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시점에서 홀로 변화의 바람을 무시하던 당시 조선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대부분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젊은 급진 개화주의자들을 응원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이전에는 그랬다. '갑신정변'에 대하여 상세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혁을 통하여 발전을 꾀하자는 그들의 주장과 행동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내막을 알게 된다면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 청불전쟁과 갑신정변]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갑신정변'은 물론 그 사건을 주도했던 김옥균이라는 인물을 마냥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우선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점은 '갑신정변'의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하여 수많은 자료를 통하여 깊게 파고들 수 있겠지만, 이 책은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잘 알려지지 않은 '갑신정변'의 막전 막후를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고 있다. 단순히 1884년의 '갑신정변'을 그 이전의 청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되면서 수구 세력 강화의 단초가 된 1882년의 '임오군란'에 대한 반동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그것이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883년 김옥균은 차관을 요청하기 위하여 일본을 방문한다. 이미 후쿠자와 유키치의 교류하던 김옥균은 조선 역시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같이 근대화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1883년의 일본 방문은 실제 그가 '갑신정변'의 결행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는 김옥균의 차관 요청은 물론 정변에 대한 지원을 거부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국내의 근대화를 위한 정책 추진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굳이 조선을 놓고 청과 대립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이러한 소극적인 대외정책에 대하여 불만을 갖고 있던 일본의 재야 세력은 김옥균에게 주목하게 된다. 그들은 1882년 조선에서 터진 '임오군란'을 계기 삼아 국외 문제에 대하여 정부에 대하여 질타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옥균과 같은 모험주의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국외의 큰 혼란의 불씨가 될 수 있음을 감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물론 재야 세력의 대표인 일본의 자유당 지도자 고토 쇼지로는 김옥균을 북돋우면서 온갖 지원을 약속하게 된다. 하지만 그 지원은 구체적인 것은 없었고 두리뭉실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옥균은 일본의 지원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갖고 거사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렇다고 김옥균이 단순히 일본의 지원만을 굳게 믿고 충동적으로 거사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정변이 일어났을 때, 일본 공사관에서 병력을 제공하였지만 그 병력은 대략 150명 정도의 소수였기에 그것만 믿고 정변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은 개화파의 국내에서 나름의 준비 과정도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집권 세력인 친청 세력, 즉 민씨 일파에 맞서 군사력에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다. 사실 군권은 집권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에 개화파가 그에 맞서 군권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개화파에 속하던 윤웅렬(개화파 윤치호의 아버지)이 이끌던 함경도의 북청군 470명을 거사 2개월전인 1884년 10월에 입경케 하여 친군 후영에 속하게 됨으로써 얼추 사대당과 개화당의 군권의 상황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 아래 표를 보면 사대당의 병력이 약간 많지만, 해방영은 서울 밖의 경기도에 주둔하는 병력이니 거의 균형이 맞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군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과정은 잘 알려지지 않은 개화파의 정변에 대한 국내에서의 치밀한 준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대당 병력(수구파) 개화당 병력(개화파)

친군 우영 : 600명



친군 좌영 : 800명



해방영 : 1100명



보부상



친군 전영 : 560명



친군 후영 : 500명



유학파 장교단 : 14명



충의계 : 50명




 



 하지만 서울에 주도하고 있던 원세개의 청군이 문제였다. 김옥균이 믿는 것은 일본 공사관의 지원 병력은 150명 정도였기 때문에 아무리 국내의 병력 숫자를 맞춰도 청군이 개입한다면 거사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왜 이 책이 '갑신정변'을 '청불전쟁'과 제목으로 묶여있는지 보여준다. '청불전쟁'은 베트남의 주도권을 두고 청나라와 프랑스가 벌인 전쟁이다. 이 전쟁의 주요 전장은 청나라와 베트남의 접경 지역과 대만이었으니 조선과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이 전쟁이 1884년 8월에 시작되어 1885년 4월에 종료되었기에 '갑신정변'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니 오히려 '갑신정변'의 시작과 끝 모두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청불전쟁'이 발발하자 청나라는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주둔하던 청나라의 병력을 1500명만 남기고 철수시킨다. 김옥균의 입장에서 이는 정변을 일으킬 유리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물론 1500명의 청군도 무시할 수 없지만, 청나라가 프랑스와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 조선에서 일본군과의 충돌은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청군의 개입이 어려우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실제 '청불전쟁' 당시 프랑스는 일본에게 물밑으로 지원을 요청한 상황이었으니 청나라로서는 조선에서 쉽게 병력을 움직일 상황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청불전쟁'의 개전은 김옥균의 개화당 세력에게 정변의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심지어 수구세력은 개화당의 군사력이 커지는 것을 보고 윤웅렬의 북청군을 다시 함경도로 복귀시키는 조치를 취하자 결국 개화당은 1884년 12월에 거사를 감행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거사에 지침하지 말라는 입장이었기에 일본 공사관은 소극적으로 임했지만, 일본 공사는 정부와 일본의 재야 세력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김옥균의 강력한 설득과 고종의 밀지를 명분으로 공사관 병력을 거사에 제공함으로써 우정국 낙성식에 맞춰 진행된 거사는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청불전쟁'의 시작이 김옥균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전쟁의 정황은 결국 김옥균에게 패착이 된다. 프랑스의 우세로 진행되던 전쟁이 점점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원세개는 조선에서 일본군과 충돌하더라도 청과 일본의 대규모 확전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여 과감히 병력을 동원하여 거사의 진압에 개입함으로써 결국 '갑신정변'은 '3일천하'로 막을 내리면서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당은 순식간에 역적의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하여 '갑신정변'의 막전막후를 알게 되면서 '갑신정변'에 대한 기존의 생각과는 큰 괴리감이 생겨났다. 젊은 엘리트들에 의한 개혁의 상징이라 여겼던 '갑신정변'은 그 과정에서 다수의 문제점을 보여주었기에 그 목적이 정말 구한말의 개혁이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무리하게 일본의 세력을 끌어들인 점과 정변 후 세조가 그랬던 것처럼 수구파의 고위 관료를 살해한 점 등은 그들의 거사를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거사에 성공한 이후 12월 6일 그들이 발표한 [혁신정강]에서 '대원군의 조속 귀환'이라는 내용이 조항에 포함된 부분도 이들의 거사가 마냥 젊은 엘리트들의 구국을 위한 결단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인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권력 장악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그들의 행보를 보면 오히려 주객이 전도되어 무리하게 권력 장악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쉽게 거둘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의 거사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현실적인 부분에서 정책 추진을 위한 권력 장악은 필요한 것이고, 비록 실패하여 제대로 그들의 포부가 실현되지 않았지만, [혁신정강]의 내용을 본다면 적어도 당시 조선에서 개혁을 통한 구습의 타파를 실행으로 옮기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당시 조선의 상황을 본다면 그들의 거사가 성공하였더라도 그 혁신이 이루어졌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혁신정강]



- 대원군의 조속 귀환과 조공 폐지                - 탐관오리 징벌



- 만민평등. 양반 문벌 폐지                          - 지조 개혁



- 내시부 폐지                                             - 지방 환곡 모두 폐지



- 규장각 폐지                                             - 경찰 제도 도입



- 해상공국 폐지                                          - 각종 옥사를 재조사하여 억울한 자들 방면



- 친군 전후좌우 4개 영을 1개 영으로 통합   - 국가 예산 관리는 모두 호조로 통합



- 6조의 대신, 참찬들의 국무회의가 내각으로서 국사 총괄



- 6조 외의 번다한 중앙 부처는 모두 폐지





 



 이 책은 '갑신정변'의 과정을 이처럼 상세히 다루면서 흥미로운 가설을 소개하는데, 그것은 바로 거사를 고종이 묵인했다는 내용이다. 이 시기에 조선이 비록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국왕이 존재하는 전제국가였기에 김옥균 세력이 나름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하였다고 하더라도 고종의 허락 내지는 묵인이 없었다면 거사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러한 가설을 언급한다. 즉, 고종은 개화당을 이용하여 청나라를 등에 업은 민씨 세력을 제거하는 이른바 차도살인(借刀殺人)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실제 거사의 과정에서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민씨 일족은 거사 다음날 고종을 만나려다가 개화당에 의하여 살해되거나 정권에서 축출당하였으니 마냥 허무맹랑한 가설은 아니다. 실제 고종은 성인이 되어 친히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을 견제하고 훗날 청나라에 억류되는 것을 방관하였으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13 : 청불전쟁과 갑신정변]은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던 '청불전쟁'이 어떻게 '갑신정변'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이 사건들에 대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의 발견과 더불어 역사가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어떻게 아우르면서 동시에 이루어지는지를 떠올려 볼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그간 '3일천하'라는 표현 때문에 '갑신정변'을 상당히 드라마틱한 사건으로만 이해했지만, 그 배경과 과정은 상당히 복잡하고 치밀한 전개에 의한 역사로 돌아볼 수 있게 된 것도 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수확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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