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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4.9.6
난중일기
- 글쓴이
- 이순신 저/이은상 편
지식공작소
<출판사 지식공작소 서평 이벤트 지원으로 읽은 책입니다.>
1597년 10월에 벌어진 명량해전을 소재로 한 영화 <명량>이 요즈음 대단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관객 동원의 신기록이라는 금자탑을 쌓은 것은 물론이고, 각계 각층에서 이순신 장군의 리더쉽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반인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아무래도 현재 답답하고 먹먹한 사회 현실을 목도하는 가운데 이순신 장군과 같은 영웅의 도래를 갈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우리가 <명량>이라는 영화 한편으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관심을 가질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삶을 엿보기에는 장군이 난중에 작성한 <난중일기>를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사실 <난중일기>는 우리에게 낯선 단어는 아닐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도 실제 이순신 장군이 거제 현감인 안위를 꾸짖는 대목인 "안위야,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도망간다고 어디 가서 살 것이냐" 라는 구절처럼 우리는 알게모르게 <난중일기>의 글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난중일기>에 대한 생각을 확실히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난중일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은상 역주의 <난중일기>의 출간 소식은 반갑게 느껴진다.
임진왜란이 발생한 1592년에서부터 1598년까지의 장군의 일기를 담은 책이기 때문에 분량이 상당하다. 거기에다가 요즈음 책에서 볼 수 없는 내려쓰기 방식으로 쓰여진 책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사실 그동안 가로쓰기 방식의 책들만 읽다가 아주 오래전 아버지의 서재에서 본듯한 내려쓰기 방식의 책인지라 향수를 느끼면서도 저어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니 오히려 내려쓰기 방식의 선택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실제 <난중일기>를 쓴 장군의 상황과 마음이 내려쓰기라는 형식으로도 전달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나서는 오히려 이 책이 가로쓰기 방식으로 쓰여졌다면 그 감동은 반감이 되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자연스레 형식적인 표현에 적응이 되면서 <난중일기>는 역사서로서는 물론이거니와 영웅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게 해준다.
<난중일기>는 분명 개인이 작성한 일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우리가 요즈음 인터넷을 통하여 개인의 신변잡기를 기록한 일기 형식의 블로그를 쉽게 접한다. 그러나, 이미 그러한 것들은 타인이 읽는다는 생각으로 인하여 진솔된 면이 강조된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식의 글이 다반사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난중일기>는 바로 이순신 장군이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하여 인간 이순신에 대한 부분에 관심을 두었다. 이미 역사나 영화를 통하여 무장 또는 충신으로서의 모습은 많이 부각되었으나, 그러한 이면에 가려진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우려웠다. <난중일기>는 곳곳에서 바로 이러한 이순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작성자인 본인조차도 전혀 타인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고, 작성을 하였기에 그의 진솔한 모습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 같다.
1594년 7월 열사흘(기축)
홀로 앉아 면의 병세가 어떤가를 생각하고 글자를 짚어 점을 쳐 보니, "군왕을 만나 보는 것 같다"는 괘가 나왔다. 아주 좋았다.
다시 짚으니 "밤에 등불을 얻은 것과 같다"는 괘가 나왔으니 두 괘가 다 좋은 것이었다. 조금 마음이 놓였다. (이하 중략)
1597년 4월 열사흘(계유)
(중략) 조금 있다가 종 순화가 배에서 와서 어머님의 부고를 전한다. 뛰쳐나가 뛰며 슬퍼하니 하늘의 해조차 캄캄하다.
곧 해암으로 달려가니 벌써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는,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야 이루 다 어찌 먹으랴. 뒷날 대강 적었다.
1597년 10월 열나흘(신미)
(중략)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하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혼란해졌다. 겉봉을 대강 뜯고 열의 글씨를 보니 거죽에 '통곡' 두 자가 씌어 있어 면의 전사를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하였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시는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한데,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을 것이냐. 천지가 깜깜하고 해조차도 빛이 변했구나. 슬파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기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앙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중략)
위 내용을 보면 이순신 장군 역시 어머니를 항상 생각하는 효자요, 아들(면)에게는 자애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전선에 있다보니 아산에 지내고 있던 어머니와 아들에 대한 걱정을 일기 곳곳에 남겨두고 있다. 특히 그가 모함에 의하여 옥에 갇혀 있다가 백의종군의 길에 들은 어머니의 죽음과 명량해전 이후 왜의 보복으로 살해된 아들 면의 죽음에 대하여 애잔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글들은 모두 우리가 23전 23승을 이끈 장군의 모습에 가려진 그의 가족에 대한 감정을 흠뻑 느끼게 해주는 부분일 것이다.
<난중일기>에서 보여주는 이순신 장군의 또 하나의 모습은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리더쉽도 엿볼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하여 부하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모습을 부각시켰으나, <난중일기>에서는 철두철미한 공과 사를 구분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전투가 끝나면 자신의 군관이 아닌 다른 장수의 군관의 공적을 오히려 장계에 작성하여 보내기도 하였으며, 규율을 어긴 사람은 장수라 할지라도 곤장을 때리도록 명령하는 모습은 그의 강직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심지어 탈영을 하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목을 베어 효시를 하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하여 공적인 일을 엄격히 구분을 하였다면, 사적으로는 부하와 휘하 장수와 함께 활을 쏘거나 술을 마시는 인간적인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전투가 없는 날이면 장수들과 활쏘기를 겨루거나, 바둑을 두는 인간적인 모습과 함께 부하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하여 술과 고기를 내어주고, 부모의 조사까지 신경쓰는 세세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신(修身)과 제가(濟家)를 통하여 이순신 장군이 전투에 대하여 승리할 수 밖에 없었음을 <난중일기>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장군에게는 애증의 인물인 원균에 대한 묘사도 곳곳에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도 인간이었을까? 흔히 이순신 장군이 원균의 일탈에 대하여 너그러운 모습을 보인 것처럼 묘사된 부분도 있지만, 실제 <난중일기>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임진년에서부터 1597년까지 원균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이순신 장군은 흉(凶)으로 묘사를 한다. 흉한 모습, 흉한 행위, 흉인이라는 표현은 원균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자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은 원균에 대하여 강력하게 제재를 한 적은 없기 때문에 장군의 일기인 <난중일기>에서 개인적인 속내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칠천량 해전 이후 이러한 원균에 대한 그의 애증의 관계는 <난중일기>에서 자연스럽게 소멸이 된다.
마지막으로 무장으로서의 활약을 <난중일기>에서 느낄 수 있다. 다만, 23전 23승의 승리를 한 장군의 활약은 정작 <난중일기>에서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가 해전을 지휘한 날에는 오히려 일기 자체가 누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출정 전후의 기록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진왜란의 첫 승리인 옥포 해전에서부터 노량 해전까지 본격적인 함대전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가 않다. 오히려 이순신 장군이 내륙을 끼고 저항한 왜의 소극적인 전투인 웅포 해전이나 장문포 전투와 같은 부분이 일기로서 기록이 되어 있을 정도이다. 한마디로 치열한 해전에 대한 기록은 오히려 <난중일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영화화되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1597년의 명량해전은 난중일기에 가장 자세하게 두번이나 기록이 되어 있다. 장군도 승리를 짐작하기 어려웠던 전투였기에 처음의 기록과 함께 나중에 기억을 더듬어 좀더 내용을 보강하여 쓰여 있기 때문에 그나마 그의 치열한 해전중에서도 많은 부분이 할애가 되어 있다. 그러나,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은 견내량을 방어선으로 삼아서 왜가 전라도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하여 항상 초계 활동을 하면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음을 볼 수 있으며, 전쟁에 대한 준비와 마무리를 역시 현장감있게 느끼기에는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방대한 양의 <난중일기>이지만, 역으로 그러한 긴 전란 속에서도 꼼꼼하게 일기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점을 생각한다면 이 책의 소중함을 여러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난중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고어와 더불어 당시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이 <난중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순신 장군 스스로의 생생한 기록이 바로 <난중일기>이므로 그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면 한번쯤 꼭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의 영화 또는 드라마는 어쩌면 수박 겉핥기 식의 관심의 표현에 그칠 수 있다. 국난을 통하여 그것을 극복하려는 영웅 이순신의 진솔한 모습을 흠뻑 느끼고 싶다면 바로 이 책 <난중일기>를 읽어보는 것은 꼭 추천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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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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