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소설

책찾사
- 작성일
- 2016.7.20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글쓴이
- 박완서 저
세계사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이 10여년 전 방송을 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진 기억이 생각난다. 사실 나는 그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였다. 심지어 방송도 보지 않았기에 얼추 제목을 듣고서 우리나라 작품이 아닌 인도 문학이라고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싱아'의 뜻도 모르고 발음상 인도에서 많이 사용하는 '싱'이라는 음절이 있기에 엄청난 착각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우연히 읽게 되면서 이 두 작품이 바로 박완서 작가의 젊은 시절을 오롯이 담아낸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새삼 나의 얕은 독서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비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하였지만, 대략적으로 그 줄거리를 알고 있었기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바로 박완서 작가의 그 뒷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20대 초반의 젊은 시기는 인생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열정적이면서 즐겁게 기억이 될 가능성이 큰 시기이다. 그런데, 그러한 시기가 6.25라는 전쟁과 맞물린 박완서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이야기의 시작은 1.4 후퇴로 인하여 서울이 다시금 북한에 의하여 재점령된 상황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은 오빠로 인하여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게 된 박완서의 가족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다니다가 전쟁으로 인하여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목숨을 연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젊은 박완서의 모습은 대학생의 풋풋한 모습이 아닌 당시 전쟁의 상황 속에서 우리 민족이 겪은 고통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피난을 가지 못하였기에 나중에 다시 서울이 수복되면 빨갱이로 몰리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남한 정부가 발급한 시민권을 애지중지 하면서도 동시에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하여 숨죽여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바로 한 가족이 아닌 비극적인 상황의 민족의 모습 그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상황은 박완서를 비롯하여 올케까지 변화시키게 된다. 먹고 살기 위하여 밤마다 빈집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찾는 완서와 올케는 그러한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혐오와 함께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나름의 정당화 과정을 통하여 내적으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담을 넘다가 발목을 다친 올케의 발을 주무르며 자신의 손이 약손이라 되뇌이는 완서를 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올케와 역시 같이 울게 되는 완서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안쓰럽게 느껴진다.
사실 완서 역시 여전히 현실에 대한 적응이 더디기만 하다. 비록 올케를 따라서 빈집에서 먹을 것을 찾으러 다니지만, 그녀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올케에 의지하면서 벌인 일이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이러한 완서의 모습은 바로 6.25라는 시대의 격변에 의한 개인의 비극적인 희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중에 근숙이 언니와 살아보겠다고 나름의 길을 찾으려는 완서의 노력은 그 결심과는 달리 여전히 수동적이다. 결국 근숙의 소개로 미군 PX에 취직을 하게 되지만, 여전히 그녀의 삶은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당시 상황으로서 미군의 PX는 어찌보면 도피처요 가족의 삶을 지탱해줄 기반이지만, 그러한 PX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과 군상들의 모습은 6.25 막바지의 우리의 상황을 이합집산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자신의 능력으로 PX에서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이 자신의 학력 콤플렉스를 완서의 서울대라는 학벌로 감추기 위하여 채용했다는 사실에 자신의 무능함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집안의 기풍과 대학생이라는 풋풋한 이미지와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완서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녀의 혼란은 먹고 살기 위하여 양공주에게도 날품팔이를 하는 올케의 모습을 통하여 더욱 부각된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의 가장 극적인 인물은 완서의 눈에 비친 오빠와 어머니가 아닐까 생각된다. 총상을 입어서 비극적인 상황에서 제 구실도 못하고 다시 피난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처의 처가로 가겠다는 그의 의지는 여전히 과거의 자신의 모습에서 허우적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올케와 완서가 밤마다 도둑질을 하거나 힘들게 벌어온 돈으로 먹고 살면서 그에 대해서는 무심한 모습을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6.25라는 격변하는 시간 속에서 세대간의 기묘한 갈등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중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완서의 결혼을 반대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결혼을 강행하는 완서의 상황은 이러한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결국은 가족이다. 남몰래 딸의 결혼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모습은 비극적인 상황을 가족이 서로를 의지하면서 극복해야 함을 보여준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이지만, 그 배경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에 맞물린 우리의 비극적인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이 시대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거나 또는 그렇지 못한 사람 모두 이 책을 통하여 그러한 상황을 어느 정도 공감하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거대한 사회적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방황하고 또 그것을 극복하면서 적응하는 다양한 인간의 군상을 이 책에서 새삼 느끼게 되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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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