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 서평

앨리스
- 작성일
- 2010.7.27
이슬람 정육점
- 글쓴이
- 손홍규 저
문학과지성사
부모가 누구인지, 자신의 몸에 남겨진 흉터가 어떤 이유에서 기원했는지 주인공 소년인 '나'는 알지 못한다. 고아원을 전전하며 못된 고아원원장의 폭력을 슬쩍 넘겨버리는 요령조차 터득하지 않았다. 만사가 귀찮고 무덤덤한 '나'이다. 오늘은 원장의 반지실종사건 범인이 되어서 흉터투성이 몸뚱이에 매질을 당하기 직전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하산 아저씨'가 나를 구원해주었다. 이것이 소년과 하산 아저씨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이슬람 정육점』을 읽기 전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첫 만남 이후에는 무지개 같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상상했고 그것은 상처받은 두 영혼을 위한 나의 당연한 바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고아원을 나와 하산 아저씨와 함께 살게 된 소년은 여전히 어둡고 음울하기 만하다. 말수가 적은 하산 아저씨는 나름의 따뜻함을 지니고 소년을 대한다. 하지만 소년은 이미 자신의 상처가 너무 깊어 마음을 열지 않는다. 타인에게 마음을 개방하는 것은 귀찮고 쓸데없는 일이라고 소년은 믿고 있다. 그저 하루하루 신문에서 사람 얼굴만을 오려 스크랩하는 게 소년이 전념하는 단 하나의 작업이다. 도대체 소년은 왜 사람 얼굴만을 스크랩하는 것일까! 게다가 스크랩된 얼굴은 웃고 있어도 진정으로 행복한 얼굴은 대관절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이슬람 정육점』을 읽으면서 소년의 스크랩북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인생살이가 전혀 즐겁지 않은,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매일을 죽여 가는 소년이 열심인 작업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작가는 나의 마음을 알아챘고 이 작업의 의미를 내게 살포시 던져주었다. 얼굴을 스크랩하는 소년의 행위는 그 '무언가'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그 '무언가'를 하산 아저씨의 엉덩이가 머문 자리에서 발견한다. 그것은 조그만 하트모양이다. 바로 "사랑(愛)"이었다. 마음을 꽉 닫고 삶에 대한 의지조차 없던 소년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사랑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산 아저씨가 실려 간 병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타인의 엉덩이를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이슬람 정육점』에서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성장소설의 범주에 있기에는 너무나 넓고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슬람 정육점』은 고아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전쟁으로 인해, 혹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마음과 몸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소풍을 떠난다. 그들에게 소풍은 각자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임시방편의 진통제일 뿐 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풍으로 인해 자신의 상처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 그들에게는 더할나위없는 선물이 되었으리라. 아파서 상처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문득문득 보이는 상처 때문에 고통을 인지하는 소년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려고 결심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앞으로 소년이 마주하는 세상은 따뜻하기보다는 여전히 냉소적인 곳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가두고 있던 상처에서 일어서려는 소년에게 나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간의 엉덩이에 신이 남겨둔 그 '무언가'를 찾고 싶다면 『이슬람 정육점』에 들러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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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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