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리뷰

ggussy
- 작성일
- 2019.7.15
모든 시작의 역사
- 글쓴이
- 위르겐 카우베 저
김영사
<모든 시작의 역사>
유발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 문명과 인류에 대한 책들도 나름 한 분야로 자리잡고 팔리고 읽히고 있다. 이런 책들은 대부분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철학, 종교학, 생물학, 유전학, 언어학, 문학 등 방대한 학문적 토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대서사시 같은 매력이 있다. 이 책도 그런 류다.
인간은 언제부터 두발로 걸었을까? 맨 처음 말을 뱉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종교, 법, 음악, 도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등의 시작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어려운 학설을 대중들을 위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밌고 쉽게 풀어가는 구성을 기대하긴 했지만 이 책의 저자 위르겐 카우베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책 앞머리에 우중충한(?) 풀컬러 사진 도판 이후로 그 흔한 그림, 사진, 도표 한장 없이 줄 바꿈도 최소화해서 빽빽하게 글만 가득하다.
근데 이 정공법이 성공적이었다. 그 진지함과 집요함으로 16가지 시작의 역사를 정말 깊고도 넓게 파헤쳐준다. 이 책의 논리가 100%로 정답이진 않겠지만 일단 읽는 동안 어떤 반론이나 의아함, 추가질문, 구멍, 허점들이 안 떠오른다. 뭔가 이 저자의 특이하면서 매력적인 글쓰는 스타일을 더 설명하고 싶은데 일단 패스^^
이 책의 첫 문장 “가장 중요한 발명들은 발명자가 없다.” 가 이 책의 포인트다.
가장 먼저 춤을 춘 사람이 누구이며, 최초의 일부일처 커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고 발명자가 없으니 의도와 계획도 없다. 인류의 기원과 문명의 기초가 잘 짜인 각본의 연출물이 아니라 우연과 시행착오로 뒤섞인 장구한 혁명의 결과라는 고찰이라는 논리다.
난 또 이 딱딱한 인문학 서적에서 똥폼 잡고 읊조릴 인생 개똥철학이 떠올랐다. 내 인생 역시 내 수많은 의도와 계획이 처절하게 무산된 우연과 시행착오로 뒤썪인 장구한 삽질의 결과라는….
이 책에서 다루는 16가지 시작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
직립보행, 익혀 먹기, 말하기, 언어, 미술, 종교, 음악과 춤, 농업, 도시, 국가, 문자, 성문법, 숫자, 이야기, 돈, 일부일처제
다른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말하기가 생겨났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사회적 결속력을 높여주는 ‘소리 그루밍’(식사하면서 내는 쩝쩝 소리 등)에서 말하기가 시작되었다는 가설 , 돈은 물물 교환을 효율적인 상거래로 변모시키려고 발명된 것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다는 가설 , 원숭이는 더 멀리 내다보려고 똑바로 일어섰던 것이 아니며, 도시는 시민 보호를 위한 발명품과 거리가 멀다.
인간 아기들은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들이 홀로 방치된 게 아니라는 신호를 필요로 했다. 아기를 안는 팔 대신 마음을 진정시키는 전단계 음악을 통한 소통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 음악이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있었을까? 바로 어머니 목소리이기 때문이고, 반복을 통해 안정적인 기대감을 만들고 음높이와 고요함을 통해서는 위험이 없다는 상황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울부짖는 아기가 맹수들로 가득 찬 세계에서 자신과 어머니를 극한 위험으로 몰아가는 것이니 이런 진정 효과는 ‘생존전쟁’ 상황에서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보면 음악의 시작은 위안이었다.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오로지 사랑에만 근거한 결혼이란 물론 전혀 있을 법하지 않다. 그 사이로 많은 것이 끼어든다. 재산, 교육, 경력 등 아주 많은 것이 가족에 달려 있다면, 어떻게 이 모든 것이 말할 수 없는 어떤 것, 쉽사리 도로 사라질 수 있는 어떤 것에 근거하도록 놓아둔단 말인가? 사실에 반하는 규범적인 일부일처제 고집은 이런 무질서를 상쇄하기 위해 발전한 것처럼 보인다. 이미 모든 것이 엉망이라면 적어도 부부만이라도 격리시켜 질서 있게 만들자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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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