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리뷰

ggussy
- 작성일
- 2021.11.27
리추얼의 종말
- 글쓴이
- 한병철 저
김영사
리추얼의 종말
요즘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책이 자주 나오는 것 같다. 이번엔 의식, 놀이, 축제, 그리고 팬데믹과 공동체의 소멸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며 삶의 정처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부제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서 말하는 리추얼이란 독일어 ‘Ritual’이고 삶을 더 높은 무언가에 맞추고 그럼으로써 의미와 방향을 제공하는 상징적 힘이자 정처 없는 삶을 정박할 수 있게 해주는 단단한 닻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일정한 형식과 규칙에 몰두하게 함으로써 자아를 탈내면화하고 타자와, 주변의 사물들과, 세계와 관계 맺게 하는 이렇다 할 소통 없이도 공동체를 형성하고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 방점을 찍었다.
솔직히 한병철 저자의 책들을 좋아하지만 너무 고차원적인 사유에 감탄하면서도 100% 명쾌하게 이해하며 읽진 못하다보니 서평을 쓰기도 살짝 버거운 느낌은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진가는 주옥같은 문장들의 발췌만으로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서문에서 저자는 나는 리추얼이 소멸해간 역사를 향수 없이 간략히 서술할 것이며 그 소멸의 역사를 해방의 역사로 해석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의 병적 현상들,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침식을 뚜렷이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서 사회를 집단적 나르시시즘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법한 다른 삶꼴Lebensform들을 숙고할 것이라고 먼저 친절하게 알려준다.
신자유주의는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를 강제하고, 이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데, 리추얼도 이로 인해 사라지는 것 중 하나다. 그 양상은 어떠한가? 끝없이 새로운 것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업데이트해야 하는 세계, 어느 하나에 머무르는 것, 지속하고 끝맺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세계다. 가령 우리는 넷플릭스 같은 OTT 서비스를 통해 시리즈물을 지칠 때까지 몰아본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리추얼이 살아 있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 욕망과 나르시시즘의 덫에 붙잡힌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나서자는 것이다. 이 책은 이를 위한 실마리를 제공하며, ”자아의 저편, 소망의 저편, 소비의 저편에서 이루어지며 공동체를 조성하는 새로운 행위와 놀이의 형태를 발명하는 일“에 독자를 초대한다.
그외에도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의 어두운 이면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대목들이 즐거웠다.
디지털 소통은 주로 흥분에 의해 조종된다. 디지털 소통은 흥분의 즉각적 배출을 장려한다. 트위터는 흥분 매체로 기능한다. 트위터에 기반을 둔 정치는 흥분 정치다. 본래 정치란 이성이요 매개다. 아주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이성은 오늘날 단기적인 흥분에 점점 더 밀려난다.
오늘날에는 끊임없이 도덕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회는 난폭해진다. 공손함이 사라진다. 진정성 숭배는 공손함을 경멸한다. 아름다운 교제 형식들은 점점 더 드물어진다. 이런 면에서도 우리는 형식에 적대적이다. 도덕은 사회의 야만화를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도덕은 형식이 없다. 도덕적 내면성은 형식 없이 작동한다.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는 도덕화 경향이 강할수록 더 불손하다.’ 이런 형식 없는 도덕에 맞서 아름다운 형식의 윤리를 방어해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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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