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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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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2.25
나는 내 원고를 몇 차례 읽고 상당히 만족했습니다. 하지만 뭔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불쑥불쑥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앞서 말한 우리 집 소파 위에 앉아 톰 웨이츠를 듣고 있었습니다. 톰 웨이츠의 「루비즈 암즈」라는 제목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여러분 중 몇 분은 그 노래를 아실 겁니다.(이 대목에서 여러분에게 그 노래를 불러 드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만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 노래는 침대에 잠든 연인을 두고 떠나는, 아마도 군인인 듯한 한 남자에 대한 발라드입니다. 때는 이른 아침, 그는 거리를 걸어 내려와 기차에 오릅니다. 이상한 점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노래는 자신의 깊은 감정을 토로하는 데 전혀 익숙하지 않은, 미국인 막노동꾼의 거친 목소리로 불립니다. 그리고 노래의 중간쯤 가수가 우리에게 자신의 가슴이 찢어진다고 토로하는 순간이 나옵니다. 그 감정 자체와,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몹시 애쓰지만 결국 굴복하고 마는 저항 사이의 긴장 때문에 그 순간은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입니다. 톰 웨이츠는 그 소절을 카타르시스를 주는 장중함으로 노래하고, 듣는 사람은 평생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거친 사내의 얼굴이 격한 슬픔으로 일그러지는 걸 느낍니다.
톰 웨이츠를 들으면서 나는 남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나는 별 고심 없이 작품 뒷부분에서 영국인 집사가 그의 감정적 방어를 유지하는 것으로, 그가 마지막까지 그런 감정적 방어 뒤에 숨어서 자기 자신과 독자를 기만하는 것으로 결정해 버렸습니다. 이제 나는 그 결정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가는 한순간, 단 한순간을 주의 깊게 택해 그의 갑옷을 찢어 틈을 내야 했습니다. 나는 그 아래의 본심을, 얼핏 일별할 수 있는 크고 비극적인 갈망을 드러내게 해야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제가 다른 많은 경우에도 가수들의 음색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랫말보다는 가수가 노래하는 방식에서 말입니다. 모두 알듯이 노래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는 헤아릴 길 없이 복잡하게 뒤섞인 감정을 표현합니다. 여러 해에 걸쳐 구체적인 면에서 내 글쓰기는 여러 가수들, 특히 밥 딜런, 니나 시몬, 에밀루 해리스, 레이 찰스, 브루스 스프링스틴, 질리언 웰치, 그리고 내 친구이자 공동 작업자인 스테이시 켄트의 영향을 받아 왔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에서 뭔가를 포착하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중얼거렸습니다. “아, 그래, 이거야. 이게 내가 그 장면에서 포착하고자 했던 거야. 이것과 아주 비슷한 그 무엇이라고.” 내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수의 목소리 속에는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겨누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 <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 (가즈오 이시구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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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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