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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ot87
- 작성일
- 2022.11.17
탐닉
- 글쓴이
- 아니 에르노 저
문학동네
일기처럼 기록한 1988년 가을부터 1990년 4월까지는 온통 그 남자가 작가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잠식한 기간이다.
마흔 여덟에 열 세살 연하의 유부남과의 불륜을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작가는 남들의 시선이나 견해따위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의 표현처럼, 비록 불륜이지만 한 남자와의 육체적 열정을 글로 표현하기는 삶을, 혹은 삶에 가장 가까운 무엇을 허무에서 구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동일한 내용을 다룬 <단순한 열정>을 읽은 후에 보면 더욱 재미있는데, 앞에서 알 수 없었던 많은 정보가 이 책에 담겨있다.
정말 지독한 남녀간의 밀애와 육체적 탐닉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다.
나에 대한 그의 욕망만이 유일한 확신이었던, 어둠 속의 애인.
'그에게 걸려올 전화와 밤시간 외에는 다른 미래가 없다'고까지 했던 꺼지지 않는 격렬한 욕망과 감각의 지옥.
무섭도록 탐닉했던 대상이 마침내 나를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공포와 절망감은 부모의 죽음을 통보받았을 때의 상실감이나 젖먹이 어린이가 엄마와 떨어질 때 느끼는 공포와 비슷할 수 있다고 작가는 표현했다.
한 남자에 대한 작가의 탐닉과 집착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와의 만남을 지속하는 동안 기다림으로 인한 지독한 고통, 나른함과 욕정 사이를 쉼없이 오간 작가의 강박과 집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밑바닥같은 절망과 광기, 더할 수 없는 쾌락과 끝없는 고통의 일기.
작가에게 지옥같던 그 1년을 견디게 해 준 건 오직 글쓰기뿐이었을 것이리라.
그 솔직함과 용기가 정말 대단하지만, 작가 스스로를 강박에 의한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내용이 반복되면서 이젠 좀 질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서 빨리 그 관계가 끝이 나고 작가가 그 모든 후유증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평안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책 후반부로 갈수록 더 간절해졌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그놈의 사랑인지 집착인지 모를 집요함은 작가의 삶의 어느 한 때 무척 유해한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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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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