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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ot87
- 작성일
- 2023.3.13
로렘 입숨의 책
- 글쓴이
- 구병모 저
안온북스
<파과>를 읽은 뒤 구병모 작가에게 관심이 생겼다. 이 작가는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빠르게 후루룩 읽히는 가독성 좋은 글"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데, 그래서 그럴까 그의 글은 재미있어서 술술 읽히다가도 어떤 문장은 여러번 반복해서 읽거나 천천히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처럼 초단편이어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가볍지 않다. 구병모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은 역시 탁월하다.
"로렘 입숨(Lorem Ipsum)"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읽다가 사전을 찾아본 단어들이 적지 않다. 암튼 배움에는 끝이 없구나.
"입회인" 중 마음에 남는 문장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
- 죽음을 자초하지 말고, 자신이 지나치게 비겁해지지 않는 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모욕을 주는 자들을 섣불리 용서하지 않기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진심 없는 화해에 서둘러 응하지도 않기를 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세상은 너를 무너뜨리거나 해코지하기에 여념이 없을테지만, 무엇보다 용기를 잃지 말기를.
"궁서와 하멜른의 남자"는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일지 감도 잡히지 않는데 내용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일체의 수리를 하지 않은 거의 유물에 가까워진 아주 오래된 아파트에는 사람과 쥐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쥐의 존재를 눈치 챈 한 남자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고 치부되지만 결국 그의 말이 맞았다. 건물이 붕괴되지 직전에 쥐들이 먼저 알고 빠져나오고 말발굽 같은 소리에 놀란 아파트 주민들도 살기 위해 몸만 빠져 나온다는 얘기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게 그냥 소설 속 허구인 것 같지만 않아서 읽으면서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이 글은 거의 단편소설에 가까운 분량이다. 가장 재미있었다.
이 책 한권을 다 읽는다는 것은 "몇 개의 키워드로 간추릴 수 없는 뜻밖의 조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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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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