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 독서기록

cyprus
- 작성일
- 2021.1.14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 글쓴이
- 박정훈 저
빨간소금
배달앱을 이용해서 처음으로 음식을 주문해서 이용했던것이 몇년전이다. 그때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근처에 있는 쇼핑몰에 입점한 유명 식당에서 친구가 음식을 집으로 배달 시키는것을 보고 신세계를 경험한 느낌이었다. 그 후 집에 돌아와서 같은 배달 앱을 나도 설치하고 우리집 주소를 넣은뒤 배달이 되는 식당들을 보니 되는 식당이 거의 없었다. 몬가 지역차별을 받는 느낌적 느낌이었다. ㅠ
차이라고 한다면 친구네 동네는 금융회사들과 각종 잘나가는 회사들이 많이 들어서있고 식당도 많은 핫한 동네였고 우리동네는 그냥 평범한 주거밀집지역의 동네였다.
그후로 한동안 그 앱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몇년이 지나 우연한 계기로 생각이 나서 다시 열어본 앱에는 그사이 식당들이 많이 추가가 되어 있었다. 이런 배달 앱으로 한창 광고를 하는 배민도 그무렵 새롭게 알게되었다. 그래서 가입을 했고 전보다는 많아진 식당들 가운데 골라 몇번 음식을 주문해보는 경험을 했다. 모든 처음이 어렵지 첫 배달주문 이후로 외식이 귀찮거나 저녁을 하기 귀찮을땐 수시로 이 배달앱을 이용하게 되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중국집 아니면 피자집, 치킨집이 배달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던터라 외식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다른 음식을 배달로 맛보기는 힘들었었다.
그런데 이 배달앱이 다양한 식당들을 구비해 나가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항상 궁금했다. 이 배달앱이라는 플랫폼을 만든사람들과 그 플랫폼 바깥의 라이더들과 배민같은 플랫폼 회사의 관계는 어떤것인가. 배민에서 시킨 음식이 배민 라이더스가 아니라 배달 오토바이 뒤에 생각대로 같은 다른 이름을 가진 배달통을 달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았다. 내가 앱을 통해 주문하고 식당에 주문이 들어가서 다시 라이더가 그 음식을 배달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것인지 조금 궁금해졌다.
작년 한해 코로나로 외식을 못하고 재택에, 학교 온라인 수업에 온가족이 세끼를 집에서 먹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 펼쳐지면서 이 배달앱과 밀키트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한해를 버틸수 있었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작년에 이런저런 배달앱을 돌려가면서 정말 많은 주문을 했다.
신기하게도 집근처가 아닌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배달이 오고 정말 상상할수 없는 다양한 음식들을 주문할수 있었다.
코로나로 더 많은 식당들은 영업을 위해 더욱 배달 플랫폼에 의존을 할 수 밖에 없었을테고 이용하는 나같은 사용자 역시도 필요에 의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이 앱에 몰릴 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어쩔수 없는 상황들로 고객이나 식당주인은 이 앱을 의지하며 도움을 받을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상황속에서 가장 승자는 배달앱을 운영하는 플랫폼 회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와중에도 배달 라이더들이 주문을 많이 받아 배달시간을 단축하며 건수를 늘리기위해 무리한 오토바이 질주가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했고 배달 사고들도 종종 일어나는 것들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식거나 불어터진 음식을 받을경우 라이더들을 욕했고 이제 한발짝 더 나아가 쿠팡이츠는 주문을 받고부터 집앞 배달을 받을때까지 모든 단계단계를 앱으로 보여주며 심지어 라이더가 음식을 받고 출발해서 집까지 오는 모든 과정을 마치 게임처럼 지도상에서 볼수 있게 되었다.
지도에서 움직이는 라이더의 동선을 보면서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미있고 편리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날 내가 라이더의 입장이라면 참 끔찍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배달하는 나의 동선 하나하나를 다 감시받는 기분일것 같다는 생각은 그동안 전혀 해보질 못했다.
수없이 많은 음식들을 주문해서 먹었지만 정작 음식을 배달하는 라이더들과 플랫폼 회사와 배달 플랫폼사가 어떤 관계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던 내가 이 책 한권을 만나면서 우리나라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는 라이더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우리나라의 플랫폼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앱기반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이슈들과 여러 문제점들에서 나아가 독특한 한국형 플랫폼 노동에 대해 저자가 경험하고 느낀점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설명한 책이다.
저자 박정훈은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으로서 플랫폼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이해하기 쉽게 잘 설명하고 있다. '이해하기 쉽게' 라는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게 라이더들의 세계에 대해 전혀 알길이 없는 나같은 사람들은 너무나 그 개념이 생소해서 배달앱이 있기전부터 동네 배달 대행사가 있고 배달대행 플랫폼이 있고 주문자와 음식점을 연결하는 플랫폼 사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중요한건 우리같은 사용자들은 그냥 앱을 켜고 주문을 하면 누군가가 배달해준다고 생각하는데 그 앱 너머에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했고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배달앱들중에 우버이츠가 한국에서 몇년간 운영을 하다 2019년 10월에 공식적으로 철수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컸다.
우버이츠는 라이더가 일하고 싶을 때 스마트 폰의 앱에 로그인하면 자동으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음식점의 배달 주문을 연결하는 서비스다.
...
우버이츠 시스템이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어떻게 두명의 인력으로 (실제로는 더 많은 인력이 있겠지만 내가 만난건 단 두명이므로) 사람들을 모집하고 교육하고 등록하는게 가능할까?
어떻게 자유롭게 일하는데 안정적인 서비스가 가능할까?
배달은 어떤 방식으로 결정될까? 앱에서 제안한 배달을 거절하면 어떤 불이익이 생길까?
답은 바로 추천인 코드였다. 내가 주어진 노동을 완수했을때 추천인은 보너스를 받게된다.
....
무엇보다 우버이츠가 강제로 일을 시키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일을 독려하다보면 플랫폼은 라이더들을 지휘 감독할 필요가 없다. 인력모집, 관리 및 독려, 교육 훈련하는 비용을 아껴서 보너스 형태로 라이더에게 지급한다.
지휘, 감독 논란에서 벗어나는 이득은 덤이다.
우버이츠는 초보 배달자를 배달 일에 적응시키기 위해 추천인 코드 프로모션을 적극활용하는데 (마치 다단계의 느낌이 조금 들었다. ㅎㅎ) 그 프로모션은 25개에서 멈춘다. 25개 프로모션을 달성하고 나면 그후론 새로운 프로모션들이 뜬다.
라이더의 노동을 독려하기 위해 3개의 배달을 마치고 쉬고 있으면 2개를 더하고 보너스를 가져가라는 식으로 프로모션이 매번 다른식으로 뜬다. 비오는 날에는 배달하기 싫은 라이더들에게 공지를 하나 띄운다. '우천 할증 프로모션' 같은 식의 프로모션을 띄우면서 라이더들이 다시 앱을 접속하게끔 만든다.
문제는 프로모션이라는 것이 플랫폼 마음대로 수정가능한 것이고 본사의 정책에 따라 언제든 조건을 후퇴시킬수 있으며 이에 대해 항의할 방법도 없다.
이것은 정보 비대칭을 활용한 플랫폼의 우월적 지위를 보여준다.
플랫폼은 중개업자다. 서비스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각각의 정보를 플랫폼사만 가진다. 소비자는 우버이츠에 얼마를 내고 음식을 주문하는지, 음식점 사장은 우버이츠에 수수료를 얼마나 지불하는지, 라이더는 우버이츠로부터 얼마를 받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소비자, 음식점, 라이더가 서로의 협상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시장 가격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 사가 정보 독점을 바탕으로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앱으로 돌아가는 세상으로 변화되고 있다지만 이쯤되면 이건 불공정 거래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가다가 어느순간 정부에 밉보이거나 무슨 큰 일이 터지거나 하면 그때서야 플랫폼사의 일방적 정보독점에 대한 불공정 거래에 대해 제재나 조사가 들어가거나 하겠지란 생각이 드는건 나의 억측일까.
수많은 정보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힘과 권력이다. 당연히 기존의 대기업들도 이런 힘을 사용해 왔다.
'영업비밀'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르며 산재를 은폐하고, 경영상의 위기를 과장해서 정리해고를 하거나 임금 상승을 억제하기도 했다.
차이가 있다면 플랫폼은 정보의 배타적 독점 자체가 기업의 수익 모델이자 가치라는 점이다.
이러한 정보 비대칭이 만드는 효과는 역설적이게도 '불신'이다.
우버이츠가 비판적인 면도 있지만 한국의 다른 플랫폼사들과 비교했을때 시사하는 바도 있다. 우버이츠는 알고리즘이 강제로 배차한 배달 주문을 라이더가 수락하거나 거절하면 된다. 게다가 한건씩만 배달하며 된다. 여러건의 배달을 묶기위해 계속해서 스마트폰을 바라보거나 심지어 주행중에 스마트폰을 볼 필요도 없다. 안전하다.
그런데 배달을 한개씩만 하면 돈이 안되는데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해 우버이츠는 높은 배달 단가를 책정해서 라이더에게도 어느정도 안정적으로 배달료를 보장해 줌으로써 생명을 위험을 무릎쓰고 신호를 위반할 필요가 없도록 해줬다.
이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물론 높은 배달 단가를 손님과 음식점이 어느정도 부담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는데 처음 무료배송 마케팅이 끝나고 배달료가 올라가자 이용객 수가 확 줄어들었다. 결국 저렴한 배달료를 부담하는 다른 플랫폼으로 사용자들은 갈아탔고 그렇게 우버이츠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경쟁자들은 라이더를 근로지준법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는 위탁 계약자로 계약하고 실제로는 근로자로 사용하고 있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책임져야 할 비용을 할인받으면서 안정적인 배달 서비스를 제공한 셈이다. 우버이츠가 직접적인 지휘, 감독 없이 프로모션과 알고리즘만으로 한국의 불법적인 배달 산업에 맞서 이길 수는 없었을테다.
플랫폼 산업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반칙하고 있었고, 외국 자본은 한국형 플랫폼을 이길 수 없었다.
저자는 쿠팡이츠의 계약서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이 계약서의 조항들을 읽어나가다보면 모순된 점들이 보인다. 결국 노동자도 아니라고 하면서 사업자로서 할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제약해놓았다. 그야말로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라고 할수도 사업자라고 할수도 없는 상황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노동의 문제에 있어서 좀더 앞서나가고 있는 해외에서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많은 토론을 벌이고 새로운 조항을 만들기도 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자신이 스스로를 근로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자가 자신이 계약한 사람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방식이다.
2019년 적용된 미국의 AB5 법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 있다.
AB5 법안은 우버이츠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가 위와 같은 사장, 즉 독립계약자로 잘못 분류되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되었다.
사용자가 자기와 계약한 사람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abc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데, 일하는 사람이
a) 회사의 지휘, 통제로부터 자유롭고
b) 그 회사의 통상적인 비즈니스 이외의 업무를 해야하며
c) 스스로 독립적인 고객층을 갖는 등 해당 사업에서 독립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즉 자유로워 보이는 우버이츠나 쿠팡이츠 같은 온전한 의미의 플랫폼 노동자 역시 자율권을 가진 사장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계약 내용만 보면 책임은 회피하고 경제적으로는 종속시키는 독소 조항이 가득하다. 계약서엔 회사의 책임과 의무에 관한 사항이 거의 없다.
IT가 발전하고 데이타를 활용한 세상으로 변화하면서 그 속도는 코로나 이후로 더 가속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 책은 음식주문배달을 하는 라이더의 세계를 들여다 봤지만 라이더 뿐만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의 수와 범위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ssg 에서도 심지어 가사 도우미를 앱을 통해 신청하고 부를수 있는 온디맨드 서비스를 하고 있는것 같았다. 청소등의 일부터 우리가 생각치 못하는 분야까지 점점 플랫폼을 기반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사업분야가 늘어나고 있다.
필요에 의해 이 노동을 이용해야 하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확실히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용하는 앱 너머에 바로 플랫폼 노동자들이 있다.
당장 나와 상관이 없고 관심도 없다고 넘겨 버리기에는 우리나라의 더디게 힘겹게 발전해온 노동의 역사가 떠오른다. 혁신이란 이름으로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제는 더이상 외면할 수 없는 노동의 문제들을 제대로 살펴야 할 때인것 같다.
플랫폼 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이 논의는 꼭 필요하고 산업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이 불행하다면, 우리 사회는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문제점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 좋아요
- 6
- 댓글
- 4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