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티의 오래된 극장

코리
- 작성일
- 2012.10.24
패밀리맨
- 감독
- 브렛 래트너
- 제작 / 장르
- 미국
- 개봉일
- 2000년 11월 24일

내용은 간단하다.
성공을 위해 사랑하는 연인의 만류도 뿌리치고 그녀의 곁을 떠난 잭.
13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는 월 스트릿의 잘 나가는 증권맨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에게 가지 말라고 애원하던 케이트와는 그 이후로 헤어졌다.
페라리를 굴리고 시내 중심가의 펜트하우스에 살며 멋드러진 옷장과
그 옷장에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양복이 걸려있는 그,
섹시하고 화끈한 여자친구도 있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거액의 돈이 굴러들어올 참이다.

이렇게 잘 나가는 그가 우연히 편의점에서 강도를 만나게 되면서 강도에게 질문을 듣는다.
" 네가 원하는 것은 뭐냐?"
그의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였다.
사실.. 남부러울것 하나 없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을 살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 강도는 천사였던 것.
그래서 강도는
잭을 13년전, 공항에서 케이트의 만류를 거절하지 못하고 뉴저지 시골촌구석에 눌러앉아
장인의 가게를 돌보고 두 아이의 치닥거리를 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야하는
보잘것없는 가장으로 만들어놓는다.

아.. 이 얼마나 끔찍한 추락이냐.
상콤하게 콜서비스를 받고 일어나서 혼자 유유자적 스키나 타러 다닐까 궁리하는 증권가의 핫 가이가
개의 끈적한 침세례에 일어나 아이들이 침대를 뛰어다니고 아울렛에서 산 후줄근한 옷을 입고 출근을 해야하다니!!
보는 내가 짜증이 다 나는 시츄에이션이 아닐수가 없다.
그제서야 잭은 이 모든 것들이 편의점에서 만난 강도의 소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이를 되돌릴 방법은 알지 못한다.
그저 체념하고 이 모든 사태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애 똥기저귀를 갈아야하는 이 장면은 너무나 리얼하다.
이게 간지나는 남자가 할 짓인가!!!!!

그렇지.. 이렇게 남이 시중들어주고 양복이나 빼 입으며 유유자적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본인의
원래 모습인데 말이다.
백화점 매장에서 250만원짜리 제냐 양복을 입고 보니 마치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간듯 꽤나 근사해보인다.
그러나 케이트의 아줌마스러운 실용적이고 후줄근한 옷차림을 보라.
이런 옷을 사입었다간 애들이 손가락빨게 생겼다.
이런 잭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케이트.
우리나라같았으면 너랑은 못산다, 미친거 아니냐, 그 돈으로 내 백이나 한 번 사줘봐라~
바가지를 긁을만도 하건만 외쿡 여자들은 참 쿨하기도 하다.

스쿠버 다이빙이나 하고 요트나 타고 다니던 그가
시골촌구석에서 볼링이나 치고 있어야 하다니.
그런데 생각보다 볼링도 제대로 쳐지지도 않는다. ㅎㅎㅎ

이 영화에서 감정라인이 증폭되는 장면은 역시
잭이 부인인 케이트의 생일날 LaLa means i love you를 불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슈퍼스타케이에 나올 정도로 뛰어난 노래실력은 아니지만 음이 이탈되고 음이 갈라져도
최선을 다해 불러주는 사랑노래..
모든 여자의 로망이며 남자의 로망이 아닐런지.
그래서 남편보고 열심히 연습하라고 일러두었다.

잭은 케이트에게 자신이 살던 곳의 화려함을 느끼게 하고 싶어 고급 레스토랑에서 결혼기념일을 보낸다.
얼떨떨하지만 황홀한 저녁을 보내는 두 사람.
잭은 자신은 예전에 모든것을 확신했지만 이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고..
케이트는 말한다.
나역시 하루하루 당신처럼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 나도 만약에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았을까? 생각해봐요. "
"그래서?"
" 그때 깨닫게되는거죠. 내가 내 인생에서 확신할 수 있는 모든걸 지워버렸다는걸요.
바로 당신과 아이들이요.."
이 부분에서 한대 얻어맞은 표정을 지으며 니콜라스가 케이지가 " good things..."라고 말을 얼버무리는데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삶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물건이나 돈이나 명예나.. 그런게 아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참으로 구태의연한 헐리웃식 대사 앞에서 인생의 비밀을 주워 들은 것 같은 쏴함에 빠지고 만다.

사실 영화의 내용을 들었을때는 짐 캐리가 하기 딱 좋은 역이라고 생각했었다.
왜. 그런류의 영화들,
갑자기 인생이 뒤바뀌어 좌충우돌하다가 결국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식의 스토리엔
역시 짐 캐리가 적격이잖아. 하는 생각.
그런데 이 영화는 나름 진중하다.
물론 '이터널 션샤인'에서 보여준 짐 캐리의 연기는 귀한 것이었으나
그의 한계는 코미디와 진중함을 한번에 보여주진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니콜라스 케이지가 이 역을 해야만 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재수없는 속물에도
삶에 지친 가장에도 썩 잘 어울리는 진중함을 보여준다.
심지어 로맨틱하게까지 보인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리빙 라스베가스'에서 니콜라스 케이지만한 배우가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 아니 그런데 요새는 왜 그런 잡스러운 영화에 많이 나오는겁니까!!!! -

보통 루저의 인생에서 잘나가는 증권맨이 되었다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는 영화는 있지만
잘나가는 증권맨이 평범한 가장이 되는 영화가 어떤 공감을 얻을까? 싶었다.
잭이 너저분한 가장의 일상을 살고 있을때 나는 아무래도 잘나가던 미혼시절이 그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이 있었으니 .
바로 잭이 이 모든 '인생극장'의 환상을 끝내고 아침에 눈을 뜰때이다.
다시 잘나가는 증권맨이 되어 눈을 떴을때
아무도 곁에 없는 그의 펜트하우스의 하얀 시트는
놀랄 정도로 차갑고 서늘해보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커다란 개의 침 범벅도 아내의 'Jack, Strong coffee!!'라고 외침도 없는 고요한 눈뜸.
정말 갑자기 그 소리들이 그립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결혼이 죽도록 무서워서 40이 다 된 나이에 결혼한 주제에
이제와서 갑자기 결혼 예찬론자가 된건 분명 아니다만
결혼하고나서 좋은 것이 있긴 있다.
바로
자가다 눈을 떠도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이다.
악몽을 꿔도 무섭지 않다는 것.
오래전에 잃어버린 곰돌이 인형을 되찾은 느낌이라고 하면 실례일까. ㅋ
나는 외로움을 잘타는 성격도 아니고 남과 방을 써본일도 없는 외동자식이라
친구라도 놀러와서 자고 있으면 거의 잠을 못 잘정도로 예민했고
혼자 눈뜬다는게 딱히 고역스러워본적이 없는 사람이라
이건 짐작치 못했던 결혼의 잇점이다.

남편이 가장 부러워하던건 잭의 페라리도 아니고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오피스도 아니다.
바로 이 옷방.
양복에서 커프스, 구두까지 깔끔하게 진열되어있는
고급스럽게 짜여진 옷장 좀 보라지.
어쩌면 남편의 로망은 이런 멋진 옷장과 그 옷장에 어울리는 색색깔의 셔츠들일꺼다.
그러나 열망함이 곧 소유함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것을 배워가는 과정에 우리 두 사람은 서 있다.
어떤 의미에서 열망은 그저 빈 채로 놔두는 것이 그것의 올바른 자리임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혼때 이 영화를 보았다면
'쳇. 저건 다 결혼으로 나를 포섭하려는 헐리웃의 싸구려 감동작전일뿐이야,
나는 아무래도 잘나가던 시절의 증권맨 잭쪽이 훨씬 매력적인걸!!!
결혼생활은 역시 구질구질해. '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
뭐..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된 마당에야
'아. 역시 혼자 눈 뜨는건 싫다.'라는 감동을 도출해 낸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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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